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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 울음에 자다가도 벌떡"…환청 시달리는 구제역 피해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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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 울음에 자다가도 벌떡"…환청 시달리는 구제역 피해農

첫 발생 농장주 "자식 같은 소 195마리 묻으면서 확산 안 되기만 빌어"

당국 통제로 바깥 출입 못해…"구제역 퍼뜨린 죄인…뜬눈으로 밤 지새워"

(보은=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눈만 감으면 송아지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생떼 같은 소 195마리를 땅에 묻었으니, 어디 제정신이겠습니까"





올해 첫 구제역이 발생지인 충북 보은의 젖소농장 주인 최모(64)씨는 14일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자식 같은 소들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을 이같이 표현했다.

"하루아침에 구제역을 퍼트린 죄인이 됐다"고 괴로운 심경도 내비쳤다. "잠을 이루지 못해 매일 뜬눈으로 밤을 지샌다"며 "하루하루 사는 게 지옥"이라고도 했다.

그는 이 지역서 제법 이름난 축산인이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곳에서 처음 낙농에 손을 댔고, 철두철미한 사양관리로 2010년 해썹(HACCP·식품안전관리 인증) 인증도 받았다. 지난해 충북도 젖소 품평회에서는 그랜드 챔피언과 2등상을 석권하면서 업계에 이름을 떨쳤다.

그러던 그가 지금은 '죄인 아닌 죄인'이 돼 고통 속에 생활하고 있다. 방역 당국의 통제 때문에 1주일 넘게 바깥출입도 못 하는 처지다.

그의 농장에 구제역이라는 날벼락이 떨어진 것은 지난 5일. 평소와 다름없이 젖소를 돌보던 그는 일부 어미 소 젖꼭지에 수포가 생긴 것을 발견하고는 매뉴얼대로 보은군에 연락했다.






악몽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별일 아니려니 하던 기대와 달리 키드검사는 구제역 양성반응을 보였고, 곧 이은 정밀검사 결과도 똑같이 나왔다. 전국적으로 올해 첫 구제역 발생이 확인된 것이다.

농장은 즉각 폐쇄됐고, 기르던 소는 모두 살처분돼 땅에 묻혔다. 그중에는 태어난 지 며칠 안 된 어린 송아지도 다수 포함됐다.

그는 소가 줄줄이 쓰러지는 주사를 맞고, 중장비에 실려 축사 옆에 묻히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했다. "못난 주인을 용서하라"는 이별 인사조차 나누지 못했다.

슬픔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방역 당국은 백신 접종을 제대로 안 한 탓이라고 그를 몰아붙였다. 정부 관계자 입에서 모럴해저드가 있었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렇지만 그의 귀에는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면서 오직 구제역이 다른 농장에 퍼지지 않기만을 빌고 또 빌었다.

정든 소를 땅에 묻고 온 날도 그는 주변 농민들에게 "구제역 예방을 위해 방역을 강화해 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소를 잃는 아픔을 이웃까지 맛보게 하고 싶지가 않아서다.







그런 그의 기도는 나흘 만에 무참히 무너졌다. 아랫마을 한우농장서 두 번째 발병 소식이 들리더니 며칠 만에 발생농장이 7곳으로 늘었다.

그는 지금도 아내·아들과 함께 농장에 갇혀 있다. 읍내에 사는 딸과 며느리가 배달해주는 식료품과 생필품도 방역초소 직원들이 대신 받아다가 농장 입구에 놓고 간다.

그러나 이만한 불편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영문도 모르고 땅에 묻힌 소를 생각하면 숨 쉬는 것조차 호사스러울 정도다.

그는 인터뷰 도중 '죄인'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되풀이했다. 희생된 소에 대한 미안함과 첫 발생지라는 부담이 뒤섞인 말로 해석됐다.

정부 지침대로 백신을 놨다면 '죄인' 아닌 '첫 피해자'라는 위로에도 그는 꽁꽁 닫힌 마음을 열 기미가 없었다.

그러면서 영문도 모른채 희생된 가여운 생명과 이웃에 대한 걱정을 지친 목소리로 되뇌었다.

"더 많은 소가 죽어 나가기 전에, 하루빨리 이놈의 몹쓸 병이 종식돼야 합니다"

bgipar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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