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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촉은 흔적을 남긴다'…과학수사에 물거품 된 '완전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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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촉은 흔적을 남긴다'…과학수사에 물거품 된 '완전범죄'

손가락 표피 속 지문·생리혈·좁쌀만 한 혈흔 분석에 범인 덜미

(전국종합=연합뉴스) "접촉한 두 물체 사이에는 반드시 물질 교환이 일어난다."(범죄학자 에드몽 로카르)

현대 과학수사의 개척자로 불리는 로카르의 교환법칙은 수사기관에선 절대 명제로 여겨진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란 명제를 가슴에 새긴 감식반원이 현장을 샅샅이 뒤지고, 형사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시신 옆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범인이 무심코 스치고 밟았던 곳, 만졌던 것, 남긴 흔적은 모두 증거가 될 수 있다.

과거부터 쓰이던 지문 인식과 진화를 거듭한 DNA 감식은 과학수사의 비약적 발전으로 이어져 범인들의 '완전범죄' 구상이 물거품이 되고 있다.


지난해 5월 1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도 내 방조제 입구 근처 배수로에서 성인 남성의 하반신 시신이 마대에 담긴 채 발견됐다. 이틀 뒤에는 현장에서 11㎞ 떨어진 선착장 인근에서 나머지 상반신 시신이 나왔다.

엽기적인 이 사건은 경찰의 수사력을 시험대에 올려놨다.

경찰은 손가락이 퉁퉁 부어 지문채취가 어렵자 손가락 표피를 벗겨 내고 속 지문을 채취해 약품 처리한 뒤 원래 지문을 복구해내는 방식으로 피해자 신원을 밝혀냈다. 이를 통해 함께 살던 피해자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무참히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후배 조모(31)씨의 존재가 드러났다.

2015년 2월 발생한 일명 '육절기 살인사건'은 과학수사가 빛을 발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경기도 화성시에 살던 A(67·여)씨가 돌연 실종됐다.

경찰은 세입자 김모(60)씨를 의심하고 자택수색을 요청했지만, 김씨는 수색을 3시간여 앞두고 집에 불을 질러 증거를 인멸했다.

경찰은 일단 방화혐의로 김씨를 구속한 뒤 CCTV 영상 분석을 통해 그의 화물차 짐칸에 실려 있던 육절기가 사라진 사실을 확인했다. 육절기 확보에 나선 경찰은 수원과 의왕 등지에서 육절기와 톱날을 찾아내 그 안에 남아 있던 A씨의 인체조직을 찾아내 김씨가 A씨를 살해한 뒤 육절기로 시신을 훼손해 유기한 사실을 밝혀냈다.

경찰의 끈질긴 발품과 과학수사의 시너지 효과가 발휘된 순간이었다.

16년간 장기 미제 사건이었던 '드들강 여고생 성폭행 살인사건'도 과학수사가 해결의 열쇠가 됐다.

2001년 2월 전남 나주시 드들강에서 박모(당시 17세)양이 알몸 시신으로 발견됐다.

범인 김모(40)씨는 범행 직후 개 12마리를 훔친 혐의로 구속돼 교도소에 들어가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은폐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당시 여고생 체내에서 정액을 발견했지만, 범인을 잡지 못했다.

장기미제가 된 이 사건은 2012년 또 다른 강도살인으로 무기징역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던 김씨의 DNA가 당시 발견된 DNA에 일치한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듯했다.

하지만 김씨는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고, 검찰은 증거가 부족하다며 기소하지 않았다. 2015년 7월 살인죄 공소시효가 폐지되자 경찰과 검찰은 사건 재수사를 결정했다.

검찰은 박양 체내에서 검출한 생리혈과 김씨의 정액이 서로 섞이지 않은 점을 근거로 성폭행과 살인 사이의 시간이 아주 짧았다고 판단했다.

법의학자는 박양이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섞일 수밖에 없는 두 액체가 따로 존재한 것은 성폭행과 살인에 시간적 밀접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는 김씨가 여고생을 성폭행한 뒤 곧바로 살해한 유력한 정황인 셈이다.

검찰은 DNA를 통해 성폭행범이 김씨인 만큼 살인사건의 진범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검찰의 주장은 재판 과정에서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김씨는 지난달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2014년 '수원 팔달산 토막살인'을 저지른 박춘풍(58·중국 국적)은 두루마리 휴지에 묻은 좁쌀만 한 혈흔 때문에 덜미를 잡혔다.

팔달산 일대에서 토막 난 여성 시신이 잇따라 발견돼 수사를 벌이던 경찰에 "월세방을 계약한 사람이 날짜가 지났는데도 안 나타나고 방에는 비닐봉지와 장갑이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고 출동한 형사들은 방 안 휴지에 묻은 피 한 방울을 찾아냈다.

이후 과학수사대 요원들은 욕실 수도꼭지에 묻은 1㎜도 안 되는 인체조직을 찾아냈고 휴지의 혈흔과 인체조직 모두 피해자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범인들이 갈수록 치밀히 범행은 은폐하지만, 수사기법은 그보다 더 빠르게 고도화하고 있다"며 "과학수사를 통해 미제 사건 피의자가 꼭 심판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최종호 강영훈 장덕종 김동철 기자)

sollens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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