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 전월세 상한제 도입되나…20일 논의
국회 법사위 소위서 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심사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의 변수 속에 야당이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을 추진하면서 이 문제가 부동산 시장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두 제도는 주택 임대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면서 정부가 개인간의 사적 임대계약에 대해 직접적인 가격 통제를 가하는 것이어서 제도 도입시 커다란 파장이 예상된다.
야당과 시민단체 등은 세입자 보호를 위해 전월세 상한제 등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정부와 부동산 전문가들은 사적 계약에 지나친 개입으로 인해 임대시장 불안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 야당 "전월세 상한제 도입 필요"
14일 국토교통부와 법무부 등에 따르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1소위는 오는 20일 국회에서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을 골자로 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을 논의할 예정이다.
첫 심사 자리인 만큼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적지만 일단 법안 개정 여부를 놓고 활시위가 당겨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도입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김상희 의원과 국민의당 윤영일 의원 등 야당 의원이 제출한 것들만 9건에 이른다.
전월세 상한제 등은 지난 19대 국회의 서민주거특별위원회에서도 도입 여부가 논의됐으나 시장에 미치는 부작용 등을 우려해 주택임대차보호법상의 전월세 전환율을 높이고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를 마련하는 '절충안'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지난해 새로 20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은 당론으로 전월세 상한제 도입을 공식화했고, 곧바로 제도 도입을 요구하는 야당 의원들의 입법 발의로 이어졌다.
이 가운데 박영선 의원이 제출한 법안은 현 임차인이 원할 경우 2년 단위의 전세 계약 갱신을 1회에 한해 요구할 수 있고, 집주인이 재계약시 전세금을 5%를 초과해 인상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집주인이 다른 세입자를 들이고 싶어도 임차인이 재계약을 요구할 경우 2년은 더 살도록 보장해주고 전세금 인상도 5% 이하로 제한하는 것이다.
윤영일 의원의 발의안은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 권한을 2회 허용해 최장 6년간 거주가 보장되도록 하고 역시 재계약시 전세금은 5% 초과해서 인상할 수 없도록 했다.
또 광역자치단체에 공정임대료산정위원회를 설치해 지역별로 적정한 공정임대료를 산정, 공표하도록 했다.
김상희 의원은 현행 2년 단위의 주택 임대차 계약기간을 아예 3년으로 연장하고, 1회의 계약갱신권한을 부여해 총 6년간 거주하도록 하는 안을 발의했다.
야당은 이달 국회 논의를 시작으로 전월세 상한제 도입을 본격화한다는 방침이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2월에 처리할 '생활비 절감 3법'의 하나로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윤영일 의원은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고 있지만 주택 임대차 시장의 수급 불균형으로 전셋값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주택 세입자의 주거불안과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세입자의 주거권 보호를 위해 임대료 인상률을 제한하고 계약기간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야당은 미국·독일 등 선진국에서도 임대차 시장 안정을 위해 임대차 갱신권한 부여하고, 인상률 상한선을 두고 있다는 점을 들어 제도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전월세 상한제 도입은 시민단체에서도 반긴다.
경실련 부동산·국책사업감시팀 최승섭 부장은 "전월세 문제는 주거 기본권에 대한 문제인데 최근 몇년간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서민들의 주거불안이 가중되고 있다"며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해 서민 주거비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 전문가·정부 "전세시장 부작용 커"
야당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부동산 시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사적 계약인 주택임대차 계약에 정부가 지나치게 간섭할 경우 주택 시장이 왜곡되고 집주인들의 임대사업 의지를 꺾어 임대주택 공급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전셋값 급등, 장기적으로는 전세 등 임대물량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부동산114 함영진 리서치센터장은 "계약갱신청구권 등으로 임대기간이 연장되고 전월세 상한제로 인상률이 제한되면 집주인들이 제도 시행 전에 너도나도 전셋값을 올리려 할 것이고 단기적으로 임대료가 크게 오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주택 임대차 계약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늘어난 1989년의 경우 그 해 전셋값이 17.5%, 이듬해인 1990년에는 4개월간 전셋값이 20.2% 뛰는 등 평균 16.8% 폭등한 바 있다.
또 임대료 통제 등으로 집주인들이 임대사업 의지가 줄어들 경우 주택 구매의욕 감소와 주택거래 침체로 이어지고, 결국 민간영역의 임대주택 감소로 이어져 전세시장은 더욱 불안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전세의 월세 전환을 가속화해 오히려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전월세 상한제로 인해 5%로 인상률이 제한되면 집주인들의 수익이 떨어져 인상률 제한이 덜할 것으로 보이는 월세로 돌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국민은행 박원갑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지금처럼 전세가 소멸돼가는 과도기에 계약갱신청구권이나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하면 전세 물량이 줄어들고 월세 전환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다"며 "목돈이 적은 신혼부부 등은 전세를 깔고 월급을 모아 내집마련을 해야 하는데 월세 비용 지출이 커지면 내집마련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심교언 교수는 "주택 임대료는 시장 수급 환경에 따라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것인데 이를 무리하게 통제하면 부작용이 생긴다"며 "당장 임대수익률 저하로 임대인의 개보수 의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고 중장기적으로 주택의 품질 저하와 슬럼화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정부의 기금을 받아 지은 공공성이 가미된 주택에 대해서는 임대료 통제를 할 수 있지만 민간의 영역까지 규제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외국에서도 극히 일부가 임대료 상한을 두고 있지만 (현재 야당이 발의한 법안과 달리) 상당히 복잡한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특히 임대료 상승률 등을 제한하고 있는 선진국의 경우 임대료 상승폭이 커지고 각종 소송과 분쟁에 휘말리는 등 오히려 부작용이 크다는 점에 주목한다.
독일의 경우 2015년 6월부터 바이에른, 베를린 등 임대료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지역에 한해 임대차 계약을 신규로 체결하는 경우 임대료를 주변 시세의 10%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2015년 평균 2.3% 올랐던 임대료 가격이 오히려 제도시행후인 2016년에는 5.6%로 상승폭이 커지면서 비판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또 영국은 1965년부터 세계대전 이후 주택공급 부족에 따른 임대료 급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공정임대료 규제를 도입했으나 1980년대 말부터는 민간임대 활성화를 위해 시장가격 임대료를 허용하는 지속적인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 김태섭 연구실장은 "최근 정부 정책이 주택시장에 대한 규제 완화에서 규제 강화 쪽으로 기운데다 금리 인상, 대출 규제, 공급 과잉 등 여러 악재가 혼재해 있는데 전월세 상한제 같은 강력한 시장 규제를 내놓는다면 임대차 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며 "부정적 파급효과를 충분히 검증한 뒤 신중하게 도입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전월세 상한제 등 도입에 부정적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지난 9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전월세 상한제에 대해 "전월세상한제는 (지금처럼) 시장이 안정된 상황에서 도입했을 때 급격한 변화가 예상된다"며 "이런 것이 과연 중산층과 서민 계층을 도와주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20일 열리는 소위에서 반대 의견을 전달하기로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재 전세시장이 안정돼 있고 입주물량이 많은 곳은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5% 인상률'이 오히려 전셋값을 올리는 빌미가 될 수도 있다"며 "전월세 상한제보다는 서민들이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와 임대보증금 반환 보증보험을 활성화하는 등 임대차 시장 인프라 개선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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