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 부양·재산 분배' 말다툼… 설날 만큼은 "참으세요"
해묵은 가족 갈등, 명절 폭력으로 비화…작년에 112 신고 1만건 넘어
"민감한 사안 피하고 덕담 나눠야…가사 노동 분담 필요"
(전국종합=연합뉴스) 김선경 기자 = 바쁜 일상 탓에 평소 좀처럼 얼굴을 맞대기 힘들었던 가족과 한자리에 모이는 설을 맞이했다.
모처럼의 만남인 만큼 더없이 화목해야 할 시간이지만 살림살이, 재산 분배 등이 화제로 오르면 어느 순간 서로 얼굴을 붉히거나 불편한 분위기로 이어질 때가 적지 않다.
일부는 고향 집에서 먼저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 말다툼 끝에 혈육의 정을 뒤로 하고 극단적인 폭력 사태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추석 연휴 기간인 지난해 9월 18일 충남 계룡에서는 30대 여성이 친부모 집에 인화 물질 1.5ℓ를 뿌리고 불을 지른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재산 분배 문제가 원인이었다. 경찰은 여성이 남동생에게 부모 재산 일부가 증여된 것을 알게되자 불만을 품고 범행한 것으로 파악했다.
화재 당시 집에는 여성의 부모를 포함한 친·인척 10여명이 명절을 쇠려고 모여 있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지만, 다행히 불이 금방 꺼져 다친 사람은 없었다.
같은 달 17일 전남 여수의 한 주택에서는 70대 할머니 A씨와 그 딸이 독극물을 마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당시 A씨 집에는 연휴를 맞아 자녀들이 모여 있었다. A씨 자녀들은 당일 술을 곁들인 식사를 하며 A씨 생활비와 집 리모델링 문제 등을 논의하다가 언쟁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말다툼 도중 A씨와 딸이 우발적으로 음독한 것으로 봤다.
지난해 추석 당일인 9월 15일 경북 김천에서는 토지 보상금 분배 문제가 '형제간 칼부림'을 부르기도 했다.
50대 남성은 보상금 분배로 형과 말다툼을 하다가 화를 참지 못하고 형의 왼쪽 허벅지를 흉기로 찔렀다.
지난해 설 연휴 직후인 2월 11일에는 설에 부모 댁을 방문하지 않았다며 50대 남성이 만취한채 부인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차량을 몰아 집기 등을 부숴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명절 기간 가족간 폭력 사례 증가 추세는 경찰에 접수된 112 신고 현황으로도 확연히 드러난다.
112 신고 건수는 2014년 7천737건에서 2015년 8천491건, 지난해 1만622건으로 30% 가까이 급증했다.
주요 발생 원인은 음주, 성격 차이, 부모 부양, 시댁 방문, 제사 등으로 분석됐다.
이처럼 명절이 폭력으로 얼룩져 오히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경향이 심화하는 것과 관련해, 가족간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구성원간 민감한 주제의 대화는 애초에 피하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다수의 가족이 어렵게 한자리에 모인 만큼 재산 분배나 제사 갈등, 시부모 부양 등의 사안은 다음 기회로 미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취업이나 승진·결혼·입시 등 상대방에게 부담을 줄 수 있는 주제 또한 대화에서 배제하는 것이 좋다.
오랜만에 모여 서먹할 때는 윷놀이 등 팀을 이뤄 함께 단합할 수 있는 놀이를 하는 것이 분위기 전환에 좋은 방법이라고도 지적했다.
다양한 세대의 구성원들이 모이는 점을 감안, 집안 어르신들은 가부장적 사고를 지양하고 아랫세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명절 차례 준비의 경우 여자에게만 맡기던 기존 관행을 버리고 구성원끼리 평등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서로가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할 소중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할 필요가 있다"며 "가족이라는 이유로 어떤 이야기를 해도 이해해줄거라는 생각은 버리고 덕담을 주고 받는 등 '만남의 장'을 기쁘고 즐겁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ks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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