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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정치지도자들 우물안 개구리 같다…내정에만 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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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정치지도자들 우물안 개구리 같다…내정에만 함몰"

"정치인들 생각이 모두 달라 대통합 어려워…정치활동, 국내에서는 자제할 것"

"불출마소견서 어제 새벽에 썼다…최종 손질 후 가슴에 품고 심상정 만나러 가"

(서울=연합뉴스) 이슬기 기자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2일 대선 불출마 결정의 계기에 대해 "3주간 정치인을 만나보니까 그분들 생각이 모두 다르고 한 군데 끌어모아서 대통합을 이루는 게 어렵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사당동 자택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시간을 소비하기엔 내가 상당히 힘에 부치고 시간은 제약이 있고 여러 가지 현실적 어려움이 있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31일 밤에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새벽에 일찍 일어나 (생각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 초안을 혼자 잡아서 (불출마소견서를) 썼다. 그걸 가슴에 품고 김숙 전 대사를 불러서 "여기 가감할 게 있으면 생각해보라"고 했다"면서 "1일 정의당 심상정 대표를 만나러 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소견서 손질을 본 뒤에 가지고 갔다"고 전했다.

특정 후보의 대선 지원 요청에 응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것이 일종의 정치활동인데 그런 정치활동은 국내에 있으면서는 자제하려고 한다"면서 "연설한다든지 학회에 간다든지 하는 면에서 국민의 통합과 화해를 도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답했다.

다음은 반 전 총장과의 일문일답.




--잠은 잘 잤나.

▲오랜만에 편안하게 잘 잤다.

--불출마 결정의 계기는.

▲3주간 정치인을 만나보니까 그분들 생각이 모두 다르고 한 군데 끌어모아서 대통합을 이루는 게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상당한 동력을 요구하는 일이고 밀어붙여야 하는데 개개인의 생각이 다르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시간을 소비하기엔 내가 상당히 힘에 부치고 시간은 제약이 있고 여러 가지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정치권에서 재고 요청 없나.

▲그런 건 없다. 나와 무관하게 자생적으로 생긴 자생적 지지 모임에서 재고해달라고 상당히 강하게 얘기했지만, "일단 결정한 것이니 미안하다. 여러분들이 열정적으로 지지해줬는데 결정을 존중해달라. 내 뜻에 변함없다"고 했다.

--기존 정당에 빨리 들어갈 생각을 왜 안 했나.

▲기존 정당에 들어가는 데 제약이 있었다. 왜냐하면, 가장 큰 정당이라고 본 새누리당이 우선 분열돼 있고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었다. 그다음에 초이스(선택지)가 별로 없는 것 아니겠냐. 그래서 나와 뜻을 같이하는 중립적이고 개혁 성향을 가진 분들과 힘을 합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고 많은 사람이 그렇게 권고했다. 나는 그게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간을 가지고 20일간 열심히 노력한 것이다. 한두 시간 만나고 나면 별로 손에 잡히는 게 없었고 생각이 상당히 복잡하다. 나는 태생이 원래 아주 상당히 순수하고 단순하고 아주 직선적이다. 남한테 어떤 복선이 깔린 얘기는 이제까지 평생 해본 일이 없고 있는 그대로 한다. 외교관 기본서를 보면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라고 나온다. 그래서 늘 순수하고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아주 담백한 심정을 얘기하고 협조를 구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직 현실에서 이해가 잘 안 되고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헌협의체 제안을 하고 하루 만에 출마 의사를 접은 이유는.

