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발생한 지도 어느덧 7개월이 됐다. 전쟁 발생 당시만 하더라도 세계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시각이 많았다. 증시도 큰 폭의 조정을 거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세계 경제와 증시 모습은 다른 양상이다. 세계 경제 성장률과 글로벌 증시 평균 주가는 전쟁 이전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됐다.
앞으로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지난 7개월 동안 전쟁 직전 예상과 다른 움직임을 보인 원인부터 따져봐야 한다. 이 문제가 중요한 것은 이번 전쟁 피해가 1970년대 발생했던 두 차례 중동전쟁, 지난 4년간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액을 합한 것보다 크다는 평가 속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ADVERTISEMENT
가장 먼저 금융과 실물 경제 간의 인과 관계가 바뀐 뉴노멀 여건을 들 수 있다.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금융은 실물 경제를 반영(following)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금융이 실물 경제를 주도(leading)하면서 미국과 이란 전쟁이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는 예상 속에서도 주가는 따로 노는 수수께끼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금융이 주도하는 여건에서 주가 등이 상승하면 자산효과(wealth effect)가 발생해 전쟁이 실물 경제에 미치는 효과를 완충시킬 수 있다. 앨런 그린스펀 미국 중앙은행(Fed) 전 의장은 미국 국민의 주식소득이 1달러 증가하면 소비가 3∽4센트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 국민도 아직까지 부동산이 높지만 주가 상승에 따른 자산소득 효과가 높아지는 추세다.
ADVERTISEMENT
실물 경제 자체적으로도 세계 경제 주도국이 전쟁 전부터 ‘고압경제(HPE·High Pressure Economy)’를 실험해 온 점도 빼놓을 수 없다. 1960년대 미국과 베트남 전쟁이 한창 진행 중에 아서 오쿤 예일대 교수가 제시한 HPE는 실물 경제 각 부문에 초과 수요를 발생시켜 전쟁에 따른 피해를 완충시키고 경기와 증시를 부양하는 정책 처방을 말한다.
HPE의 핵심인 노동시장부터 살펴보면 재정과 금융 완화를 통해 노동 수급 여건에 인위적으로 초과 수요를 발생시키면 임금이 올라간다. 임금이 ‘그냥 쉼(take a break)’ 만족도보다 높아지면 자발적, 비자발적 실업자 모두 고용시장에 들어온다. 취업자도 생산성과 임금이 높은 자리로 이동하는 고용 사다리 효과(employment ladder effect)도 발생한다.
아서 오쿤 교수는 1960년대처럼 노동 집약적 산업이 주도될 때 실업률을 1%를 낮추면 성장률이 3%까지 높일 수 있다는 오쿤 계수를 고안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지금도 1인당 소득이 1만 달러 이하의 저개발 국가에는 그대로 적용된다. 3만 달러 이상의 자본 혹은 첨단기술 집약적 국가도 오콘 계수가 2배 내외로 높게 나온다.
특정국의 총수요 항목별 성장 기여도(Y=C+I+G+(X-M), Y:국민소득, C:민간 소비, I:설비투자, G:정부 지출, X-M:순수출) 중 HPE로 정부 지출(G), 민간 소비(C), 설비투자(I)가 모두 증가한다. 상품시장 등에 초과 수요로 수입이 증가함에 따라 순수출 기여도가 낮아져 구축 효과(crowding out effect)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전쟁발 케인즈언의 재정지출 승수 효과(keysian multiplier effect)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전체적인 성장률은 크게 높아진다.
ADVERTISEMENT
HPE는 베트남 전쟁으로 점철됐던 1960년대에 존 F. 케네디 정부와 린든 존슨 정부까지 이어지는 미국 경제와 증시의 장기호황을 이끌었다. 그 후 전쟁, 코로나 사태와 같은 디스토피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HPE가 실험되다가 작년 1월 출범한 트럼프 정부와 올해 2월 총리직을 걸고 중의원 선거를 통해 더 강력해진 다카이치 사나에 정부가 상용화하고 있다.

고압경제(HPE)의 이론적 배경은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이다. 어떤 정책이든 복잡한 경제 현실을 푸는 것은 쉽지 않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 이후 후유증 처리처럼 시차가 길고 논리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경제정책일수록 더 어렵다. 이 때문에 특정 경제이론에 의존하기보다는 지속 가능한 성장에 기여했던 종전의 정책 처방을 참고로 하는 방법이 많이 활용된다.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 출발은 예일대에서 화폐 경제학을 가르쳤던 제임스 토빈이다. 정책적으로는 아서 오쿤, 로버트 솔로, 케네스 애로 교수 등과 함께 1960년대 케네디와 존슨 정부의 경제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데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윌리엄 노드하우스, 로버트 실러 교수와 함께 재닛 옐런 전 Fed 의장이자 재무장관이 계승하고 있다.
