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도깨비] 쓸쓸하고 찬란한 도깨비 공유②
섹시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38세에 인생 최고작 만들어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널 만나 내 생은 상이었다. 비로 올게. 첫눈으로 올게. 그것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신께 빌어볼게. 나도 사랑한다. 그것까지 이미 하였다"
첫눈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얗게 폭설이 쏟아졌던 지난 20일 공유가 '도깨비'와 함께 오자 팬들은 열광했다. 공유의 행동 하나, 대사 하나가 이처럼 화제를 모았으니 '도깨비'는 여한이 없겠다.
'도깨비'는 공유에서 시작해서 공유로 끝난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38세 공유, 인생 최고작 만나
1979년생, 올해 38세인 공유는 '도깨비'로 인생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다.
앞서 '커피프린스 1호점'이 있었고, 영화 '부산행'도 있었지만 '도깨비'는 그가 타이틀 롤을 맡아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온 드라마라는 점에서 남다르다.
그간 공유는 오글거리는 연기는 못하겠다는 이유로 5년간 김은숙 작가의 손을 잡지 않았다. 히트의 보증수표인 김은숙 작가의 작품에 출연하려는 배우가 줄을 섰지만 소싯적부터 자신만의 고민과 색깔을 가져온 공유는 다른 선택을 했다.
그러다 드디어 '도깨비'로 김 작가와 만난 공유는 단숨에 시청자가 다른 도깨비는 생각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어느새 주름이 보이고, 지나온 세월이 드러나는 나이가 된 게 못내 아쉽긴 하지만, 지금의 공유는 900여년 묵은 도깨비를 연기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댄디하고 섹시하며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30대 후반의 공유는 불멸은 물론이고, 불로의 생을 살아가는 도깨비를 표현하기 위해 지금껏 기다렸던 것처럼 보일 정도다.
공유는 처음부터 각광받았던 배우가 아니다.
2001년 '학교4'로 데뷔한 후 2007년 '커피프린스 1호점'을 만나기 전까지 공유는 연예계 많은 배우 중 한명이었을 뿐이다. 다듬어지지 않았고, 투박했으며 또래에 비해 생각과 고민이 많았던 그는 일찍부터 진중했고 그래서 더뎠다.
'커피 프린스 1호점'으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게 됐음에도 그는 여느 스타가 가는 길을 가지 않았고 자신만의 행보를 이어갔다. 특히 군 제대 후 출연한 영화 '도가니'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었다.
영화 '부산행'과 '밀정'으로 2016년을 일찌감치 자신의 해로 만들었던 공유는 드라마 '도깨비'까지 대박을 치면서 다시 한번 하늘을 찌르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 로맨틱하고 로맨틱하였다, 도깨비
촛불을 불면 어느새 '짠' 하고 나타나는 연인이라니.
앞서 램프의 요정 지니도 있었지만, 공유가 그린 도깨비 김신은 내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과 또다르다.
경외심이 느껴지는 도깨비는 분명 두려움의 존재다. 일반 귀신도, 악령도 슬금슬금 피해다닌다. 심지어 저승사자도 도깨비를 함부로 하지 못한다. 저승사자의 명부를 뒤틀어버릴 수 있는 유일한 자 역시 도깨비다.
그런 도깨비가 촛불을 불면 소녀 앞에 나타난다. 어김없이. 이렇게 로맨틱한 도깨비가, 연인이 세상에 또 어디있을까.
공유는 앞서 '도깨비' 제작발표회에서 "인간이 아니어서 처음에는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고 기준을 잡기도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고민의 시간과 깊이가 길었던 만큼 그가 내놓는 결과는 멋졌다.
공유는 "오래 고심해서 선택한 작품인 만큼 가진 것을 모두 불사지르겠다"는 각오를 밝혔는데, 실제로 자신의 매력을 온전히 불살랐다. 이보다 멋진 도깨비를 상상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한가지 모습만을 보여준 게 아니다.
고려시대에는 백전백승을 자랑하는 뛰어난 무신으로서 테스토스테론을 한껏 뿜어냈고, 900여년의 생을 이어오면서는 불멸의 삶에 고통받고 슬퍼하는 쓸쓸한 신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마침내 만난 도깨비 신부이자, 어리디어린 여고생 지은탁 앞에서는 첫사랑에 감전돼버린 남자의 두근대는 설레임을 얼굴 가득 담아냈다.
연기 생활 15년간 조금은 멀리 돌아왔을 수 있지만 공유가 차곡차곡 안에 쌓아온 경험과 생각은 900여년 묵은 도깨비의 복잡하고 쓸쓸한 회한과 찬란한 매력으로 온전히 모아졌다.
공유는 21일 네이버를 통해 공개한 소감에서 "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라는 도깨비의 대사를 인용해 팬들에게 인사했다.
◇ 지은탁과의 멜로보다 저승사자와의 브로맨스
김은숙 작가의 진화를 보여준 '도깨비'는 또다른 점에서 김 작가의 이전 작품과 차별화를 이룬다.
남녀 간의 멜로가 아닌 남자와 남자의 우정이 강조된 점이다. 도깨비 김신과 저승사자 김우빈(이동욱 분)의 '브로맨스'가 김신과 지은탁(김고은)의 멜로를 압도했다.
드라마 자체가 남녀의 사랑에 머물지 않고, 세상을 보살펴야하는 도깨비의 넓디넓은 행동반경에 맞춰진 탓이 크다. 기본적으로 지은탁이 여고생으로 설정돼 본격적인 멜로를 전개하기 어려운 지점도 있다.
하지만 도깨비라는 역할의 무게와 타이틀 롤을 맡은 공유의 차고 넘치는 매력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남녀의 멜로는 어느새 두번째 문제가 돼버렸다.
대다수의 시청자가 도깨비와 함께 이야기를 따라간 것이지, 도깨비와 도깨비 신부의 멜로를 오매불망 응원하며 본 것이 아니다. 이는 이 드라마의 차별점이 됐지만 약점이기도 했다.
시청자는 멜로보다는 슬프고 처연한 저승사자와 도깨비의 질긴 인연과 우정에 더 열광했다.
물론 저승사자를 연기한 이동욱과 도깨비 공유의 투 샷이 근사한 것도 큰 몫을 했다. 이들은 화면에 나란히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시청자는 이들이 선사하는 '안구정화 브로맨스'를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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