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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돈 버는 이'의 리스크 망각한 분배론, 지속될 수 없다

원대식 한양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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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반도체 기업들이 막대한 실적을 올리자, 기다렸다는 듯 그 결실을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가의 지원이 있었으니 이익을 환원하라는 논리다. 그러나 기업은 현행 세법에 따라 정당하게 세금을 납부하고, 마땅히 누려야 할 '리스크의 대가(代價)'를 향유하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마치 맡겨놓은 권리를 행사하듯 당당하게 분배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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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과연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기본 원리에 부합하는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과거 해외 각국에서 포퓰리즘의 일환으로 '횡재세' 도입이 논의되었으나, 결국 시장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비논리적 주장이라는 반발에 부딪혀 무산되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 대학원 박사과정 시절, 복지학 분야에서 명망 높은 한 교수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분은 "은퇴한 어떤 직종에 종사했던 분들의 생계 대책이 미비하다"며, 본인이 새로운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해 냈다고 자랑스럽게 역설했다. 강의를 듣던 나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그 복지를 실행하기 위한 재원은 어디서 마련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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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온 답변은 실망스러웠다. "나는 재정을 쓰는 방법을 연구하는 사람이지, 돈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재원의 조달 가능성을 배제한 채 지출의 정당성만 외치는 건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기에, 나는 미련 없이 그 과목을 포기(Drop)했다.

    결코 복지 자체를 부정하거나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복지정책은 일회성 시혜에 그치지 않고, 소외계층이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과거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복지 개혁을 단행하며 "복지란 그것으로 평생 생계를 유지하라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잠시 도와주는 것뿐"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국가 재정은 무한히 샘솟는 화수분이 아니다. 모든 정책은 재원의 '조달'과 '운영'이 철저하게 균형을 이룰 때만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아무리 명분이 좋다고 한들, 그저 돈이 있어 보이는 곳을 찾아가 무조건 지갑을 열라고 압박하는 것은 정상적인 국가의 재정 운용이라 볼 수 없다.

    기업이 막대한 이윤을 창출했다는 것은 글로벌 무한 경쟁 속에서 사투를 벌여 살아남았다는 증거다. 그 결실의 이면에는 파산을 불사한 대규모 선제 투자와 극심한 리스크 감내, 그리고 수많은 구성원의 치열한 노력이 있었다. 이렇듯 정당한 노력과 그에 따르는 위험의 대가를 존중하고 인정할 줄 아는 사회적 풍토가 조성되어야 국가도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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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지 천국'이라 불리며 우리가 부러워했던 유럽 국가들의 현재를 보자. 격렬한 정쟁과 사회적 저항 속에서도 프랑스는 재정 파산을 막기 위해 연금 수령 나이를 연장했고, 독일은 실업수당을 삭감하며 복지의 도덕적 해이를 수술하고 있다. 더욱이 과도한 규제로 경제 활력을 잃었다는 자성(自省) 속에 '드라기 보고서'를 기점으로 친기업 체질 개선에 사활을 걸고 있다. 분배에 취해 성장의 엔진을 꺼뜨린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지, 우리는 유럽의 경우를 뼈아픈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원 대 식 한양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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