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2 전차와 K9 자주포를 앞세워 수주 잔고 100조 원을 앞둔 한국 방위산업, 이른바 K-방산이 글로벌 방위 산업 공급망 변화에 대응해야 외형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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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 갈등이 장기화함에 따라 유럽 방위 산업의 블록화가 진행 중이고, 각국이 무기 도입을 산업 정책으로 활용하려는 요구에 맞춰야 K-방산의 경쟁력을 이어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15일 'K-방산, 수출 경쟁의 새로운 국면'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방산시장의 경쟁 기준이 변화하면서 제품 경쟁력만으로는 수주를 장담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변화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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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방위산업체의 수출계약 수주액은 2016~2020년 연 26억~31억 달러 수준에 머물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증해 2022년 173억달러로 정점을 찍었으며, 지난해 154억 달러를 기록했다
LIG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 한국항공우주산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등 주요 4개 방위사업체의 방산부문 합산 매출은 2021년 8조 4천억 원에서 2025년 20조 5천억 원으로, 수주잔고는 같은 기간 30조 3천억 원에서 99조 8천억 원으로 불어났다.

문제는 일부 대형 프로젝트에서 최종 수주까지 이어지지 못한 사례들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지난 4월 루마니아 차세대 보병전투차 사업 수주 업체는 독일 라인메탈이 선정된 것을 비롯해 작년 11월 폴란드 오르카 잠수함 사업은 스웨덴 사브가, 올해 7월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사업은 독일 TKMS(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스)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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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를 작성한 권혁민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최근 수출 성과와 확대된 수주잔고를 고려할 때 K-방산 경쟁력이 약화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글로벌 방산시장의 경쟁 방식이 일부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국 방산 무기를 구매한 나라들이 과거에는 시급한 전력 보강을 위해 가격과 납기를 중시했다면, 최근에는 무기 도입과 자국 방위산업 육성, 기술 확보, 공급망 구축,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경쟁이 개별 무기체계 중심에서 '종합 솔루션' 대결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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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평은 이러한 경쟁환경 변화의 배경으로 유럽 방산시장의 블록화와 공급망 재편, 무기 도입을 산업정책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구매국의 산업협력 요구 확대, 체계통합 등 미래 전장환경 변화에 있다고 봤다.
이 가운데 지난해 유럽연합(EU)이 도입한 SAFE(Security Action for Europe)가 핵심이다. SAFE는 EU가 회원국에 최대 1,500억 유로를 장기 저금리 대출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부품 비용의 최소 65%를 EU 회원국과 유럽경제지역(EEA)·유럽자유무역연합(EFTA), 우크라이나 등 역내에서 조달하도록 하는 사용요건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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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라인메탈이 따낸 루마니아 사업이 이러한 SAFE 프로그램에 따라 수주와 연계되었고, 약 57억유로 규모 방산 패키지 계약의 생산 절반 이상을 루마니아 내에서 또는 현지 기업과의 협력해 진행하는 조건이 붙었다.

우리나라는 EU와 안보·방위 파트너십(SDP)을 체결한 국가로 별도 협정을 통해 공동조달에 참여할 여지는 남아 있으며, 이러한 경로의 활용할 수 있는지 여부가 향후 유럽 시장 내 입지를 좌우할 변수로 꼽혔다.
구매국의 산업협력 요구 수준도 까다로워지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사업은 제안서 제출 단계에서 이미 이행금액의 약 40%에 해당하는 산업협력 계획을 포함하도록 했다.
또한 폴란드는 지난해 8월 K2 전차에 대한 2차 계약을 통해 현지 생산과 기술이전을 포함한 산업협력을 본격화했다. 권 수석연구원은 "방산업체들은 단순 제품 공급자를 넘어 생산, 정비, 기술지원 및 공급망 관리 역량을 갖춘 장기 파트너 역할을 바라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업체들의 대응도 현지화와 사업재편으로 모아지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호주 질롱의 현지 생산거점 H-ACE를 기반으로 레드백 장갑차 129대 전량을 호주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폴란드·루마니아·미국으로 생산기반을 넓히고 있다.
현대로템은 폴란드 국영방산그룹(PGZ)과 협력해 현지 사양인 K2PL을 글리비체에서 현지 부품으로 생산할 예정이고, 한국항공우주산업은 폴란드에 유럽 법인을 세워 FA-50의 군수지원·MRO(유지·정비·보수) 거점 확보에 나섰다.
한화그룹의 한국항공우주산업 지분 취득도 이 같은 포트폴리오 확대 전략의 연장선이라는 평가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의 항공 플랫폼 역량이 한화그룹의 엔진, 레이더, 통신, 위성, 함정 사업과 결합하면 지상부터 해양·항공·우주를 아우르는 통합 방산 체계의 구축이 가능하다는 평가다.
유럽을 중심으로 각국이 까다로운 수주조건을 내걸고 있지만, 수요 환경 자체는 우호적이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군사비 지출은 2조 8,870억 달러로 11년 연속 증가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유럽의 군사비 지출은 전년대비 14% 증가한 8,640억 달러에 달했다.
한신평은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의 생산능력 확충과 자국 방산기반 강화가 본격화하면 이 과정에서 경쟁 강도가 높아져 신규 수주에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투자 확대에 따른 재무적 부담은 관찰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순차입금은 올해 6월 말 6조6184억원으로 확대된 반면, 현대로템은 폴란드 K2 2차 계약금 수취로 약 2조5000억원의 순현금을 보유하는 등 업체별 재무 상황은 엇갈린다.
한신평은 이러한 업황을 바탕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신용도 AA, 등급전망은 안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폴란드 후속 물량과 유럽·중동 추가 수주가 관건으로, 최근 미국 육군 기동전술포(MTC) 사업에서 K9 차륜형 자주포(K9MH) 시제품 6대 공급계약을 체결해 대규모 양산 수주로 이어지는지 여부가 관건으로 꼽혔다.
한화시스템(AA/안정적)은 흑자전환이 당초 예상보다 지연되고 있는 필리조선소 관련 추가 투자 부담이 변수로 지목됐고, 한국항공우주산업(AA-/긍정적)은 KF-21 양산 일정과 인도네시아 분담금 축소 영향 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LIG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AA/안정적)는 중동지역에서 확보한 천궁-II 사업의 안정적 수행과 후속 수주를 비롯해 유도 로켓 비궁의 미국 조달시장 진입 여부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권 수석연구원은 "국내 방산업체들이 변화하는 수주환경에서 실제 수주 확대와 수익성 개선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가 향후 주요 관전 포인트"라며 "현지화 전략과 사업 포트폴리오 확대에는 상당한 투자가 수반되는 만큼 재무부담 통제 여부도 신용도 관점에서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