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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 동영상 옭아매 정적 제거·기업인 협박' 옛 소련 단골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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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 동영상 옭아매 정적 제거·기업인 협박' 옛 소련 단골수법

KGB의 전형적 수법은 고급호텔에 몰카 설치후 매춘부로 유혹

푸틴이 이끌던 FSB도 섹스비디오로 유력인사 실각시킨 적 있어

(서울=연합뉴스) 옥철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관련된 낯뜨거운 동영상이 있다는 메모가 나오면서 옛 소련 시절 종종 자행됐던 '섹스비디오 협박 공작'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영국 M16(해외정보국) 정보원 출신이 터트린 이번 논란은 트럼프 당선인이 지난 2013년 미스 유니버스대회를 참관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찾았을 당시 러시아 측이 모종의 음모를 꾸몄다는 가설로 이뤄져 있다.

트럼프 측은 즉각 "조작된 뉴스"라고 반격했고, 러시아 외무부도 "터무니없는 짓거리"라며 논란을 일축했다.

1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당사자들의 부인에도 이번 사건은 과거 옛 소련의 비밀경찰인 KGB(국가보안위원회)가 실제로 음란 동영상을 지렛대로 정적을 제거하거나 외국 기업인들을 협박한 사례가 실제로 꽤 있었다는 점에서 흥미를 끌고 있다.

한때 크렘린 근처에 있는 인투리스트 호텔이 '섹슈얼 블랙메일(음란 영상 협박)'로 유명했다.

지금은 고급스럽게 단장해 5성급 리츠칼튼으로 변신해 있는 이 호텔은 KGB가 주도한 '콤프로마트(kompromat)'의 주 무대였다.

콤프로마트란 도청장치, 몰래카메라 등을 동원해 유명 정치인·기업인들이 매춘부 등과 놀아나는 장면을 촬영한 뒤 협박을 가하는 형태의 공작을 말한다.

스탈린 치하에서는 인투리스트 호텔의 벨보이, 요리사, 운전기사, 청소부까지 죄다 KGB를 위해 일했다고 한다. 그들이 정적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상당한 숫자의 고급 창녀를 고용한 것은 물론이다.

이 호텔 홍보마케팅 매니저는 "고객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는 호텔 방침에 따라 우리가 어떤 개인 또는 그룹과 거래하는지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당시 뭘 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러시아의 오랜 전통에 비춰보면 '콤프로마트'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은 있었다는 분석을 내놨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 시내에도 KGB와 그 후신인 FSB(러시아 연방보안국)가 비밀녹화장치를 설치한 호텔이 여러 곳 있었다는 얘기다.

당시 KGB 등이 노렸던 주 타깃은 핀란드 고위급 인사들이었다.

핀란드가 친서방 쪽으로 돌아서기 시작하자 이를 견제하려고 정보기관이 '일'을 꾸몄다는 것이다.

옛 소련 시절 스파이 장비를 전시하는 한 박물관 운영자는 "당시에는 모 호텔의 423개 객실 중 60개에 도청 장비가 설치돼 있었다"면서 "KGB가 당혹스러운 사진을 찍어 가족에게 보내겠다고 협박하면 웬만한 인사들은 협조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초기 KGB 공작의 희생자 중에는 1950년대 말 모스크바를 방문했다가 '게이 트랩'에 걸린 미국인 칼럼니스트 조지프 알솝을 떠올릴 수 있다.

KGB 요원들은 알솝이 밀회를 즐긴 후 호텔 방에 들이닥쳐 '그 짓'을 한 사진을 보여주며 그를 협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조차도 이런 공작과 무관치 않다.

대통령이 되기 전 푸틴은 '대단히 성공적인 콤프로마트 작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당시 FSB 총수였던 푸틴은 옐친의 정적인 유리스 스쿠라토프 검찰총장이 두 명의 젊은 여성과 침대에 함께 있는 비디오를 TV에 공개하도록 함으로써 옐친에게 잔뜩 힘을 실어줄 수 있었고, 자신은 총리로 영전했다.

근래에도 비슷한 사건이 더러 일어났다.

살해된 러시아 야권 지도자인 보리스 넴초프 진영의 젊은 활동가인 일리야 야신은 미인계의 희생양이 될 뻔했다.

20대 중반이던 야신은 '무무'라고 불리던 한 여성의 유혹을 받았는데, 그녀가 초청한 서프라이즈 파티에 갔더니 또 다른 한 명의 여성과 해괴망측한 섹스 장난감이 잔뜩 준비돼 있는 걸 보고 황급히 옷을 챙겨 돌아 나왔다는 일화가 있다.

기지를 발휘해 함정에서 탈출한 경우도 있다.

드미트리 올레슈킨이라는 정치분석가는 섹스비디오 함정으로 끌어들이려는 여성을 오히려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여 가족이 '따뜻하게 환대하게' 함으로써 음모를 꾸민 자들에게 '제대로 한 방'을 먹이기도 했다.

때로는 섹스비디오 공작의 과녁이 된 인사가 협박에 굴복하지 않음으로써 그 자체가 하나의 훈장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소개했다.




oakchul@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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