의전원 수석졸업생과 그를 손수 받은 의사의 '31년 인연'
이대 의전원 윤인나씨와 '의정부의 대모' 오혜숙 의대 총동창회장
오 회장, 졸업식 축사서 "내가 받은 아기가 의사 된다" 미래 축복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31년 전 태어난 아기는 의사로 훌륭하게 성장했고, 이 아기가 세상 빛을 보도록 이끌어준 산부인과 의사는 대학 선배로서 후배의 밝은 미래를 축복했다.
이달 10일 이대목동병원에서 열린 2016학년도 이화여대 의학전문대학원 졸업식에서 수석 졸업의 영예를 안은 윤인나(31)씨와 이날 졸업생들에게 축사를 한 이 대학 의과대학 총동문회 오혜숙(64) 회장의 사연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6월 20일 오후 11시 3분 체중 2.9㎏의 아이가 경기도 의정부에서 태어났다.
이 아이가 바로 윤씨. 장소는 오혜숙산부인과였고, 윤씨를 받은 의사가 바로 오 회장이었다.
두 사람이 27일 오혜숙산부인과 2층 갤러리에서 만났다. 오 회장은 "(아기가) 조금 작기는 했지만, 상태가 좋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윤씨는 "의정부의 제 또래 대부분은 이곳에서 태어났다. 오 선생님은 의정부의 대모 같은 분"이라며 웃었다.
오 회장이 병원을 연 것은 1983년. 당시 의정부에 여자 산부인과 의사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오 회장은 "2003년부터 분만을 하지 않았는데도 얼마 전 의정부여고에 강연을 갔다가 '우리 병원에서 태어난 사람 손 들어보라'고 했더니 15% 정도나 손을 들었다"고 전했다.
20년간 신생아 2만여명을 받았다는 오 회장은 하루 4시간 이상 잠을 자기 힘들 정도로 격무에 시달렸지다. 하지만 산모에 아기까지 두 생명을 책임지는 스트레스를 견디고 나니 윤씨 같은 자랑스러운 후배도 생겼다고 뿌듯해했다.
윤씨가 처음부터 의사의 길을 걷고자 한 것은 아니다. 재수 끝에 다른 대학 수학교육과를 다녔다.
그는 "원래 교사가 되고 싶었는데 2010년 임용고시에서 떨어졌다"며 "다른 길을 찾다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의 권유로 의전원 준비를 시작해 2012년 입학했다"고 전했다.
이어 "1학년 때는 성적이 안 좋았다"고 웃으며 "이듬해 휴학했다가 복학하고서 성적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아픈 경험이 마음을 다잡은 계기가 됐다. 아버지가 2013년 간암 진단을 받은 지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윤씨는 "아빠가 너무 늦게 진단을 받으셨다"며 "소화기내과를 배우는 시기여서 아빠를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다. 조금만 더 빨리 이 부분을 제대로 배웠으면 조금 더 오래 사실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또 "복학 이후 다시 책을 펼치고 보니 '내게 지식이 없으면 환자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의사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각오와 의무감으로 공부했다"고 설명했다.
오 회장은 이대 의대를 통해 운영해온 '오혜숙장학금'으로 6년간 윤씨에게 장학금을 건넸다. 윤씨는 당당히 수석졸업자가 되어 후원에 보답했다.
오 회장은 졸업식에서 강단에 올라 축사 도중 "내가 받았던 아기가 지금 여기 있는데 그 사람이 의사가 된다. 바로 이번 수석졸업자"라고 소개했다.
단상 바로 앞에 앉은 윤씨는 "그런 말씀을 하실 줄은 몰랐는데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이달 23일 병원으로 처음 출근해 수련의 생활을 시작한 윤씨는 "아직 의사로 살아보지 않아서 어떤 길을 가게 될지는 모르겠다"면서도 "태어날 때와 사회로 진출할 때 저를 받아주신 오 선생님께 부끄럽지 않은 후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오 회장은 31년 전 손수 받아 세상의 빛을 보여준 갓난아기가 어느새 성장해 자신처럼 의사의 길을 앞두고 내놓은 당찬 다짐에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윤씨의 등을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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