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국 몬시뇰 "평양교구 100주년 행사, 꼭 평양에서 열었으면"
평양교구장 서리 대리…"설립 90주년 다양한 행사"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평양교구 설립 90주년(3월 17일) 행사를 평양에서 못 치르니 못내 아쉽죠. 그래도 북한의 교회를 생각하고 북녘의 동포를 위해 기도할 기회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천주교 평양교구장 서리 대리인 황인국(마태오·82) 몬시뇰은 평양교구 설립 90주년을 맞는 소감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1936년 평양 출생인 황 몬시뇰은 1964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2001년 몬시뇰에 임명됐다. 몬시뇰은 주교품을 받지 않은 덕망 높은 가톨릭 고위 성직자에 대한 경칭이다.
26일 서울 중구 명동 서울대교구청 8층 평양교구 사무국에 있는 황 몬시뇰의 집무실에 들어서자 빛바랜 흑백 사진 한 장이 눈에 띄었다.
사진 속 주인공들은 제6대 평양교구장 홍용호 주교를 비롯한 평양교구 사제단과 성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다. 이들은 1948년 10월 10일 평양교구 사제서품식 후 기념사진을 찍었으며 이것이 마지막 단체 사진이 됐다. 홍 주교를 비롯한 사제들은 이듬해부터 공산당에 체포·구금돼 한 명을 제외한 전원이 순교했다.
황 몬시뇰은 "주교님과 신부님들의 사진을 걸어두고 보면서 희생을 기억하고 숭고한 뜻을 이어가려 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평안남·북도를 관할하는 평양교구는 1927년 3월 17일 서울대목구(代牧區)에서 분리돼 평양지목구(知牧區)로 첫발을 뗐다.
기록에 따르면 1943년 평양교구 산하 본당은 19곳, 공소(사제가 상주하지 않는 작은 교회 단위)는 106곳에 달했다. 또 22개 교육기관과 17개 복지기관을 운영했으며 2만8천400여 명의 신자가 있었다. 그만큼 신앙의 뜨거운 신앙의 열정을 간직한 공동체였다.
황 몬시뇰은 "일본 군인들에 의해 헐린 주교좌 성당을 공산 치하에서 재건하기 시작했다"며 "당국의 감시와 박해에도 수많은 교우가 각지에서 쌀을 짊어지고 와서는 성당 재건에 매달렸던 모습이 기억에 선하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북한 정권의 종교 탄압이 노골화되고 있었지만 홍 주교를 비롯한 평양교구 사제단은 교구를 떠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홍 주교님은 사제단에게 '양들이 있는 한 목자가 도망갈 수 없다. 선한 양들을 지켜라'라는 말씀을 남겼다고 합니다. 위험이 코앞에 닥친 사실을 알았지만, 이를 피해갈 생각이 없었던 것이죠."
황 몬시뇰은 1·4 후퇴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 남측으로 건너와 목숨을 건졌다. 이후 남한에서 신학교에 입학해 사제의 길을 걸었다.
이 비극의 시기에 북한 교회의 많은 신학생, 수녀, 평신도들이 남한으로 내려왔다. 황 몬시뇰을 포함해 윤공희 대주교(전 광주 대교구장), 박정일 주교(전 마산교구장), 이기헌 주교(의정부교구장), 고(故) 지학순 주교(전 원주교구장) 등이 당시 북한에서 내려와 남한에서 신학교를 마치고 서품을 받은 이들이다.
아울러 월남한 신자들은 1949년 11월 평양교구 신우회를 발족한 이래 현재까지도 서울과 부산에서 매월 정기미사를 봉헌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평양교구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또 평양교구 사무국은 평양교구를 끝나버린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겨두지 않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현재 한국천주교회가 시복을 추진하는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중 평양교구 출신은 24명에 달한다.
황 몬시뇰은 "평양교구 신앙의 증인들에 대한 각종 기록을 수집하고 다양한 진술을 채록해왔다"며 "또 통일을 대비해 평양교구 재건에 앞장설 선교사제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평양교구의 90주년을 기념하는 일은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자는 것이 아니라 통일을 앞당기고 교구 재건의 의지를 새롭게 다지는 계기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 몬시뇰은 "북녘땅에서도 자유롭게 신앙생활에 참여하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한다. 평양교구 설립 100주년 행사는 꼭 평양에서 열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바람을 밝혔다.
평양교구는 설립 9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다음 달 18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는 평양교구장 서리인 염수정 추기경의 주례로 90주년 감사 미사가 봉헌된다. 또 다음 달 1∼14일 명동 갤러리 1898에서는 '일어나 가자'를 주제로 90주년 기념 사진전이 열린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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