▲결정하려면 단호하게 해야 한다. 오랫동안 숙고할 수는 있는데 일단 숙고하면 결정은 바로 이행하는 게 좋다. 작년 12월 하순부터는 여러 가지로 고뇌를 많이 했다. 어떨 때는 잠도 잘 못 자면서 고뇌했다. 감정적으로 어떨 때는 격한 감정이 일어났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해서 되겠느냐. 왜 사람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일종의 우물안 개구리 같은 (생각을 하나). 우물 안에서 하늘 보면 얼마나 보겠나. 그러나 내가 바깥에서 한국을 보면 너무 잘 보인다. 너무 적나라하게 보이는데 사람들이 못 보고 특히 정치 지도자들이 못 보고 있으면 이런 문제가 나온다. 계속 내정에 함몰 매몰돼 있는 것이다. 젊은 청년들이 일자리 없어서 고생하는데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정치에 매몰돼는 것만큼 (청년 일자리에) 힘을 안 쏟는다. 참 이래선 안 된다. 정당인도 아니고 정치 후보자도 아니고 전직 사무총장이란 비전이나 식견을 가지고 해보겠다고 한 것인데, 가만 보니까 벽이 아직도 높고 이해도가 낮다. 국민의 절절한 심정을 더 들어봐야 한다. 나를 감동하게 한 건 길 가다가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손을 잡고 '꼭 좋은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 나라를 구해줬으면 좋겠다. 어렵다. 이래선 안 된다' 등 여러 가지 과격한 말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이 좋은 직장 다니는 분들 같지 않았고 아주 순수한 필부였다. 그때마다 내가 마음을 더 굳게 먹었다. 이분들을 위해서라도 중도 포기하면 안 되겠다.

--정치교체 노력 계속 이어가나.

▲정치인이 아닌 시민의 한 사람, 전직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국내·국제적으로 기회 있을 때마다 대한민국 정치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건 계속 강조할 것이다. 비정치인으로 소박하게 옆에서 봤을 때 훨씬 더 (정치교체 필요성이) 느껴진다. 직관으로 보는 게 진리고, 너무 복잡하게 계산하면 결과적으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상황이 온다.

--어제 불출마소견서를 가슴에 품고 일정을 수행했나.

▲31일 밤에 가족과 이야기 나누다가 새벽에 일찍 일어나 (생각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 초안을 혼자 잡아서 썼다. 그걸 가슴에 품고 김숙 전 대사를 불러서 "여기 가감할 게 있으면 생각해보라"고 했다. 1일 심상정 상임대표 만나러 가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소견서 손질을 본 뒤에 가지고 갔다. 정당 대표들 만나는 공식일정은 이미 예정된 것이므로 (지켜서) 예의를 표하는 게 마땅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미안한 건 대변인한테도 연락을 안 하고 정론관에 기자회견 일정을 잡아달라고 부탁한 게 (회견 시작) 30∼40분 전이었다. 도와주신 분과 상의하면 소문이 나고, 다들 말렸을 것이고, 계속 가는 수밖에 없어서 (그랬다). 기회를 놓친 건 지금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 기회를 제가 또 갖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어제 새누리당 인명진 비대위원장이 '낙상 주의'를 언급했는데 불쾌했나.

▲(웃으며) 어제 악수도 끝나기 전에 "보수주의자냐, 진보주의자냐"라고 질문해서 약간 당황스러웠다.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한 것이 논란을 일으켰는데,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진보와 보수를 이분법으로 구분하면 결과적으로 국민을 분열시킨다. 대통령은 전체 국민을 아우를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저는 보수주의 분위기 하에서 공직생활을 36년 했지만 유엔 사무총장을 10년 하면서 상당히 진보적인 사람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10년간 유엔에서 한 일이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는 약자와 대화한 것이었다.

--국민을 통합할 대선주자는 누구인가.

▲나름대로 생각이 있지만, 국민이 판단할 일이다. 대선 과정에서 진보와 보수를 나눠 얘기할수록 사람들을 분열시킨다. 이건 정치 지도자가 할 일이 아니다.

--뜻이 맞는 주자가 있으면 나중에 협력할 것인가.

▲대선 꿈을 접었으니까 좀 더 중도적인 입장에서 지켜보겠다.

--다시 물어보겠다. 정치권에서 도움 요청이 오면 힘을 보탤 의향이 있나.

▲그런 것이 일종의 정치활동인데, 국내에 있으면서는 자제하려고 한다. 연설한다든지 학회에 간다든지 하는 면에서 국민의 통합과 화해를 도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대화한다면 사실 나보다 경험이 많고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평생을 한 게 그런 것이다.

lesli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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