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반기 시작과 동시에 뉴욕증시가 뚜렷한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상반기 증시 랠리를 주도했던 인공지능 및 메모리 반도체 관련주들이 일제히 고점 부담에 따른 조정을 받으면서, 월가에서는 본격적인 ‘순환매 장세’가 시작됐다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메리디안 에쿼티 파트너스의 수석 애널리스트는 “지난 3~6개월간 기술주와 AI 관련주의 급등으로 시장 내 경계감이 높아진 상태”라며 “투자심리가 위축될 때 변동성이 큰 주도주부터 차익실현 매물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시장 전문가는 이들 자금이 증시를 이탈하는 것이 아니라, 그간 소외됐던 금융주, 경기방어주, 고배당주 등으로 이동하는 순환매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거래량이 감소하는 계절적 특성을 지닌 7월에 접어들면서, 거시경제 뉴스와 이상기후 등 새로운 모멘텀에 따른 업종별 자금 이동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 세계 덮친 기록적 폭염…‘냉방 공조’ 캐리어·트레인 구조적 수혜 전망
현재 월가가 순환매 장세 속에서 가장 주목하는 모멘텀은 전 세계를 강타한 ‘기록적인 폭염’이다. WHO에 따르면 지난달 유럽에서만 폭염으로 인한 초과 사망자가 1,300명을 넘어섰다. 기후 변화로 과거 한 세대에 한 번 꼴이던 기습 폭염이 연례화되면서 유럽 각국에서는 에어컨 사용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냉방을 사치재가 아닌 ‘필수 인프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역시 독립기념일을 전후로 전역에 폭염 경보가 확산되며 전력 인프라 압박이 심화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씨티는 이번 폭염이 에어컨 수요를 구조적으로 견인하는 변곡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유럽은 현재 에어컨 보급률이 20% 수준에 불과해 향후 냉방 설비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크다. 씨티는 최선호 수혜주로 캐리어(CARR)를 꼽았다. 캐리어는 전체 매출의 20% 이상을 유럽 냉난방·공조(HVAC) 사업에서 확보하고 있으며, 친환경 히트펌프 부문에서도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트레인 테크놀로지스(TT)와 존슨컨트롤즈(JCI) 역시 유럽 매출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글로벌 냉방 설비 및 에너지 효율 솔루션 수요 확대에 따른 수혜가 예상된다.
과부하 걸린 전력망…PAVE·GRID 등 인프라 ETF 주목
폭염에 따른 냉방 수요 폭발은 전력 소비 급증으로 이어진다. 대규모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우려가 커지면서 각국 정부와 기업의 전력망 현대화 투자가 전방위적으로 집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자산운용 시장에서는 전력 인프라 ETF로의 자금 유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인프라 ETF인 ‘PAVE’는 미국의 대형 전력 및 건설 인프라 기업들에 집중 투자하며, 송전망과 스마트그리드, 에너지저장장치 핵심 기업을 아우르는 ‘GRID’ ETF도 주목받고 있다. 시장 관계자들은 폭염에 더해 AI 데이터센터 증설, 전기차 보급 확대로 인한 전력 수요 폭증이 맞물리면서, 전력망 투자가 단기 계절성 이슈를 넘어 구조적인 장기 성장 테마로 완벽히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여름 특수 맞은 음료 업종…모건스탠리 “코카콜라 최선호”
기온 상승에 따른 직접적인 수혜가 기대되는 필수소비재 분야로는 음료 업종이 꼽힌다. 수분 섭취를 위한 생수, 탄산음료 및 주류 소비가 직관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 통계청은 최근 발표한 6월 소매판매가 전월 대비 0.9% 증가한 주요 원인으로 무더운 날씨로 인한 음료 판매 호조를 꼽았다.
투자정보매체 시킹알파는 전반적인 소비재 섹터의 부진 속에서도 음료 업종을 유망 섹터로 지목했으며, 모건스탠리는 강력한 브랜드 경쟁력과 가격 결정력을 보유한 코카콜라(KO)를 미국 음료 업종 내 최선호주로 제시했다. 단순한 계절성 판매 증가를 넘어 인플레이션 방어력을 갖춘 기업들의 투자 매력이 돋보인다는 분석이다.
엘니뇨가 가른 농업·원자재 희비…질소 비료 ‘방긋’ vs 칼륨·구리 ‘부담’
기후 변화의 또 다른 축인 엘니뇨 현상은 농업과 원자재 공급망 지도를 바꾸고 있다. 이상기후로 농작물 수확량이 감소하면 식량 안보를 위해 비료 수요가 급증하게 된다. 스코샤캐피털은 농가 환경 변화에 따른 가격 반영 속도가 빠른 ‘질소 비료’ 업체들이 상대적으로 유망하다고 분석하며 CF 인더스트리스(CF)와 뉴트리엔(NTR)을 수혜주로 언급했다.
반면 비료 종류에 따라 희비는 엇갈릴 전망이다. RBC캐피털마켓은 건조 기후가 지속될 경우 칼륨 비료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둔화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모자이크(MOS)처럼 칼륨 매출 비중이 높은 기업은 단기적인 실적 부담을 안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원자재 시장의 공급 충격 가능성도 제기됐다. 삭소뱅크는 엘니뇨로 인해 남미 일부 지역에 폭우가 쏟아질 경우 물류 차질과 더불어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인 칠레와 페루의 광산 가동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경우 프리포트 맥모란(FCX)이나 앵글로아메리칸 등 글로벌 구리 채굴 기업들의 생산 실적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어 투자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이제 이상기후와 환경 변화는 단순한 환경적 이슈를 넘어 기업의 실적 가시성과 산업 패러다임을 흔드는 핵심 거시경제 변수가 됐다. 순환매 장세 속에서 기후 변화 대응력을 갖춘 산업군에서 새로운 투자 기회를 포착하는 전략도 중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은비 외신캐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