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 사격 총탄 자국 간데없고…5·18 흔적 지워진 전남대병원
사격 목격한 前 직원 "증언이 기록…많은 사람 경험했던 일"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새로 지은 12층짜리 건물이었고 병원에서 가장 컸다. 1층에는 응급실이 있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전남대학교병원에서 근무한 의료인 A씨는 23일 계엄군 탄흔이 남아있다는 건물을 이렇게 묘사했다.
A 씨 말대로 이날 찾아간 전남대병원에는 전체 10여 개 건물 가운데 지상 12층짜리 건물이 꼭 하나 있었다.
해당 건물은 외래병동과 수술실·입원실·임상실습실 등이 들어선 1동으로 1978년 12월에 준공했다. 연면적 2만9천421㎡로 현재까지도 전남대병원에서 가장 크다.
A 씨 설명처럼 1동 1층에는 1980년 5월 당시 응급실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옛 응급실 자리는 현재 1·7동을 연결하는 길목으로 장례식장 근처다.
이곳에서 1983년 봄까지 일했다는 A씨는 "5·18 당시 병원 상공에서 헬기 소리가 들렸고 총알이 쏟아져 내렸다"며 "병원 옥상에 있던 시민군 2명을 노린 것 같아 환자들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고 설득해 그들을 데리고 내려왔다"고 증언했다.
구체적 증언이 나온 만큼 광주 금남로 전일빌딩에서 군 헬기사격을 사실상 인정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탄흔 조사가 전남대병원에서도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탄흔 150개가 한꺼번에 나온 전일빌딩과 달리 지금의 전남대병원에서 1980년 5월 당시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A 씨가 "9A병동 935호실 창문을 뚫고 총알이 날아들어 왔다"고 증언한 대로 이 건물 9층에는 A병동이 배치돼있다.
다만, 지금은 930번대 번호가 매겨진 방이 없어 A씨가 지목한 병실 위치를 특정하기 어려웠다.
전남대병원 1동 9층에는 2개 병동과 20개 남짓한 부속 병실이 있다. 모두 40년 가까이 됐다고 보이지 않을 만큼 내부 단장을 새로 했다.
A씨는 "건물 상층부 외벽에 엄청나게 많은 탄흔이 있었다"며 "1층 바깥에서 고개를 들면 쉽게 보였다"는 말도 남겼다.
1동에서는 2012년 12월 외벽을 금속복합패널로 감싸는 공사가 진행됐다. 일부 구간에서는 증축까지 이뤄졌다.
건물 바깥에서 네 개 면을 모두 둘러봤지만, A씨가 말한 탄흔은커녕 콘크리트 벽체에 페인트를 칠한 준공 당시 모습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전남대병원 관계자는 "여러 교수님으로부터 총탄흔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며 "대대적인 병원 리모델링 공사로 총알 자국 같은 것은 이제 없어진 것 같다"고 밝혔다.
37년 사이 5·18 흔적이 지워진 전남대병원에 대해 A씨는 "많은 사람의 증언과 시민이 수집한 기록이 가장 결정적인 증거"라고 힘주어 말했다.
A씨는 "당시 병원에 총상을 입고 실려 온 시민이 아주 많았고 헬기사격 이후 계엄군까지 들이닥쳐 아수라장이 됐다"며 "많은 의료진, 환자, 시민이 당시 상황을 겪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부 의료진은 사진을 찍기도 했고 병원에서 계엄군의 흔적을 모으던 외국인도 있었다"며 "그들이 왜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h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