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중국에서 열린 세계인공지능대회(WAIC2026)에서 '키미K3'가 글로벌 화제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진짜로 시선이 쏠린 곳은 설립된지 2년 된 스타트업의 AI 칩이었다. 첨단 제조 장비 없이, 14나노 구형 공정만으로 최첨단 성능을 발휘하겠다는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을 통해 동팡쑤안신의 DF1000이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 던진 과제를 분석해본다.
전병서 소장은 ▷칭화대 석사·푸단대 박사 ▷대우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반도체IT 애널리스트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겸임교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 고속도로 레이스를 산악자전거 경기로 바꾸다
반도체 산업을 지배해 온 전통적인 법칙은 같은 면적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적해 빠르고 우수한 성능을 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의 수출 통제로 인해 ASML의 극자외선 장비(EUV)를 들여올 수가 없다. 7나노 이하의 첨단 공정 제조가 가로막힌 상황이다.
중국의 반도체 스타트업 둥팡쑤안신은 최첨단 4나노 칩이 매끈한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슈퍼카라면, 자신들의 14나노 칩은 구형 승용차와 같다는 점을 인정했다. 슈퍼카를 써킷에서는 이길 수 없게 되자 그들은 경주장 자체를 험준한 산골짜기로 바꾸는 전략을 택했다.
엔진에 해당하는 반도체 제조 공정은 구형이지만, 산길에 특화된 바퀴·프레임을 장착한 산악자전거를 만들어 슈퍼카를 따돌리겠다는 것이 그들이 내세운 핵심이다. 칭화대 교수 출신인 웨이샤오쥔 박사가 이끄는 둥팡쑤안신은 반도체 회로를 더 작게 깎는 경쟁은 포기했다. 대신 칩 내부의 연산 자원 배치, 데이터를 나르는 방식을 바꾸는 형태로 승부수를 띄웠다.
동탕쑤안신은 알리바바 클라우드, 징둥 클라우드, 딥시크, 치엔원 등과 생태계 협력을 구축한 상태다. 4월 A+ 라운드 완료 후 기업가치는 122억 위안(약 2조 3000억원)에 달한다.
● 벽을 헐고 파티션을 움직이는 모듈식
둥팡쑤안신이 내세운 첫 번째 기술은 '소프트웨어 정의 아키텍처'다.
현재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의 GPU는 방과 벽이 콘크리트로 단단하게 고정된 완공된 빌딩과 같다. 문제는 AI 생태계가 3~6개월마다 급격하게 트렌드가 바뀐다는 점이다. 고정된 GPU 구조는 이 변화에 맞춰 동선을 유연하게 바꾸지 못한다. 빈 방이 생기고 연산 효율이 떨어지는 한계를 겪는다.
반면 DF1000의 소프트웨어 정의 아키텍처는 벽을 헐고 '바퀴 달린 가벽'과 '이동식 책상'을 배치한 모듈식 사무실과 같다. 새로운 AI 모델이 등장하거나 트렌드가 바뀌면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 칩을 새로 찍어내는 방식이 아니다. 소프트웨어 명령으로 칩 내부의 연산 자원과 통로 배치를 실시간으로 재구축한다.
AI 모델이 가장 일하기 편한 맞춤형 방 구조로 칩 내부를 변신시켜 낭비되는 공간 없이 하드웨어 활용률을 100%까지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이를 활용하면 14나노 구형 공정으로도 4나노 이상의 성능을 구현할 수 있다는게 둥팡쑤안신의 설명이다. 이를 바탕으로 둥팡쑤안신은 WAIC 2026의 최고 권위상인 SAIL상 탁월 AI 리더상을 수상했다.

● 주방에 밀착시킨 재료창고
두 번째 핵심 기술은 칩의 구조를 위아래로 쌓아 올린 '3D 근메모리 컴퓨팅' 기술이다.
AI 반도체가 지연되는 가장 큰 원인은 연산 과정이 느려서가 아니다. 저장소에서 데이터를 가져오는 통로가 좁고 거리가 멀어서다. 데이터를 계속 기다려야 하는 메모리 병목 현상이다.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조차도 GPU 옆에 나란히 배치하는 방식(2.5D)을 쓴다. 요리사인 GPU가 식자재 창고인 메모리에서 데이터를 가져오려면 수십 마이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쉴 새 없이 뛰어다녀야 한다. 시간과 체력이 심하게 소모된다.
