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베이식 "계산하지 않고 잡념 없이 음악하겠다"
매월 신곡 내는 프로젝트 'WTF'…첫 싱글 '마이 웨이브'
"과거 빈지노와 힙합 아이돌 제안받은 적도"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대중의 불같은 관심은 옮겨가기 마련이다.
지난 2015년 엠넷 '쇼미더머니 4' 우승자인 래퍼 베이식(본명 이철주·31)도 절실히 느낀 말이다.
무명에 가까웠던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위너의 송민호와 우승을 다투며 힙합계 새 얼굴로 떠올랐다. 속도감 있는 랩 플로우(흐름)가 수려했고 뭉개지는 발음 없이 한국어와 영어 랩 가사 모두 전달력이 좋다는 호평을 받으며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지난해 '쇼미더머니 5' 음원이 한창 차트를 이끌 때 발표한 미니앨범 '나이스'(NICE)는 그 후광도 없이 별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소위 '정통' 힙합으로 '한칼'을 보여줄 거란 기대와 달리 멜로디가 강한 대중적인 사운드는 힙합 마니아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저도 과거 상업적인 색채의 음악에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경험이 있어 잘못한 건 없는데도 부끄러워지더군요. 많은 분에게 음악을 들려드리고자 듣기 편한 선곡을 했는데, 이제 그런 부담을 떨치려고요. 원래 하고 싶었던 것, 잘하는 것을 하기로 마음먹었죠."
소신을 실천할 프로젝트는 '웨이 투 파운데이션'(Way to Foundation, WTF)이다. '월간 윤종신'처럼 올 한해 매월 신곡을 발표하는 프로젝트다.
그 첫 곡으로 이달 싱글 'WTF 1: 마이 웨이브'(My Wave)를 공개했다.
최근 종로구 수송동에서 인터뷰한 베이식은 "이전 앨범에 대한 힙합계의 '아쉽다'는 반응을 한방에 뒤집으려는 게 아니다"며 "올 한 해 동안 뒤처진 트렌드에 맞추고 잘하는 걸 하면서 새로운 시도도 보여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로젝트 제목의 '파운데이션'은 그가 언더그라운드 시절이던 2007~2009년 발표한 석 장의 믹스테이프(Mixtape: 기존 트랙을 리믹스한 비정규 작업물) 시리즈의 제목이다. 그는 "언더그라운드 힙합계에서 인정받았던 '파운데이션' 시절로 돌아가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강렬한 트랩 힙합인 '마이 웨이브'는 누가 뭐라든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신념이 담겼다. 가사는 다소 아쉽지만 매력적인 래핑과 세련된 트랙만으로 제 실력이 드러났다.
변화가 감지됐는지 멜론 등의 감상평에는 '베이식다운 곡, 취향저격', '베이식이 다시 돌아왔다', '이래야 베이식이지'란 평이 이어졌다.
그는 "만족한다"며 "빈지노와 도끼 등 힙합 레이블 일리네어 레코즈 소속 래퍼들이 '자기 것'을 지키며 잘 됐듯이 저도 제 영역을 넓혀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중고교 시절 미국에서 생활한 그가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힙합 시장에 진입한 건 대학교 1학년 때이다.
대구가 고향인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산부인과 의사이던 아버지가 미국 대학에 2년간 교환 교수로 가면서 미국 땅을 밟았다. 가족이 한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그곳에서 학업을 계속한 그는 보스턴의 뱁슨 대학에 진학해 마케팅을 공부했다.
당시 취미로 자작곡을 인터넷에 올리던 그는 DJ소울스케이프가 힙합사이트에서 연 '랩 컴피티션' 이벤트에서 입상하며 바스코, 이센스 등이 있던 힙합 크루 지기펠라즈에 합류했다.
이후 대학을 휴학하고 3~4년가량 지기펠라즈에서 활동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때 지금의 방탄소년단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로부터 연습생 제안을 받기도 했다.
"힙합 아이돌 그룹을 만든다고 했죠. 빈지노와 함께 제안을 받았는데 계약 기간이 7년이고 학업도 마쳐야 했어요. 당시 교제하던 지금의 아내도 업으로 삼길 원하지 않았고요. 고민을 많이 했는데 빈지노와 얘기를 나눈 끝에 둘 다 하지 않기로 했죠."
미국으로 돌아가 학업을 마친 그는 2013년 6월 귀국해 10월 필라코리아에 입사했고 스포츠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그해 12월 5년간 교제하던 여자친구와 가정도 꾸렸다. 4월이 되면 두 돌이 되는 아들도 뒀다.
그는 "가정을 꾸렸으니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는 게 부끄러워 직장 생활을 열심히 해야했다"며 "1년간 다니며 국가대표나 프로팀 선수들에게 옷과 용품을 지원했는데 '데드라인'에 맞추는 게 무척 힘들었다. 사회생활도 처음이어서 스트레스가 컸다"고 떠올렸다.
다시 음악으로의 회귀를 고민할 때, 바스코와 스윙스가 '쇼미더머니'에 출연한 것을 보고 도전할 용기를 얻었다. 우승까지 할 줄은 몰랐지만 꿈을 위한 의미 있는 발판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큰 스토리가 '쇼미더머니 4'에 나간 것"이라며 "사실 지기펠라즈 시절부터 랩은 잘하는데 캐릭터가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웃었다.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지만 예전처럼 '맨땅에 헤딩'은 아니다. 기획사가 있고 인지도를 얻었으며 이번 신곡에 피처링해준 식케이처럼 든든한 힙합 동료들도 있다.
그는 "래퍼라는 길로 돌아온 데 후회는 없다. 앞으로도 후회할 것 같지 않다"며 "3일 동안 밤을 새우며 밖에도 안 나가고 비트에 가사를 쓰던 때가 있었다. 올해는 곡을 만들면서 '이 멜로디 라인이 터질 거야'라고 계산하지 않고 잡념 없이 음악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또 하나의 목표는 믹스테이프 시리즈의 '파운데이션 4'를 내는 것"이라며 "계획을 다 이룬다면 올해는 성공적"이라고 말했다.
mimi@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