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세사기 여파로 외면받았던 서울 빌라(연립·다세대)가 다시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아파트 가격과 전월세 가격이 오르면서 빌라 거래가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경매시장에서는 일반 응찰자의 참여가 크게 늘고 낙찰가율도 상승하는 모습이다.
12일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 6일 서울 동부2계에서 입찰한 서울 강동구 길동의 전용면적 24.4㎡ 다세대주택은 감정가(2억6천600만원)보다 1억원가량 높은 3억6천201만원 선에 낙찰됐다. 첫 1회차 경매에 6명이 몰리면서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격 비율)은 136%를 기록했다.
해당 물건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집주인을 대신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지급한 뒤 채권을 회수하기 위해 지난해 강제경매를 신청한 것이다.
HUG는 지난 2024년 3월부터 보증사고 물건을 경매에 부치고 직접 낙찰(셀프 낙찰) 받아서 무주택 가구에 공공임대로 임차하는 '든든전세' 주택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세사기 등으로 보증사고가 급증해 어려움을 겪던 HUG 입장에선 경매 낙찰로 주택의 소유권을 넘겨받아 회계상 자산 비율을 높이고, 전세 보증금을 받아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효자 사업이다. 그러나 최근 HUG의 셀프 낙찰보다 제3자, 즉 일반 응찰자들의 낙찰이 급증하고 있다.
지지옥션 이주현 전문위원은 "통상 선순위 임차인이 있으면 낙찰자가 임차인의 보증금을 전액을 떠안아야 해 보증금이 높은 경우 낙찰되기 쉽지 않은데 HUG 물건은 HUG의 셀프 낙찰과 경매 속도 제고를 위해 우선변제권만 행사하고 대항력을 포기하기 때문에 낙찰자가 낙찰 금액 외에 추가로 임차인에 대한 보증금을 물어줄 의무가 없어진다"며 "이 때문에 양호한 물건을 중심으로 일반 응찰자가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HUG에 따르면 지난해 경매 신청 물건 가운데 HUG 직접 낙찰은 3천510건, 제3자 낙찰은 4천228건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에는 제3자 낙찰이 4천347건으로 급증한 반면 HUG 직접 낙찰은 1천325건에 그쳤다. 상반기 전체 낙찰 5천672건 가운데 일반 응찰자가 차지한 비중은 76.6%에 달했다.
HUG가 셀프 낙찰에 처음 뛰어든 2024년에도 HUG 낙찰(2천52건)과 제3자 낙찰(2천720건) 건수는 비슷했다.
일반 응찰자들이 늘며 낙찰가율도 높아지고 있다.
지지옥션 분석 결과 서울 빌라 기준으로 올해 1∼3월은 일반 응찰자에 비해 HUG의 평균 낙찰가율이 높았으나 올해 4월부터는 역전됐다. 올해 4월 HUG의 평균 낙찰가율은 67.28%였으나 제3자의 낙찰가율은 평균 74.98%로 7.7%포인트나 높았다.
지난달에도 제3자의 평균 낙찰가율은 73.20%로, HUG의 평균 낙찰가율(69.59%)보다 3.61%포인트 높았다.
한때 전세사기 후폭풍으로 외면받던 빌라가 다시 관심을 끄는 것은 최근 아파트값과 전월세 품귀로 빌라의 매매, 전월세 가격과 거래량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연립주택 매매가격은 지난해 9월부터 상승세로 돌아선 뒤 올해 1∼5월 3.37% 올랐다. 지난해 같은 기간 상승률인 0.59%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전셋값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지난해 10·15대책으로 토지거래허가구역이 확대되면서 아파트 전월세 물량이 줄어든 이후 상승폭이 커졌고, 지난 5월 서울 연립주택 전셋값은 0.59% 올라 2012년 10월(0.61%) 이후 13년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빌라 전월세 거래량도 늘고 있다. 국토교통부 집계 결과 올해 1∼5월 아파트 전월세 거래량은 총 52만8천858건으로 작년 동기(56만9천998건) 대비 7.2% 감소한 반면, 연립·다세대를 포함한 비아파트 전월세는 작년 1∼5월 62만9천107건에서 올해는 70만1천756건으로 11.5% 증가했다.
이 같은 시장 변화는 경매시장에도 반영되고 있다. 지난 7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한 빌라는 이날 4월 유찰 후 감정가(4억2천800만원)의 80%인 3억4천240만원에 2회차 경매가 진행됐는데, 9명이 응찰해 감정가에 육박(98.48%)하는 4억2천150만원에 주인을 찾았다.
2021년도에 계약한 임차인의 보증금이 4억1천400만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보증금 수준에 낙찰받아 이보다 높은 전세보증금을 받으면 투입 자금이 곧바로 회수되는 격이다.
전문가들은 과거에는 정비사업 예정지 중심으로 빌라 고가 낙찰이 이뤄졌지만 최근에는 일반 빌라까지 투자 수요가 확산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실거주 목적뿐 아니라 낙찰 이후 임대를 염두에 둔 투자자들이 늘면서 임대 여건이 좋은 물건을 중심으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