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맞으며 진짜 설원 가른 듯"…VR 스키 타보니
한국 VR·AR 콤플렉스서 도약 꿈꾸는 이노시뮬레이션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가상현실(VR) 헤드셋을 쓰고 스키 모양의 발판에 양발을 얹으니 눈 깜짝할 새 고산지대 스키장에 와 있는 느낌이다. 사방의 그래픽이 그럴듯했다.
왼발, 오른발에 힘을 주며 스키 타는 요령을 익히는 '튜토리얼'이 10여초 지나자 본격적인 레이스가 시작됐다.
만년설이 쌓인 봉우리를 마주하고 가파른 산비탈을 내려가는 코스. 미끄러지는 속도가 제법 빨라서 덜컥 겁이 나고 스키 폴(Pole)을 잡은 두 손에 힘이 들어갔지만, 바위벽에 부딪혀도 다치지 않는 걸 확인하고 이내 편안히 활강할 수 있었다.
그만큼 실감 났다는 뜻이다.
헤드셋과 연결된 스피커에서 눈밭에 스키 날이 스치는 소리가 들리고, VR 장비 전면에 설치된 선풍기가 스키 속도에 따라 연신 찬바람을 쏟아내 자꾸 가짜 스키라는 걸 잊었다.
1분 정도 지나 VR 스키에 익숙해질 즈음 게임이 시작됐다. 덩치가 산만한 불곰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고 앞발을 휘둘러 가까스로 왼쪽으로 피했다.
언제 추락했는지 모를 항공기 잔해를 지나치고, 산사태로 굴러내린 거대한 눈 뭉치를 넘었다. 또 빽빽한 침엽수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와 귀를 쫑긋 세운 순록 떼를 만났다.
레이스에 걸린 시간은 3분 20여초. 스릴이 상당해서 한 번 더 타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VR 헤드셋 특유의 어지럼증이 몰려와 잠시 스키 발판 아래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VR 기술을 적용한 이 가상 스키는 국내 중소기업 이노시뮬레이션이 VR 콘텐츠 개발사 텍톤스페이스와 손잡고 제작한 것이다.
15년 구력의 이노시뮬레이션은 그간 2차원(2D) 영상과 접목한 시뮬레이션 장비를 주로 생산해왔으나, VR 산업이 유망하다고 보고 2015년부터 시장 조사에 나서 최근 시제품을 내놨다.
기차, 항공기, 중장비 등 시뮬레이션 장비는 용역을 받아 고가에 소규모로 팔았지만, VR 가상 스키 같은 장비는 PC방이나 가정에도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내에만 수천 대 이상의 잠재 수요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노시뮬레이션은 미래창조과학부가 이날 서울 마포구 상암동 DMC 누리꿈스퀘어에 개소한 '한국 VR·AR 콤플렉스'(KoVAC)에 작은 부스를 차렸다. 가상 스키 외에도 VR을 접목한 4D 의자를 전시한다.
VR에 관심 있는 바이어는 물론 일반 시민들에게 VR 콘텐츠와 체험 장비를 소개해 판로를 여는 동시에 KoVAC에 입주한 다른 중소기업, 개발자들과도 교류를 넓혀나갈 계획이다.
미래부는 2020년까지 이노시뮬레이션 같은 회사를 50곳 이상 유치, KoVAC을 한국 VR·AR 산업의 메카로 육성할 방침이다.
유승열 이노시뮬레이션 선임 연구원은 "VR은 여러 업체가 아이디어를 공유할 때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라며 "KoVAC 같은 인프라가 우리에게는 매우 소중하다"고 말했다.
hanj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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