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VX 피습 김정남 끔찍한 고통속 죽어 갔을 것" 분석
"피부를 통한 흡입 추정…격렬한 독성효과 유발됐을 듯"
"VX, 눈·코 등 촉촉한 부위 흡수 빠르지만 건조한 손은 침투 느려"
(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말레이시아 경찰이 김정남 독살에 신경성 독가스인 'VX'가 사용됐다는 사실을 밝혀낸 가운데 전문가들은 그가 아주 끔찍한 고통 속에 죽어 갔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VX는 지금까지 알려진 독가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신경작용제여서 극소량만 사용해도 몇 분 안에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
색깔과 냄새가 없는 이 독가스는 사린가스 100배 이상의 독성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말레이시아과학대(USM)의 전직 독물(毒物) 학자인 줄케플리 아흐마드 박사는 25일 현지 일간 '더 스타'와 인터뷰에서 "내가 보기에 (김정남의 경우) 피부를 통한 흡입의 경우로 격렬한 독성효과를 유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줄케플리 박사는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사용된 화학무기를 연구하는 과정에 참여한 적이 있다면서 이 경험을 바탕으로 김정남 독살에 관한 견해를 밝혔다.
그는 김정남 독살에 사용된 VX는 아주 독성이 높아서 기껏해야 10∼15㎎ 정도의 소량만으로도 신경계 교란을 일으켜 불과 몇 분, 몇 초 만에 김정남을 사망에 이르게 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줄케플리 박사는 "VX와 같은 신경독성 물질은 신경화학 시스템의 효소에 영향을 미쳐 이를 완전히 마비시킨다"며 "이때 당사자는 호흡곤란 증세를 호소하고 결국 쓰러지게 된다"고 VX의 작용 원리를 설명했다.
VX로 김정남을 공격한 2명의 여성 용의자들이 맨손으로 범행하고도 멀쩡하다는 경찰의 수사 발표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김정남에게 사용된) 고용량 VX의 경우 해독제가 없다"며 "VX는 피부를 통해 잘 흡수되고 심각한 중독증세를 유발하기 때문에 맨손으로는 물론 일반 장갑을 끼고도 만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들은 아마도 자신들을 (VX로부터) 잘 보호했을 것이며, 김정남의 얼굴에 VX를 뿌릴 때까지 잘 보관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할릿 아부 바카르 말레이 경찰청장은 2명의 외국인 여성 용의자 가운데 1명이 구토 등 VX 중독증세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줄케플리 박사는 "VX를 완전히 차단하지 않으면 설사와 구토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며 "하지만 이런 정도의 중독 수준으로는 사망에 이르지 않으며 10㎎ 이상에 노출되어야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말레이시아대학의 독물학자인 무스타파 알리 모흐드 박사는 용의자들이 '피부의 건조 상태'에 따라 흡수되는 양상이 다르다는 점을 알고, VX의 흡수력을 높이기 위해 서로 다른 역할을 맡았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무스타파 박사는 "1명의 여성은 김정남의 얼굴에 물을 마구 바르고 이어 다른 용의자가 VX를 뿌렸을 것"이라며 "이런 조합을 통해 그들은 VX가 효과적으로 스며들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과정에서 용의자들은 자신들의 손을 건조하게 유지했을 것이라고 그는 추정했다.
무스타파 박사는 "손이 매우 건조했다면 화학물질이 체내로 침투하기 어렵지만 눈, 입술, 코 등 촉촉한 부분을 통해서는 빠르게 체내로 흡수된다. 특히 더울 때는 더 그렇다"며 "이 때문에 VX가 김정남에게는 아주 효과적으로 작용했지만, 용의자들은 멀쩡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이들이 범행 직후 흐르는 물에 손을 씻었을 경우 체내로 침투된 VX의 양이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스타파 박사는 "다만 용의자들이 어떻게 VX를 운반했으며, 이들이 범행에 사용한 VX가 어떤 형태였는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고 말했다.
meolaki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