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 경찰, 北외교관에 '조준'…김정남 암살 北소행 결론날까
北대사관 직원 실명·사진 공개…외교파장 우려에도 정면돌파 선택
면책특권 주장, 대사관 내 은신 때 체포·수사 불가능…미궁에 빠질 가능성
(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김상훈 황철환 특파원 = 김정남 암살사건에 대한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가 이번에는 자국 주재 북한대사관을 겨냥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 북한 외교관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김정은 북한 정권의 배후 의혹을 규명할지 관심을 끈다.
칼리드 아부 바카르 말레이시아 경찰청장은 22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지금껏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이번 사건의 연루자 2명이 북한 국적자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중 한 명은 북한대사관 소속 2등 서기관인 현광성(44)이다. 다른 한 명은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37)이다.
현광성이 대사관 내에서 어떤 업무를 맡았고 김정남 암살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외교관으로 위장한 첩보원이나 공작원일 가능성이 있다.
특히 현광성은 지난 17일 체포된 북한 국적자 리정철이 외국인 노동자 신분인 것과 달리 대외적으로 본국을 대표하는 외교관 신분이어서 상징성이 크다. 이번 사건의 배후에 김정은 정권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열쇠와 같다.
북한의 유일한 항공사인 고려항공은 조선인민군 소속 기관이란 의혹을 받는다. 그렇지 않더라도 북한 체제에서 고려항공 직원들은 대외적으로 공무원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 북한 정부 관계자 두 명이 김정남 피살사건의 연루자로 지목된 셈이다.
칼리드 청장은 이들을 용의자로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현광성과 김욱일이 김정남 사건에 연루됐다고 볼 이유와 근거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 국가의 경찰 수장이 다른 나라 공관 소속 직원을 살인 사건의 연루자로 지목하고 국내외 언론에 이름과 사진 등 신상을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심각한 외교 분쟁을 초래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도 칼리드 청장이 이들 용의자의 신상을 밝힌 것은 단순한 의혹을 넘어 이들이 김정남 암살에 관여했다는 진술을 이미 체포한 다른 용의자들로부터 받았거나 사건 전후 행적을 통해 혐의점을 포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대사관이 수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함에 따라 말레이시아 경찰이 '공개 수배' 형태의 '강수'를 뒀다는 분석도 있다.
말레이 경찰은 이날 기자회견에 앞서 북한대사관에 두 사람을 경찰에 출석시켜 조사를 받도록 해달라는 공문을 전달했다.
북한대사관이 현광성과 김욱일을 말레이시아 경찰에 출석시킬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지만, 칼리드 청장은 그들이 끝까지 출석을 거부하면 "우리에게 올 수밖에 없도록 만들겠다"고 장담했다.
이들이 계속 경찰에 출석하지 않으면 북한 배후 의혹은 더욱 짙어진다. 그렇다고 이들이 경찰에 출두했다가 김정남 살해 피의자로 구속되면 북한 측은 큰 타격을 피할 수 없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북한대사관이 계속 협조하지 않으면 북한대사관의 다른 직원들로 수사를 확대하는 등 압박의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김정남이 피살된 방법과 북한 국적의 다른 용의자 4명이 범행 직후 평양으로 도피한 점 등 사건을 재구성해보면 조직적인 범행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에 북한 외교관의 개입 사실이 확인되면 배후에 북한 정권이 있다는 의혹이 사실상 입증되면서 양국 관계에 큰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광성이 면책특권을 가진 외교관이어서 말레이시아 경찰이 강제로 체포할 수 없다. 현광성과 김욱일이 북한대사관 안에 은신해 있으면 둘 다 검거할 방법이 없다. 결국, 북한 측에 달린 셈이다.
김정남의 사인이 아직 불분명한 가운데 이미 체포된 북한 국적 용의자 리정철이 계속 혐의를 부인하고 경찰이 다른 용의자들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하면 이번 사건이 미궁에 빠질 수도 있다.
북한대사관은 예상대로 이날 말레이시아 경찰의 기자회견 이후 성명을 통해 수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며 리정철을 비롯한 체포된 용의자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런 북한 측에 수사 협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외교 소식통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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