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가 만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노인 주거 문제가 새로운 사회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노인 인구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중산층 고령자들이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주거시설은 부족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국민연금공단 연구용역으로 한국주거학회가 수행한 '노인복지주택 사업 타당성 검토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국내 노인 주거 정책은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으로 양극화돼 있다.
국토교통부는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 공급에, 보건복지부는 민간이 주도하는 고비용 실버타운 중심으로 제도를 운영하다 보니 주거와 복지 서비스를 결합한 통합 모델이 나오지 못했다.
그 결과 전체 노인가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중산층 고령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적정 가격대 주거시설이 부족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민간 실버타운은 높은 초기 비용과 운영 문제로 사업을 중단하면서 입주자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같은 문제의 대안으로 국민연금공단의 노인복지주택 사업 참여가 검토되고 있다. 국민연금법과 시행령에 따르면 국민연금공단은 가입자와 연금을 받는 사람들의 복지 증진을 위해 노인복지시설을 설치하고 임대하거나 운영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수급액과 주거비, 복지서비스를 연계한 안정적인 노후 주거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공공기관이 직접 운영에 참여할 경우 보증금 안전성과 운영 안정성 측면에서 신뢰를 높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한국주거학회가 국민연금 가입자와 수급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0.8%가 국민연금공단의 공공 노인복지주택 운영에 찬성했다. 현재 연금을 받고 있는 수급자의 찬성 비율은 64.9%로 더 높게 나타났다.
찬성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공기관이 가진 높은 신뢰성과 안정적인 운영 기반이다. 반면 일부는 연금 재정 부담 가능성을 우려하므로 사업 추진 시 연금기금과 분리된 독립적 재정 운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수요자들이 선호하는 주거 형태는 병원과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은 도시 또는 도시 근교 지역의 대규모 단지였다. 거주 희망 지역으로 도시권을 선택한 비율은 93.1%에 달했다.
단지 규모는 관리 효율성과 커뮤니티 시설 확충이 가능한 500세대 이상 1천세대 미만을 선호하는 응답이 많았다.
주택 규모는 관리 부담을 줄일 수 있는 20평형대 이하가 선호됐으며, 미끄럼 방지 바닥재와 욕실 손잡이, 문턱 제거 등 고령 친화 설비가 필수 요소로 꼽혔다.
비용 지불 방식은 월 임대료와 기본 서비스를 결합하고, 추가 선택 서비스는 사용량에 따라 내는 방식이나 전세형 보증금 구조를 선호했다. 특히 매달 받는 국민연금 수급액에서 주거 및 식사 서비스 요금을 자동으로 공제해 납부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선호도가 높았다.
지불 가능한 비용 수준은 월임대료 평균 58만원, 월관리비 평균 18만5천원 수준으로 조사됐다.
해외에서는 이미 연기금과 공공기관, 민간 전문기관이 협력해 고령자 주거 문제를 해결에 나서고 있다. 네덜란드는 보건의료 종사자 연기금 등이 장기 부동산 펀드를 조성해 노인주택 자산을 매입하고 일상 운영과 돌봄은 전문 돌봄기관에 맡기는 구조를 정착시켰다. 덴마크 역시 지자체가 돌봄 재정을 책임지고 연기금은 장기 임대 투자를 통해 수익을 올리며 비영리 전문기관이 시설을 운영하는 모델을 가동하고 있다.
한국주거학회는 국민연금공단이 사업에 참여할 경우 직접 운영보다 자본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고 개발과 운영은 민간 또는 비영리 전문기관과 협력하는 방식이 적절하다고 제안했다. 또한 주택 소유 여부만으로 입주 자격을 제한하지 않고 중산층 수급자까지 포괄할 수 있는 유연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