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석유 시장의 수급 불안이 커지고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국내 정유사들은 4분기 호실적을 예고하며 표정이 밝습니다. 증권부 전효성 기자와 글로벌 석유시장 동향과 투자 전략 분석해보겠습니다. 전 기자, 사우디가 원유 가격을 엄청나게 깎아줬다고요?
<기자>
정유사들이 원유를 사 올 때 원가 기준이 되는 '공식판매가격(OSP)'이 최근 뚝 떨어졌습니다. 공장을 돌릴 재료값이 싸진 셈인데요. 최근 사우디아라비아는 11월 아시아로 수출하는 원유의 OSP를 지난달보다 3달러 낮춘 -5달러로 설정했습니다. 국제 유가 기준선보다 5달러 더 싸게, 사우디가 '마진을 포기하고 깎아주겠다'는 뜻입니다. 이정도 수준의 가격표가 등장한 건 코로나19로 국제 유가가 바닥을 쳤던 2020년 6월 이후 처음입니다.

<앵커>
국제 유가가 싼 편도 아닌데 사우디가 왜 이렇게까지 가격을 후려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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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아시아 시장에서 잃어버린 점유율을 되찾기 위한 사우디의 전략입니다. 그동안 호르무즈 해협 봉쇄 사태로 원유 수급이 원활하지 않았죠. 아시아 정유사들은 중동산이 아닌 미국, 호주산 원유를 사들여야 했습니다.
실제 GS칼텍스는 7월에 미국산 원유 200만 배럴을 두바이유보다 배럴당 18달러 비싸게 사왔습니다. 8월에도 13~14달러의 웃돈을 주고 미국산을 샀죠. 게다가 OPEC을 탈퇴한 아랍에미리트(UAE)가 아시아 수출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는 점도 사우디에는 부담스러운 요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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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가 내건 11월 가격표를 보면 의도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유럽으로는 전달보다 3달러 비싸게 팔고, 미국에는 가격을 동결했는데 유독 아시아 쪽에만 가격을 대폭 깎아줬습니다. 아시아 정유사들이 임시로 쓰던 미국산이나 UAE산 원유를 끊게 만드는 가격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겁니다.

<앵커>
아시아는 깎아주고, 유럽은 할증하고 이런 가격체계가 가능한 건가요? 사우디가 이런 선택을 한 배경은 뭡니까?
<기자>
사우디가 유럽과 아시아를 차별하는 선택을 한 배경은 시장의 '협상력'이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아시아에서는 사우디가 '을'의 입장입니다. 사우디산 공급이 막혔던 사이 아시아 정유사들은 미국산, 호주산, UAE산 등으로 수입선을 발 빠르게 다변화했습니다.
게다가 아시아 주요국은 겨울철 발전용 LNG 재고도 5년 평균치를 웃돌 만큼 에너지 사정이 넉넉합니다. 사우디 입장에서는 세일을 해서라도 타국산으로 돌아선 아시아 단골을 되찾아와야 하는 처지입니다.
반면 유럽에서는 사우디가 '완벽한 갑'입니다. 유럽은 강럭한 러시아 제재로 러시아산 석유, 천연가스 수입이 차단된 상황이라 가스 저장률이 15년 만에 최저치인 59%까지 곤두박질친 상황입니다. 가스가 없으니 올 겨울 중동산 원유에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사우디 입장에서는 아시아에서 깎아준 만큼 유럽에서 받아내려는 배짱 장사를 하고 있는 겁니다.

<앵커>
사우디의 다급함이 국내 정유사들에게는 호재로 작용하고 있는 거네요. OSP 인하로 재료값은 싸졌는데 완제품인 디젤 가격은 폭등하고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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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정유사의 수익과 직결되는 '정제마진'은 완성품인 '디젤 가격'에서 원재료인 '원유 가격'을 뺀 값입니다. 지금 이 두 가격의 격차가 빠르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실제 아시아 지역 복합 정제마진은 배럴당 37.4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이유는 크게 두가지인데요 글로벌 디젤 공급의 핵심 축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으로 정제 설비가 파괴되면서 연료를 역수입하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여기에 중국마저 디젤을 전략 자산화하려는 취지로 10월부터 석유제품 수출을 무기한 중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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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은 말라붙었는데 겨울철에 가까워지면서 디젤 수요가 몰리는 계절적 성수기에 진입했습니다. 수요는 많은데 물건이 없으니 디젤 판매 가격이 치솟는 겁니다. 6~8월 평균 8달러 선이던 원유 OSP가 9~11월 평균 -3달러 수준까지 수직 낙하하면서 막대한 원가 절감 효과가 4분기 정유사 실적에 그대로 꽂히게 됩니다.

<앵커>
정유 기업들이 수요와 공급 측면 모두에서 수혜를 입고 있다는 얘기인데, 이 때문에 증권가에서도 정유주를 높게 평가하고 있죠?
<기자>
하반기 들어 디젤 수급이 빠듯해지면서 미국 정유주인 마라톤페트롤리엄, 발레로에너지, 필립스66 등은 역사적 신고가를 경신하거나 근접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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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가에서는 S-Oil을 톱픽으로 꼽고 있습니다. S-Oil은 사우디산 원유 도입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알려져있는데요, 현재 사우디의 마이너스 OSP 혜택을 온전히 흡수하며 원가 경쟁력을 뽐낼 수 있습니다.
LS증권과 유진투자증권은 SK이노베이션에 대해 오늘 목표주가를 일제히 상향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에도 불구하고 정제마진의 구조적인 강세가 2028년까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을 이유로 꼽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