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김정남 피살된 말레이 공항 현장 가다…분주함 속 긴장감
출국준비 중 독극물 추정 공격받고 30m 떨어진 안내데스크에 걸어가 도움 요청
종일 붐비는 국제공항 범행무대 선택…공항당국·경찰, 사진 촬영 제지 등 민감한 반응
(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김상훈 황철환 특파원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46)이 피살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2(KLIA2·제2청사)는 세계의 이목을 끈 암살 사건이 일어났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승객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등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연합뉴스 기자가 15일 오전(현지시간) 찾은 이 공항의 출국 수속장에는 수백 명의 여행객이 몰려있었다.
김정남이 첩보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최후를 맞은 공항 내 키오스크(셀프체크인 기기) 주변에서는 피격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이틀 전 발생한 김정남 피살 사건을 모르는 듯 여행객들은 키오스크에 접속해 항공표를 뽑는 등 출국 수속을 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내외신 기자 10여 명이 취재 경쟁을 벌이자 공항 당국과 경찰이 사진과 영상 촬영을 제지하는 등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공항 경찰대의 한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묻는 말에 "수사 중인 사안이라서 어떤 질문에도 답할 수 없다"고 입을 닫았다.
피격당한 김정남의 도움 요청을 받고 그를 공항 의무실로 옮긴 것으로 알려진 공항 안내데스크 직원들도 "사생활 보호 문제로 관련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며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밤새 경찰 발표와 일부 공항 직원의 증언 등을 통해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김정남은 13일 오전 9시께 마카오행 항공편을 타기 위해 키오스크를 이용, 출국 수속을 밟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행기 출발을 1시간 앞두고 있었다. 마카오에 사는 것으로 알려진 둘째 부인 이모 씨와 딸 김모 양 등 가족들을 만날 계획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김정남은 이름이 김철(Kim Chol), 1970년 6월 10일 평양 출생으로 기재돼 있는 여권을 갖고 있었다.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마카오, 말레이시아, 중국 등 해외를 떠도는 생활을 한 그가 반체제 발언으로 암살 위협을 받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신분을 위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정남의 은둔 행적은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막을 내렸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여성이 2명이 김정남을 독극물로 공격한 것이다.
셀랑고르주 범죄조사국의 파드질 아흐마트 부국장은 "김정남이 출국대기장 안내 데스크 직원에게 누군가가 자신을 뒤에서 잡고 얼굴에 액체를 뿌렸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정남은 키오스크 앞에서 공격을 받고 30m가량 떨어진 안내데스크까지 걸어가 "몸 상태가 안 좋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가 남긴 최후의 말로, 결국 병원 이송 도중 숨졌다.
사건이 일어난 제2청사는 국내선과 저가항공사 전용 터미널로, 항상 승객들로 붐벼 남의 눈을 피해 손쉽게 범행을 저지르고 달아날 수 있다는 점을 범인들이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김진호 대한항공 쿠알라룸푸르공항지점장은 "저가항공사 터미널이 종일 붐빈다는 사실을 노렸을 수 있다"며 "공항 보안이 최근 테러 위협 등으로 강화됐지만 많은 승객이 보안에 취약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공작원으로 의심되는 여성 2명의 소재는 오리무중이다. 범행 직후 택시를 타고 달아났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이미 출국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얀색 상의에 짧은 치마를 입은 용의자 1명의 모습이 공항 폐쇄회로(CC) TV에 잡힘에 따라 현지 경찰이 뒤를 쫓고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 현지 우리 교민들이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촉각을 곤두세우며 신변 안전을 걱정하는 모습이 감지된다.
공항에서 만난 한 교민은 "말레이시아에는 북한대사관이 있는 등 나름대로 북한과 관련이 깊은 곳인데 이런 일까지 생기니 신변에 위협을 느낀다"면서 "어제부터 계속 한국의 친지들로부터 괜찮냐는 안부 전화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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