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백호 "풍파를 겪고 나니 '낭만에 대하여'가 나왔죠"
붓 놓고 마이크 든 지 40년…기념 앨범 내고 공연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위로 누나 두 분이 있는 장남이자 집안 장손인데 스무 살에 어머님이 돌아가셨죠. 어머님이 돌아가시지 않았으면 가수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미대 진학을 꿈꿨던 청년 최백호(67)는 부모가 일찍 돌아가시고 가세가 기울자 붓을 놓고 마이크를 들었다.
군에서 건강상의 문제로 제대하고 삶이 막막하던 시절, 친구의 매형이 운영하는 부산 서면의 라이브 클럽에서 노래를 시작했고 1주일 만에 윤시내의 '열애'를 작사한 배경모 씨에게 스카우트됐다.
꿈이 아니던 가수의 길로 들어선 지 어느새 40년. 1977년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로 데뷔한 그가 가수 인생 불혹을 맞았다.
"40년 선을 긋고 돌아보니 '다행히 살아남았구나'란 생각이 드네요. 허허."
그는 8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가수 인생 불혹이 되고 보니 어떤 면에선 욕심을 버렸다"며 "적당히 살겠다는 게 아니라 젊은 시절에는 돈을 벌려는 욕심이 있었고 오랜 시간 대중을 의식했는데 그런 마음을 내려놓았다는 의미"라고 느리고 친근한 경상도 사투리로 말했다.
그는 강산이 네 번 변하는 동안 노래할 수 있었던 건 90%가 운이라며 "보통 가수가 마흔 살이 넘어가면 히트곡을 내기 어려운 풍토인데 40대 중반에 '낭만에 대하여'란 히트곡을 냈고 그 노래가 20년간 사랑받으니 대단한 운"이라고 강조했다.
힘든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는 1988~1989년 경제적으로 힘들어 처가가 있는 미국으로 떠났을 때를 꼽았다.
"가족을 먹여 살리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미국이란 희망의 대륙으로 가보자 했죠. 가족이 다 같이 갔어요. 1992년 가족보다 한해 앞서 귀국했는데 그때도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죠."
그러나 그는 "한번 풍파를 겪고 난 사람이 강해진다"며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진 덕인지 1995년 발표한 '낭만에 대하여'를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달 발표할 40주년 앨범에는 그의 자작곡인 '위로'와 '하루 종일'을 비롯해 에코브릿지 등 젊은 작곡가들과 작업한 곡들이 실린다. '풍경'이란 곡은 가수 주현미와 함께 불렀다.
그는 '하루 종일'에 대해 "가까운 선배가 요양원으로 들어간다고 했을 때 충격을 받은 마음을 담았다"며 "'위로'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힘들어하는 걸 달래주지 못하는 내 존재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젊은 뮤지션들과의 작업은 늘 배움의 과정이라고 했다. 그는 이미 기타리스트 박주원 등의 후배들과 작업한 월드뮤직 앨범을 냈고 아이유와 에코브릿지의 앨범에도 목소리를 실었다.
"전 음악을 정통으로 배운 사람이 아니에요. 제 노래를 부를 때도 호흡이 매번 다르죠. 기초가 탄탄한 젊은 친구들이 체계적으로 가르쳐주니 도움이 많이 되죠. 제가 모자라고 모르는 면이 많아 나이 든 분들에게도 많이 배웁니다."
2013년 '부산에 가면'을 함께 작업한 에코브릿지에 대해서는 "곡 쓰는 방법이 나와 완전히 달라 새롭고 신선했다"며 "이번에도 이별 이야기가 담긴 에코브릿지의 곡 '바다 끝'을 수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음악뿐 아니라 2008년부터 9년간 SBS 러브 FM '최백호의 낭만시대'를 진행했다. 2009년에는 연기에도 도전했고 그림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그는 "나도 라디오 DJ를 이렇게 오래 할지 몰랐다"며 "같은 시간대에 젊은 친구들이 유창하게 떠드는 프로그램이 많은데 내 목소리가 어눌해 편하고 선곡이 좋은 덕 아닐까"라고 웃었다.
그림을 그리는 꿈은 여전히 갖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 남부를 혼자 여행한 적이 있는데 너무 좋아서 1년간 살면서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주변에 언젠가는 떠날 거라고 얘기하고 다녀요. 라디오 PD한테도 훌쩍 떠날 수 있다고 말했죠. 하하."
그는 자신의 인생곡으로 '내 마음 갈 곳을 잃어'와 '낭만에 대하여'를 꼽았다
그러면서 "내 주제에 비해 과분하게 운이 좋았고 대우를 받았다"며 "곧 일흔 살이 되니 앞으로 60대 후반에 맞는 노래를 부를 것"이라고 했다.
또 경제적으로 어려운 원로 음악인과 인디 밴드를 후원하는 ㈔한국음악발전소 소장으로서 음악 환경 개선에 대한 바람도 밝혔다.
"인디 밴드들이 참 많아요. 외국 나가 공부하고 온 친구들도 많지만, 음악으로 돈을 벌지 못하죠. 정책을 세우시는 분들이 인디 밴드를 한번 만나보시고 실질적으로 필요한 후원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3월 11~1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불혹'이란 타이틀로 기념 공연을 펼친다. 새 앨범 수록곡과 '입영 전야', '영일만 친구', '낭만에 대하여' 등의 히트곡을 들려준다.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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