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더러운 짓 또 뒤처리해야" 동남아 北거부감 확산 조짐
동남아 언론 강력 반발…"말레이 법규·주권 존중하라"
말레이·인도네시아에서는 북한 제재안까지 검토 움직임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말레이시아에서 벌어진 김정남 암살사건의 배후로 북한이 유력해지면서 동남아 국가들의 불만과 혐오가 속속 목격되고 있다.
먼저 태국 일간지 방콕포스트는 21일(현지시간) '용납할 수 없는 북한'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그동안 누적됐던 불만을 한 번에 표출했다.
신문은 "북한 공작원들이 다시 한 번 동남아에서 긴장과 분노를 유발했다"며 "이번에는 말레이에 피를 뿌렸고 김정남 살해는 단순한 외교 사안을 초월한 사태"라고 지적했다.
원색적인 비난도 아끼지 않았다.
신문은 "김씨 왕조의 형제, 왕족 살해는 평양 안에서 일어나는 한에서 용납되거나 조심스럽게 다뤄져 왔다"며 "이제 그 범죄가 해외까지 뻗쳐서 또다시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들이 김씨 3대 세습자의 살인범들이 자행한 그 더럽고, 피비린내 나고, 야만적인 범죄의 뒤처리를 해야 할 판"이라고 분개했다.
방콕포스트는 그간 북한에 의해 자행된 범죄 사건을 일일이 열거했다.
1978년 태국 여성 아노차 판초이 납치사건, 1983년 미얀마 아웅산 테러,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 등이 소개됐다.
신문은 김정은 암살에 가담했다가 체포된 베트남, 인도네시아 여성이 죄 없는 피해자라고까지 주장했다.
실제로 이들 용의자는 북한 국적으로 확인된 다른 남성 용의자들에게 돈을 받고 속아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문은 이들 여성이 북한 독재자가 만든 게임의 죄 없는 노리개였다며 "여성을 범행에 동원하는 북한의 역사는 한 권의 책으로 묶어도 충분하다"고 비난했다.
신문은 이어 국제사회의 범법자인 북한이 아직 문명국가로 대접받고 있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놀란다며 태국과 아세안이 일말의 법치도 거부하는 북한에 조처해야 한다고 신문은 촉구했다.
말레이 일간 뉴스트레이츠타임스도 이날 '말레이의 주권과 법을 존중해야 한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북한의 안하무인격 행보를 용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김정남 암살이 말레이 영토 위에서 벌어진 것은 참 불행한 일이라며 "북한이 김정남 직계가족의 승인 없이 시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외교적 언쟁이 시작됐다"고 양국 간 갈등을 조명했다.
이어 신문은 "국가 간 관계는 왔다 갔다 해선 안 된다. 외교관행은 준수돼야 한다"며 "말레이가 북한과 수교한 얼마 되지 않은 국가 중 하나라는 사실이 계속 무시돼고 있다"고 북한을 공격했다.
이어 북한이 비논리적 주장으로 공정한 수사를 할 수 있는 말레이의 권리를 부정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며 "투명한 수사 결과는 말레이가 모든 이의 안전한 정착지라는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에 대한 동남아 국가들의 거부감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동남아 국가들의 정부들도 종전과 다른 태도를 노출하고 있다.
특히 북한과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말레이에서는 비자면제협정 파기 등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요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말레이축구연맹(FAM)도 내달 28일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북한과의 차기 아시안컵 예선전 경기 장소를 제3국으로 변경해 달라고 아시아축구연맹(AFC)측에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경찰도 북한 간첩 활동의 온상으로 지목된 자카르타 중심부의 북한 식당을 조사하기로 했다고 말레이 현지언론 더 스타가 이날 보도했다.
인도네시아는 김정남 암살 여성 용의자 중 1명인 시티 아이샤의 국적국으로, 이번 조사 결정은 인도네시아가 북한 공작원들의 주요 활동무대가 됐다는 싱가포르 뉴스통신사 아시아원의 보도에 이어 나왔다.
아시아원은 정보기관 소식통을 인용해 말레이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3국이 지난 20년간 북한 정찰총국이 가장 선호하는 국가였다며 이들 국가에서 북한 공작원들의 네트워크가 가장 넓게 형성됐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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