ADVERTISEMENT
전체적인 기조는 경기 침체, 금융위기 극복, 전쟁 후유증 처리와 같은 단기 과제 해결은 케인지언 이론을 선호하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 확충과 같은 장기 과제는 신고전학파 이론을 받아들인 독특한 정책 처방 패키지다. 즉, 단기 과제는 총수요와 총공급 곡선으로 이해하고, 지속 가능 성장과 고용 창출 등의 장기 과제는 토빈과 로버트 솔로 모델을 선택했다.
정책 수단은 초기에는 재정정책보다 통화정책이 보다 더 유용하다고 봤다. 이 때문에 재정정책은 경기 부양을 위해 일시적으로 적자 폭이 커지더라도 ‘재정 건전화’ 틀은 깨지 않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통화정책은 물가가 어느 선을 벗어나지 않으면 완만한 인플레이션이 경제 활력을 북돋는 데 바람직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ADVERTISEMENT
최종 목표인 장기 성장과 완전고용을 위해서는 물적자본, 인적자본, 연구개발(R&D)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강조했다. 정부는 재정 건전화를 도모하고, 통화당국은 통화 완화 기조를 유지해 기업 이윤이 높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제도 투자세액공제제도를 도입하고 소비세율을 높여 저축과 투자가 함께 늘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봤다.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을 토대로 경제정책을 추진했던 1960년대와 1990년대 미국 경제는 전례 없는 호황을 구가했다. 토빈 교수가 케네디 정부에 정책 자문했던 1961년 이후 106개월 동안 확장 국면이 지속됐다. 1990년대에는 예일대 교수들이 다시 클린턴 정부와 손잡으면서 확장 국면이 2001년 3월까지 120개월 동안 지속됐다.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은 미국 이외 국가에서도 활용됐다. 1990년 이후 ‘엔고(高)의 저주’에 걸려 20년 이상 침체국면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하마다 고이치 예일대 교수의 발권력을 통한 엔저 유도 권고를 받아들여 ‘잃어버린 30년’ 우려를 차단한 아베노믹스가 대표적인 예다. 고이치 교수는 토빈의 제자이다.
조 바이든 정부 시절 실질적인 경제 콘트롤 타워 역할을 했던 옐런 재무장관은 거시경제 기조를 ‘분배’보다 ‘성장’, 목표는 ‘물가 안정’보다 ‘고용 창출’에 우선순위를 뒀다. 운영 방식은 ‘준칙’보다 ‘재량적’ 방식, 시장과의 관계는 ‘우월적’보다 ‘친화적’으로 가져갔다.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간 비중은 후자에 무게를 두되 Fed와의 협조를 중시해 나갔다.
이재명 정부의 경제정책도 미국과 이란 간 전쟁 기간에 추경을 편성한 데 이어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12% 이상 늘려잡았다. 반면 통화정책은 이창용 체제에서 신현송 체제로 교체되는 괴도기와 맞물려 적극적이지 못하다가 지난 8월 이후 금리를 올리고 있다.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과 다른 듯하지만 기본적으로 맥을 같이한다.

막대한 군비가 들어간 미국과 이란 간 전쟁 이후 가장 먼저 들이닥치는 후유증은 재정 파탄에 대한 우려다. 트럼프 정부처럼 회계연도(F.Y) 2026 예산안 처리가 안돼 임시 예산안으로 연명하는 여건에서는 이 문제가 순조롭게 처리되지 못하면 미국은 디폴트 위험에 처할 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도 탄핵에 몰릴 가능성이 높다.
양출제입(量出制入)의 원칙상 전쟁 이후 재정정책에서 문제되는 것은 세수보다 세출 부문이다. 고압경제(HPE)를 주도해 나가는 트럼프와 다카이치 정부는 토마스 피케티 공식대로 성장률(g)가 이자율(r)보다 높으면 빚내서 더 쓰더라도 재정적자와 국가부도 우려는 없다는 인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추종자로 알려진 워런 모슬러가 주장한 현대통화이론과 같은 논리다.
세수 부문에서는 지나치게 포퓰리즘적인 차원에서 정책을 구상할 확률이 높은 것도 문제다. 트럼프 정부처럼 중간선거를 앞둔 여건에서 표심과 직결되는 각종 세금은 감세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일본처럼 국가채무비율이 100%를 넘은 여건에서 세출을 늘리는 대신 세수를 줄이면 피게티 공식대로 g가 r보다 높다 하더라도 디폴트 우려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더 우려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처럼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는 재정정책을 추진하면 ‘재정적자-포퓰리즘 악순환 고리(deficit-populism deep loop)’에 빠질 수 있는 점이다. 세계 3대 평가사는 미국의 국가채무가 높은 점을 들어 신용등급을 계속해서 낮춰왔다. 앞으로 이란과의 전쟁 이후 국가채무를 더 늘리면 신용등급은 추가적으로 강등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란과의 전쟁 이후 트럼프 정부는 케네스 로코프 하버드대 교수가 주장한 ‘삶은 개구리 증후군(boiled frog syndrome)’에 처할 확률이 높다고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가장 좋아하는 25도 비이커에 넣은 개구리가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모르고 즐기다 보면 가장 싫어하는 75도에 비이커에 넣은 개구리보다 먼저 죽는다는 것이 요지다.
