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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축전염병 '쇼크'…방역시스템 사실상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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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축전염병 '쇼크'…방역시스템 사실상 '붕괴'

당국은 관리부실, 농가는 모럴해저드…반복되는 구제역·AI 재앙

매년 터지고 나서 뒷북 대응…수습하느라 혈세만 수조원 줄줄

백신 수입에만 의존하는 구조도 문제…"한국형 백신 개발해야"

(서울=연합뉴스) 정열 정빛나 기자 = 사상 최악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창궐에 이어 정부가 예방을 장담했던 구제역까지 확산하면서 대한민국이 가축 전염병으로 초토화될 위기에 처했다.






정부는 2010~2011년 사상 최악의 구제역 파동을 겪은 뒤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포기하면서까지 '백신 방어막 구축'에 나섰으나 허술하기 짝이 없는 백신 접종의 실상이 드러났다.

이미 당국의 무능과 무사안일, 일선 농가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이번 사태의 원인이란 점이 드러난 만큼 매년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며 수조원의 혈세를 낭비해온 구제역 정책을 근본부터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매번 일이 터지고 나서 해외에서 백신을 수입하려고 허둥댈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 발생한 바이러스 유형에 적합한 '한국형 백신'을 조속히 개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 연례행사된 구제역·AI…매번 일 터지면 '허둥지둥'

지난해 11월 16일 전남 해남 농가에서 최초 AI 의심 신고가 접수된 뒤 범정부 차원의 관계장관회의가 열린 것은 그로부터 26일이나 지난 뒤였다.






AI 위기경보가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된 것은 바이러스가 사실상 전 지역에 확산한 뒤인 지난해 12월 15일이었다.

사상 최악으로 평가받는 이번 AI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안이했고 초동 대응이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당시 나라를 뒤흔든 '최순실 사태'가 터진 직후여서 정부의 컨트롤타워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였다는 것도 한 원인이었겠지만 이런 배경이 정부 부실대응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지난 5일 충북 보은 젖소농가에서 올해 첫 의심 신고가 접수된 구제역의 경우 대응은 AI보다 빨랐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정부가 엉터리 통계 수치를 근거로 맹신하던 구제역 백신 접종이 사실은 허점 투성이 숫자놀음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백신 접종을 농가 자율에 맡겨놓고 모니터링을 게을리한 정부의 무사안일과, 당장 코앞의 이익이 감소할 것을 우려해 백신 접종을 게을리한 일부 농가의 모럴해저드가 맞물리며 구제역 방어 시스템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여기에 돼지 방역에 집중하느라 소는 소홀히 했던 점, 'A형' 구제역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했던 점 등도 정책적 판단 오류로 지적된다.

정부는 애초 통계와 달리 일부 농가의 모럴해저드 등으로 백신 접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자 뒤늦게 전국 모든 소에 대해 일제접종을 하기로 했지만 이마저도 백신 물량 부족으로 차질이 빚어졌다.

정부가 일제접종을 추진 중인 소는 283만 마리에 달하지만, 이들에게 접종해야 할 'O+A형' 백신 물량은 190만 마리분밖에 안 돼 93만 마리분이 부족하다.

정부가 미처 대비를 못했던 'A형' 구제역이 경기 연천 젖소농가에서 터지고 사상 처음으로 'O형'과 'A형'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야기된 문제다.






다급해진 정부는 해당 백신을 생산하는 영국의 제약회사에 수입을 긴급히 요청하는 등 뒤늦게 허둥지둥하고 있지만 이른 시일 내에 수입이 가능할지도 불투명한 실정이다.

구제역은 2000년 국내에서 처음 창궐한 이후 지난해까지 모두 8번 발생했고, 2014년부터는 연례행사처럼 발생하고 있다.

지난 16년 동안 살처분 비용과 생계안정자금 등으로 투입된 혈세만 3조3천127억원에 달한다.

올해도 구제역이 확산할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소·돼지고기 수급 안정을 위해 필요시 수입 물량을 확대하기로 했지만 이 역시 혈세가 투입되는 문제여서 이래저래 납세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 수입 백신, 정말 효과 있나…근본대책 마련 시급

정부는 2010년 최악의 구제역 파동을 겪으면서 이듬해인 2011년부터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포기하면서까지 적극적인 백신 정책을 시행해 전국의 모든 소와 돼지에 백신을 접종하도록 했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하는 구제역 백신은 국내 백신 회사가 영국 메리알사(社)에 제조를 의뢰해 수입한 뒤 행정기관과 축협을 통해 일선 농가에 공급하고 있다.

한마디로 구제역 예방 백신을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인데 문제는 이 백신을 접종하고도 구제역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A형 구제역이 발생한 경기 연천 젖소농가의 경우 경기도 AI·구제역 재난안전대책본부 조사 결과 A형 구제역 바이러스 항체 형성률이 90%인 것으로 나타났다.

항체 형성률이 높았는데도 구제역이 발생한 것이다.

앞서 O형 구제역이 발생했던 충북 보은과 전북 정읍 농가의 경우 항체 형성률이 5~19% 수준이어서 백신 접종을 소홀히 한 것이 구제역 발생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2015년 1월 구제역 파동이 일어났을 때는 항체 형성률이 100%인 돼지에서도 구제역이 생겨 이른바 '물백신' 논란이 일었다.

이때는 백신을 만드는 데 사용한 외국 균주가 국내에서 번진 바이러스의 유형과 달라 이런 현상이 발생했다는 분석이 나왔고, 결국 정부는 새로운 백신을 들여오기로 결정한 바 있다.

정부는 백신에는 문제가 없고 제대로 접종하기만 하면 효과가 있다는 입장이지만 일선 농가에서는 백신의 효능에 대한 의심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충남대 수의학과 서상희 교수는 "이미 토착화한 구제역 예방에는 맞춤형 백신 개발이 정답"이라며 "백신을 다양화해 충분히 확보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한국형 백신을 개발하지 않을 경우 2010~2011년 구제역 대란이 재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형 백신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2017년도에 추진할 신규 연구과제 50건 중 하나로 구제역 백신 개발을 선정하고 올해 구제역 연구에 작년 대비 79% 증가한 23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르면 3~4년 내에 한국형 백신이 상용화될 수 있을 전망이다.

농가에 대한 백신 접종법 교육을 강화하고 중앙정부, 지자체, 농가의 역할 분담이나 업무 연계를 유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축산농가 중에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를 쓰는 곳이 많아 외부로부터의 구제역 바이러스 유입 가능성이 큰데도 제대로 통제가 안 되고 있는 것도 개선해야 할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된다.






passion@yna.co.kr

shin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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