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까지 무너진 가계지표…되살릴 방법 없을까
가계 소득·소비·분배 모두 악화…불확실성에 지표 개선 쉽지 않아
전문가 "단기 대응 넘어 저출산·1인가구 증가 등 구조적 문제 대응 필요"
"투자 살아야 소득·소비도 힘 받아…기업 투자 환경 조성 중요"
(세종=연합뉴스) 이대희 민경락 김수현 기자 = 저성장 지속과 함께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로 경제의 3대 축 중 하나인 가계지표가 지난해 금융위기 수준으로 떨어졌다.
구조조정과 불황으로 고용시장이 얼어붙어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가구소득 증가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소득 양극화도 다시 확대되고 소비지출 역시 사상 첫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정부는 17조원에 달하는 일자리 예산을 조기 집행하고 구조조정 업종이나 청년 등 취약계층에 대한 고용지원을 확대하는 등 처방전을 내놨다.
또 소비진작 대책과 함께 투자활성화, 일자리 대책도 새로 마련하고 있지만, 약효가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단기대응 넘어 저출산·1인가구 증가 등 구조적 문제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기업 투자환경을 조성해 경기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실질 이어 명목 소비지출까지 역성장…분배지표도 뒷걸음질
2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4분기 및 연간 가계동향'을 보면 작년 가계의 소득, 소비, 분배지표는 전년과 비교해 일제히 악화했다.
지난해 연간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39만9천원으로, 2015년(437만3천원)보다 0.6% 늘었다.
명목 소득 증가 폭은 2015년(1.6%)보다 쪼그라들었고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작았다.
특히 가구소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근로소득이 294만8천원으로 1.0% 늘어나는 데 그쳤다. 근로소득 증가율은 전년(1.6%)보다 줄었다.
소비 지표도 암울했다. 2015년엔 실질 소비지출만 전년 대비 마이너스 성장했지만 지난해에는 실질, 명목 소비지출까지 모두 줄었고 평균소비성향은 사상 최저였던 2015년 기록을 또 갈아치웠다.
작년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255만원으로 1년 전보다 0.5% 감소했다.
소비지출이 줄어든 것은 2003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래 처음이다.
소득은 찔끔 늘고 소비는 뒷걸음질 치자 평균소비성향은 71.1%로 0.9%포인트나 줄었다.
경기가 악화한 여파가 저소득층에 집중되면서 분배지표도 나빠졌다.
소득 상위 20%의 평균 소득을 소득 하위 20%와 비교한 소득 5분위 배율은 전년 4.22배보다 4.48배로 벌어졌다.
◇ '4월 위기설' 등 대내외 불확실성에 소득·소비 개선 쉽지 않아
문제는 작년 가계지표의 하향세가 올해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취업자 증가 폭은 최근 점차 감소하며 가계 소득 증가세의 뒷다리를 잡고 있다.
지난달 취업자는 2천568만9천명으로 1년 전보다 24만3천명 느는 데 그쳤다.
22만3천명이 증가한 지난해 2월 이후 최저 수준이고 정부가 올해 전망한 26만명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특히 제조업 취업자는 16만명 감소해 2009년 7월 이후 7년6개월 만에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청탁금지법 시행은 음식점·화훼업·농축수산업 종사자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소비심리도 내리막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작년 10월 102.0, 11월 95.7, 12월 94.1에 이어 지난달 93.3으로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2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4.4로 살짝 반등했지만, 상승 폭도 크지 않고 지수 자체도 낮은 수준이다.
최근 수출이 3개월 연속으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대내외 불확실성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소비심리는 개선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최종 결정에 따라 당장 올해 상반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 이후 세계 경제의 향방도 안갯속이다. 중국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역풍과 브렉시트, 3∼4월 유럽 주요선거 등도 전망을 어렵게 하는 변수다.
이러자 일각에서는 오는 4월 미국이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대우조선해양의 회사채 4천400억원 어치가 만기 도래해 경제 위기로 번지는 '4월 위기설'까지 제기됐다.
◇ 처방전 쏟아지지만…"구조적 대책이 안 보인다"
정부는 이러한 위기설을 일축하면서도 내수와 투자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확충하는 대책을 잇따라 내놓거나 준비하며 대응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3일 금요일 조기퇴근, 전통시장·대중교통 사용액 소득공제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내수활성화 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27일에는 제11차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열고 투자 활성화 대책을 내놓는다.
또 올해 17조원 규모의 일자리 예산의 30% 이상을 1분기에 조기 집행하고 다음 달 중에는 청년을 중심으로 한 일자리 대책도 발표할 계획이다.
하지만 꼬리를 물면서 쏟아지는 대책 대부분이 세제 지원, 복지지출 등 단기 위주인 탓에 근본 대책 마련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까지 가계지표가 줄줄이 몰락하는 이유에는 소비심리 악화처럼 일시적으로 볼 수 있는 경기적 요인뿐만 아니라 저출산·고령화, 1인가구 증가, 산업구조 변화 등 구조적 요인이 겹쳐있지만, 정부의 대책은 구조적 요인을 해소하는데 미흡하다는 것이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팀장은 "소득을 늘릴 수 있는 기본적인 방안은 일자리지만, 이를 늘리는 일이 쉽지 않아 소득 상승 폭은 줄고 소비지출이 감소하는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며 "단기적인 대책도 필요하지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는 비전을 가지고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줄어드는 소득을 재정으로 보전하고 소비 진작을 위해 세금을 깎아주는 것보다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기업 내 쌓이는 사내유보금을 풀어낼 수 있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 투자로 고용이 늘면 소득 기반이 안정될 수 있고 이는 자연스럽게 소비지출 증가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당장 민간 투자의 발목을 잡고 있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중국 '사드 보복'과 같은 대외적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단기 대응보다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김광석 한양대 겸임교수는 "궁극적으로 투자가 살아나야 소득도 소비도 힘을 받게 된다"라며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투자 환경 조성해 경기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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