문제는 과연 트럼프 정부가 이미 최대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국채 파동을 비롯한 전쟁의 뒤처리를 잘해 낼 수 있을까? 체제상으로 미국의 상징은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경제적으로 ‘시장경제’다. 우려되는 것은 트럼프 정부에 의해 양대 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최근에는 국가자본주의로 대체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점이다.
문제의 발단은 조 바이든 정부 시절 반도체 지원법(칩스법)에 따라 지원한 보조금을 지분으로 되돌려받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발상 때문이다. 주식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미국 증시 정책의 원칙상 지분을 확보한다는 것은 국가가 민간 기업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의미와 동일하다. 시장경제의 최대 도전이다.
경제학적으로 자본주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인간의 합리성을 바탕으로 시장경제를 존중하는 고전학파를 ‘자본주의 1.0’ 시대라고 부른다. 공급이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Say’s law)을 굳게 믿은 고전학파는 시장에서 수급 불균형이 일어나도 궁극적으로 균형점에 도달해 경기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탐욕을 부리고 각국이 관세 장벽을 치면서 시장의 실패가 발생했다. 1927년 이후 강세장이 지속되는 가운데 영국을 지원하기 위해 돈을 풀면서 끼기 시작한 증시 거품부터 붕괴했다. 실물 경제도 수요처를 찾지 못하는 과정에서 누적된 초과 공급으로 대공황이 발생했다. 자본주의 1.0 시대의 종언이다.
고전학파가 좀처럼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사람이 존 메이너드 케인스다.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초과 공급은 국가가 수요를 창출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시장과 국가 간 혼합 체제인 ‘자본주의 2.0’ 시대의 시작으로 케인스 이론은 도전받고 있지만 지금도 주류 경제학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화려한 꽃이 시들면 보기가 더 싫듯이 2차 오일쇼크 이후 스태그플레이션이 닥치자 케인스 이론은 맥을 못 췄다. 총수요 관리 면에서 침체한 경기를 살리자니 물가가 더 오르고 물가를 잡자니 경기가 더 침체하기 때문이다. 무력해진 고전학파와 케인스학파 이외 획기적인 정책 처방이 필요했다.
제3 방안으로 많은 이론이 제시됐다. 정책 목표의 수만큼 정책 수단이 존재해야 한다는 ‘틴버켄 정리’, 감세로 경제 의욕을 고취해 스태그플레이션을 해결하자는 아서 래퍼의 ‘공급 중시 경제학’, 시장 불균형은 가격(price)이 아니라 수량(quantity)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배로-그로스만의 ‘불균형 이론’ 등이 대표적인 예다.
주류 경제학의 혼재로 대변되는 ‘자본주의 3.0’ 시대의 돌파구를 찾은 것이 글로벌화다. 특정국이 해결하지 못하는 경제 현안을 욕망 일치국과의 교역을 통해 해결할 목적으로 무려 여덟 차례에 걸친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협상 끝에 1995년 출범한 것이 세계무역기구(WTO)다.
WTO 체제에 거는 기대는 높았지만 의외로 빨리 무기력해졌다. 모든 회원국에 골고루 돌아갈 것이란 기대와 달리 WTO 체제 혜택이 출범과 유지 비용을 많이 부담하는 국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저비용 부담국에 돌아갔기 때문이다. 미국은 금융위기, 유럽은 재정위기가 발생한 반면 중국은 급부상했다.
미국의 결단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트럼프 정부 1기에는 대외 경제정책부터 자국의 이익을 강조하다가 2기 들어서는 타국의 이익까지 빼앗는 돈로(DonRoe)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대내 경제정책은 시장과 통화정책보다 국가와 재정정책의 역할을 중시한다. 재정도 감세를 통한 공급 중시 경제학과 빚내서 더 쓰자는 현대통화이론을 결합한 독특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을 변형한 고압경제(HPE)다.
트럼프노믹스 2.0을 지탱하는 이론이 ‘자본주의 4.0’ 시대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경제이론으로 구분한 자본주의가 앞으로 상당 기간 혼돈의 시대를 겪을 것으로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정국 경제정책의 최종 목표인 국민 후생 증대를 위한 최선책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 뒤처리 문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양대 축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과연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자본주의를 철회할 수 있을까? 앞으로 2년은 더 기대려야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11월 중간선거 결과는 바로미터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