하지만 DF1000의 구조는 요리사 머리 위와 발밑에 재료 창고를 밀착시켰다. 메모리를 연산장치 위아래로 밀착시킨 3층 구조로 직접 붙여버렸다. 요리사가 멀리 식자재 창고까지 뛰어갈 필요 없이 위아래로 손만 뻗으면 즉시 재료를 꺼낼 수 있게 되면서 데이터 이동 거리가 1마이크로미터 미만으로 극적으로 줄었다.
둥팡쑤안신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 기술을 통해 데이터를 나를 때 소모되는 전력은 90%이상 절감된다. 데이터가 오가는 통로의 넓이인 메모리 대역폭은 엔비디아 H100보다 1.9배나 더 빠른 6.4TB/s까지 끌어올렸다.

● 100% 내수 공급망…실현 가능성은
둥팡쑤안신은 반도체 제조(파운드리)를 중국 내 14나노 양산 기업인 SMIC에 맡기기로 했다. 수직 조립인 3D 패키징은 JCET가 전담한다. 미국과 유럽 장비 없이 100% 내수 공급망만으로 양산하는 체계를 갖췄다. 회사는 2026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제품 납품을 시작한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낙관적인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게 전병서 소장의 분석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연산 장치와 메모리를 위아래로 밀착시키면서 발생하는 발열이다. 칩을 수직으로 붙여놓다 보니 내부에서 발생한 열이 밖으로 나갈 통로가 막힌다. 칩의 온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치솟게 된다. 오작동을 부르거나 칩 전체가 망가질 수도 있다.
둥팡쑤안신은 소프트웨어로 작업량을 분산시켜 열을 제어하겠다고 밝혔지만 물리적인 냉각 없이는 칩의 속도를 억지로 억제해야 하므로 완전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또한 층을 높이 쌓을수록 각 층의 불량률이 곱셈으로 누적된다. 현재 회사는 구체적인 수율 지표를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칩을 3D로 붙이는 패키징 설비의 국산화율이 5% 미만에 불과하다는 점도 한계다. 서로 다른 칩을 미세 구리 단자로 연결하는건 초미세 블록 조립과 같다. 대만 TSMC는 단자 간격을 3마이크로미터 미만으로 조립해 양산하고 있다. 반면 중국 기업이 보유한 기술력은 아직 40마이크로미터 안팎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간으로는 최소 5~7년 이상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 한국 반도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중국 AI 칩의 거센 부상이 한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은 시기별로 나누어 정확하게 바라봐야 한다는게 전병서 소장의 분석이다.
먼저 전 소장은 국내 반도체 기업에 미칠 단기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AI 시장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만드는 HBM이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키미K3와 DF1000 처럼 중국이 AI 모델과 칩을 빠르게 진화시킬수록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인프라 투자도 경쟁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국내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는 역설적인 이득이 예상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3~5년 뒤의 중장기적인 미래는 철저한 대비가 요구된다. AI 시장은 학습을 넘어 추론 영역 중심으로 빠르게 확장 중이다.
HBM은 학습에는 최강자지만 가격이 비싸고 전력을 많이 소모한다. 새로운 추론 시장에서는 전력을 적게 먹고 반응이 빠른 저전력 메모리가 각광받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추론용 특화 메모리 시장을 빠르게 선점하지 못한다면 DF1000처럼 효율을 극대화한 중국의 제품들이 빈자리를 거침없이 파고들 수 있다.
전 소장은 "중국 기업들이 수율과 장비 한계라는 숙제를 푸는 앞으로의 3~5년은 한국 반도체 산업에 주어진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추격 속도보다 더 빠르게 HBM4나 HBM5 같은 프리미엄 차세대 메모리 기술의 격차를 벌려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단순한 메모리 부품 공급자를 넘어 이종 반도체를 수직으로 결합하고 제어하는 3D 패키징 기술까지 완벽하게 내재화하는 슈퍼을 전략을 펼친다면 글로벌 반도체 전쟁터에서 대체 불가능한 주도권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