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귀국에 文 '무시'…이재명·안희정·박원순 '때리기'
안철수 "정치선언후 판단"…손학규 "만나지 못할 일 없어"
(서울=연합뉴스) 이광빈 기자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귀국하자 야권 대선주자 대다수가 '견제모드'에 돌입했다.
반 전 총장이 '링'에 오르며 대선판의 유동성이 커지는 흐름을 보이자 일찌감치 '반풍(潘風·반기문 바람)'을 차단하고 나선 것이다.
다만 주자에 따라 대응전략에는 온도차를 드러냈다. 거친 어법으로 반 전 총장을 비판하거나 깎아내리는가 하면 의도적으로 반 전총장의 귀국을 외면하는 '무시전략'도 등장했다.
가장 날카롭게 날을 세운 쪽은 상대적으로 후발주자 그룹에 속한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 박원순 서울시장이었다. 유엔 조항에 따른 반 전 총장의 대선 출마 자격 문제를 제기하고 최근 제기된 각종 의혹을 거론하며 강력한 검증대에 올라서야 한다고 공세를 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반 전 총장이 대선에 출마할 자격이 있느냐고 공격했다.
안 지사는 "유엔 사무총장은 각국의 사정을 다 대변하는 지위이기 때문에 퇴임 이후 공적 지위를 제안해서도 안 되고 본인도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게 헌장에 명시돼 있다"며 "우리가 배출한 자랑스러운 유엔 사무총장이 전 세계의 내부사정을 관할하는 총장이 됐다가 한국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것은 유엔 협약, 규약 위반이자 국제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무슨 해방 후 이승만 박사가 금의환향하는 것인가. 한마디로 한국 품격을 완전히 개발도상국으로 만드는 현실"이라며 "그분의 멘탈리티 자체가 이해 안 된다"고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입장문에서 "촛불의 요구인 적폐청산과 공정국가 건설을 위해선 대통령의 청렴강직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공적지위에 요구되는 역할을 못했다면 자질문제가 있고, 공직을 사적이익에 사용했다면 자격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최악의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평가, 외교행낭 사건, 23만 달러 수수의혹, 친인척 비리 등에 대해 국민은 반 전 총장이 대통령으로서의 자격과 자질이 있는지 의문을 가질 것"이라며 "기득권자가 기득권 청산과 공정한 새질서를 만드는 것은 연목구어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귀국 첫 소식이 대선 출마라니 세계적 평화 지도자로 남길 바라는 많은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줄 것"이라며 "이코노미스트의 평가에 의하면 반 전 총장은 '역대 최악의 총장'으로 평가 받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한일 위안부합의에 대해 '올바른 용단을 내린데 대해 역사가 높이 평가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물론 아베 일본 총리도 칭찬한 역사의식이 여전한지 먼저 국민 앞에 이야기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반 전 총장의 귀국에 대한 질문에 "질문 안받겠다"며 아예 무시하는 전략으로 나갔다.
동행한 문 전 대표 측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나중에 따로 말씀하실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하자, 이를 들은 문 전 대표는 웃으면서 "나중에도 말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문 전 대표 측 관계자는 "지나친 공세는 오히려 반 전 총장에게 시선이 쏠리게 할 우려도 있다"며 "오히려 '무시 전략'으로 나가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있다"고 설명했다.
반 전 총장을 때리면 때릴 수록 보수지지층을 결속시키면서 '존재감'만 키워주는 역효과가 나타날 것을 경계한 행보다.
이에 비해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반 전총장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유지하면서도 공식 평가를 뒤로 미루는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안 전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정치를 하겠다는 말씀이 없는 분인데, 지금은 어느 것 하나 판단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모든 판단은 정치 활동 선언 이후에 해야 한다"면서 "지금으로선 반 전 총장이 재벌을 위한 정치를 할지,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할지, 누구와 함께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는 반 전 총장의 대선 출마 가능성에 대해 "반반 정도로 보고 있다"며 회의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안 전 대표는 대선에서 문 전 대표와의 일대 일 구도를 만들겠다는 복안인 만큼, 중도영역에서 지지층이 겹치는 반 전 총장을 상대로 견제의 수위를 끌어올릴 전망이다.
김부겸 의원 측 허영일 공보특보는 전화통화에서 "전 유엔 사무총장 자격으로 오는 것이라면 환영하겠지만 정치하러 온 것 아닌가"라며 "이제는 대권주자들 중 한 명이다. 국민에게 검증 받는 혹독한 시간이 남았다. 잘 견디길 바란다"고 날을 세웠다.
전날 대선 출마 선언을 한 최성 고양시장은 '반 전 총장이 대통령 자격이 없는 5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공개서한을 발표하고 "대통령 선거일 현재 5년 이상 국내 거주해야 한다는 헌법상의 규정을 명백히 위반하고 있고, 유엔 사무총장은 퇴임 직후 어떠한 정부직도 맡아서는 안 된다는 유엔 결의안도 명백히 위반하고 있다"면서 비리 의혹 등을 들어 출마자격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야권 대선주자들의 견제 반응과 달리 제3지대에서 개헌 등을 고리로 기회를 모색 중인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제3지대에서 둥지를 틀 것으로 보이는 반 전 총장과의 연대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손 전 대표는 기자들을 만나 "반 전 총장이 조급한 마음에 구시대 세력과 결합해 집권전략에만 몰입하면 국민의 지탄을 받을 것"이라며 "제게 관심을 갖고 새로운 정치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한다면 만나지 못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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