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속도 높인다더니…작년 워크아웃 신청 대기업 달랑 5곳
전년보다 8곳 감소…설 자리 잃는 워크아웃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지난 한 해 동안 워크아웃을 신청한 대기업이 5곳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세 차례 워크아웃에 돌입했다가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한 경남기업 사태 이후 기업들이 워크아웃을 회피하는 데다 저금리·저성장으로 실적이 나빠진 채권은행들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지원을 꺼리고 있어서다.
기업 구조조정의 주요한 수단이었던 워크아웃의 실효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금융감독원이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워크아웃을 신청한 대기업(금융권 신용공여액 500억원 이상)은 5곳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연초부터 강도 높은 기업 구조조정을 예고했지만 정작 워크아웃 신청 기업이 2015년(13곳)보다 8곳 줄어든 것이다.
기업에 돈을 빌려준 채권은행들은 1년에 한 번씩 신용위험평가를 통해 '옥석 가리기'를 한다. 등급을 A∼D로 나눠 C등급은 워크아웃, D등급은 법정관리에 들어가야 하는 기업으로 분류한다.
워크아웃은 법정관리보다 추진 과정이 신속하고, 신규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지금까지 대기업 구조조정은 주로 이를 통해 진행됐다.
미국발(發)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 2010년엔 각각 48개, 37개 대기업이 워크아웃을 통한 구조조정에 돌입한 바 있다.
지난해 신용위험평가에서 C등급을 받은 대기업은 13곳.
이 중 현대상선·한진해운은 이미 자율협약(법적 구속력 없이 채권단과 기업이 자율적으로 진행하는 가장 낮은 단계의 구조조정 협약)을 진행하고 있었다.
두 기업을 빼면 워크아웃을 신청해야 하는 기업이 11곳인데도 6곳이 신청하지 않은 것이다.
작년 신용위험평가에는 처음으로 개정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이 적용돼 C등급 기업이 3개월 이내에 정당한 이유 없이 워크아웃을 신청하지 않으면 주채권은행이 여신 회수, 한도 축소 등의 불이익을 줄 수 있게 됐다. 이전까지는 기업의 워크아웃을 강제할 수단이 없었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불이익을 감수하고 워크아웃에 들어가지 않았다.
워크아웃 감소의 가장 큰 요인으로는 저금리·저성장 시대에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는 은행들의 태도 변화가 꼽힌다.
워크아웃은 기업에 돈을 빌려준 여러 금융회사 간 협상이 원활히 진행될 때 장점이 발휘되는데, '제 살기 바쁜' 은행들이 예전처럼 한뜻으로 모이지 않는 데다 신규 자금 지원을 꺼리고 있다.
워크아웃 신청은 기업이 하는 것이지만, 채권은행이 신규 자금을 지원해주지 않는다면 신청 유인이 없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워크아웃 기업에 신규 자금을 지원해 대손충당금 부담을 떠안을 바에야 반대매수권을 행사로 기업의 청산 가치만 챙겨 나가겠다는 채권은행들의 의사 결정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촉법이 바뀌면서 워크아웃에 참여하는 채권자 범위가 채권은행뿐 아니라 해외 금융기관 등 모든 금융 채권자로 확대된 것도 워크아웃 신청이 감소한 요인이 됐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개정 기촉법에 워크아웃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들이 도입돼 이른바 관치금융의 수단으로서 워크아웃의 매력도가 떨어졌다"며 "작년에는 대우조선해양, 한진해운 등 대형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워크아웃의 핵심 주체인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의 손발이 묶인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C∼D등급 기업에 대한 사후 관리가 부실해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용진 의원은 "신용위험평가에서 선정된 부실기업에 대한 금융당국의 사후 관리를 강화하고, 은행들은 엄정한 신용위험 평가를 통해 우량기업을 제대로 가려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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