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절벽 앞' 한국 외교…위기일수록 원칙대로"
"초불확실성 시대…큰 틀의 외교안보 정책 목표 필요"
"국민 열망 담아내는 정책 고민해야"
(서울=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최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위안부 소녀상 등을 둘러싼 중·일과의 외교적 갈등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단 정책적 일관성을 유지해나가며 위기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면서도 차기 정부에서의 정책 전환 등을 염두에 두고 외교 당국이 다양한 선택지를 미리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또 '외교안보 분야를 아우르는 커다란 정책적 목표, 원칙이 보이지 않는다', '외교 정책이 국익이 아닌 정쟁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지적도 내놓았다.
다음은 외교·국제정치 분야 전문가 제언.
◇ 김흥규 아주대 교수
지금은 마치 로봇의 머리가 없어진 상황에서 팔과 다리가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나아가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런데 앞에는 절벽이 있다. 만약 그 프로그램을 전략적으로 제어하고 수정하지 못한다면 대단히 절망적인 상황이 우려된다.
일단은 불필요한 추가적인 조치를 통해 주변국과 관계를 악화시키고 차기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제한할 수 있는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지금 당장 급격한 정책 변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장기적으로 기존의 정책에 대한 심도 깊은 재고와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국민의 열의, 열망을 충분히 담아내는 외교안보 정책을 구상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러한 정책 조정을 주변국에 설득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은 기존에 우리가 생각했던 질서들이 바뀌고 있는 상황이다. 초(超)불확실성의 시대에 직면하고 있다. 기존의 관행과 사고로는 난국을 타개하기 어렵다. 엄청난 변화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국제 질서에 대한 재평가와 분석이 정밀하게 진행돼야 한다. 그래야만 미국, 일본, 중국에 대한 대응책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현 정부는 물론 탄핵 정국 이후의 차기 정부에도 모두 해당된다.
◇ 박원곤 한동대 교수
지금은 위기 관리가 필요한 시기다. 지금 정부가 현실적으로 무엇인가 완전히 새롭게 정하거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위안부 합의나 사드 배치 등 기존 방향을 지켜나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 그것을 지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새로운 정책을 펼치게 된다면 탄핵 정국이 끝나고 새로운 정부가 맡아야 할 것이다. 다만 지금은 정부가 기존 정책을 이어나가되 동시에 여러 선택지나 시나리오도 검토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위안부 합의도 향후 바꾸게 되든 파기가 되든 다양한 재협상 가능성 등도 염두에 두고 정책을 검토해야 한다.
외교 정책을 검토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신 행정부든 김정은 정권이든 불가측성이 너무 큰 상황인데, 이럴 때일 수록 우리가 확고한 원칙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상대가 무리한 요구를 해올 때 우리의 선을 지켜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대미, 대일, 대중, 안보, 국방 등 모든 측면을 아우르는 커다란 목표, 원칙이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정부가 모든 요소를 통합해서 우리의 전체적인 최종 목표, 원칙을 수립할 수 있도록 가능한 빨리 부처들이 새롭게 정책적 검토를 해야 한다.
현 정부가 정책 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듣지 않은 것으로 안다. 진보 정부와 보수 정부를 막론하고 대외 정책적 측면에서는 그러한 이념을 넘어서야 한다고 본다. 새로운 리더십이 세워지면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다양한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기를 바란다.
◇ 이원덕 국민대 교수
하루 빨리 국정의 정상화가 필요하다. 현재 어떤 의미에서 보면 리더십이 부재하는 과도기이자 정상 중심 외교의 중단 상태다. 이 기간이 길어지면 전략적 이익, 국익이 손상될 가능성이 크다. 빨리 수습돼서 정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도기의 주변외교, 대북정책 등 핵심 외교 분야에 있어서 지나치게 선거나 정쟁에 말려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촛불민심이나 차기 대선 구도 등과 연관돼 정책들이 무분별하게 제안, 주장되는 상황이 대단히 우려된다. 지금은 외교 관료 조직이 중심이 되어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특히 강대국 외교에 휘둘리지 않고 전략적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서는 상황의 적절한 관리가 중요하다.
외교 정책적 일관성이 필요하다. 일단은 위안부 합의를 지키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에 일단 이를 견지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사드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 정부에서 방향성을 잡은 것에 대해 과도기에 수정하라는 요구는 옳지 않다. 만약 근본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면 새 정부 들어서서 충분한 준비 과정을 거쳐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 중국, 일본, 북한과의 관계가 이처럼 중차대한 시기에 정책의 일관성이 손상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다양한 정책적 대안들이 얼마든지 검토될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은 무엇이 '옳다 그르다'의 이념적 판단이 앞서고 이것이 정쟁의 도구로 이용되는 측면이 있다. 외교 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국익의 극대화다. 내부적으로 견해를 달리하는 상황이 있어도 대외적으로 도출되는 결론은 일관성이 유지돼야 한다. 현재 내부 토론과정의 속살이 대외적으로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상황이어서 우려된다.
◇ 정재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무엇보다 우리의 원칙에 따라서 하면 된다고 본다. 사드 배치도, 위안부 합의 문제도 우리 정부의 원칙에 따라 하면 된다. 탄핵 정국이라고 해서 정부가 세운 원칙을 훼손하고, 여론에 휘말려서 다른 이야기를 하면 한국은 앞으로 중국이든 일본이든 외교를 할 수 없게 된다. 탄핵 정국이지만 일단 정부가 결정한 사안인 만큼 원칙대로 이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기존 원칙대로 밀고 나가지 못하면 자신의 이익에 따라 생각하는 주변국들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물론 현 정부가 정책 결정 과정에서 국민에 대한 설득이 부족했던 점은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외교 정책에 잘한 부분도 못한 부분도 있겠지만 일단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그것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 차기에 어떤 정권이 들어설 지는 모르지만, 그 정권도 나름의 판단에 따라 자신의 정책을 결정할 것이다. 정권의 원칙에 맞춰 정책을 펼치면 된다.
물론 지금 탄핵 국면이긴 하지만 그것은 국내 문제다. 국내 문제와 외교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 우리가 먼저 주변국에 탄핵 상황은 순수한 국내 문제이며 외교와는 다르다고 선을 그어야 한다. 탄핵 정국과 외교 정책을 섞어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hapyry@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