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트럼프에 주먹질·불타는 성조기…이란 혁명일 대규모 반미집회
보수 세력 결집해 반미 정서 고조…로하니 대통령, 핵합의 성과 강조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모양을 한 우스꽝스러운 허수아비가 등장하자 사람들이 주변으로 몰려들더니 욕을 퍼부었다.
어떤 사람은 막대기로 이 허수아비를 때리는 시늉도 했다.
10일(현지시간) 오전 테헤란 아자디 광장에서 열린 이란 이슬람혁명 38주년 기념집회는 여느 때보다 미국에 대한 적대감이 고조한 분위기였다.
매년 열리는 기념집회지만 올해는 트럼프 대통령이 불을 지핀 셈이나 다름없었다.
취임하자마자 이란을 테러위험국으로 보고 미국 입국을 금지했는가 하면 미사일 발사에 "공식적으로 경고한다"면서 지체 없이 제재를 가한 탓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직설화법이 이란인을 자극한 듯했다.
가족과 함께 집회에 나온 카림(43)씨는 "트럼프가 얼마 전에 이란에 '불장난하지 마라'라고 했다"며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닌 저급한 수준"이라고 비난했다.
넓은 아자디광장 이곳저곳에선 "마르그 바르 움메리카"(미국에 죽음을)이라는 구호가 들려왔다.
트럼프 허수아비를 들고나온 카리미(33)씨는 "미국은 이슬람혁명 이후 38년간 이란을 항상 적대시했다"며 "트럼프가 미국의 추악한 본모습을 보여줘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갑자기 환호하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성조기가 불타고 있었다.
사람이 밀집해 위험할 법도 했지만 경찰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는 않았다.
불타는 성조기 주변의 사람들 역시 "마르그 바르 움메라카"를 크게 외쳤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수만 명이 거리에 나와 혁명 지도자 이맘 루홀라 호메이니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사진을 들고 테헤란 시내 곳곳에서 아자디 광장을 향해 행진했다.
1979년 2월 이란 이슬람혁명은 이란뿐 아니라 중동과 국제사회의 흐름을 순식간에 뒤엎어버린 전 세계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종교계를 중심으로 한 혁명 세력은 친미·친서방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최고 종교 권위자가 이슬람 율법으로 다스리는 신정일치 체제의 공화국을 수립했다.
혁명 세력으로선 미국은 이란의 자원을 수탈하고 이슬람 정신을 훼손하는 제국주의적 침략자였다. 이란과 미국의 국교가 단절된 주테헤란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도 그해 11월 터졌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도 이날 집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군중을 향해 "거리에 시민 수백만이 나온 것은 백악관의 세입자(트럼프 대통령)가 이란에 한 부당한 말에 대한 우리의 대답"이라며 미국을 직접 겨냥했다.
이어 "오늘 이란 국민은 전세계에 '이란에 존경과 품위로 대하지 않고 위협한다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재임 중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핵협상 타결의 성과를 부각하는 데도 주력했다.
반미 여론이 높아질수록 로하니 대통령의 경쟁 진영인 보수파가 지지를 더 얻게 되고 이는 석 달 뒤 있을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중도·개혁파의 지지를 받는 로하니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재선을 노린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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