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년 만에 4%대로 올라섰다. 3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이란과의 전쟁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치솟으면서 전체 물가를 끌어올린 결과다.
이번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분의 60%를 유가 상승이 차지했다. 다만 이러한 상승분을 걷어낸 근원 소비자물가지수는 시장 예상치를 소폭 밑돌면서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시장의 안도감도 나타나고 있다.
미 노동부 산하 노동통계국(BLS)이 10일(현지시간)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따르면 전체 물가 상승률은 1년 전 같은 달보다 4.2% 상승했다. 이는 4월 기록한 3.8%에서 0.4%포인트 가속한 것으로, 2023년 4월 이후 3년여 만의 최고치다. 또한 연간 상승률이 4%를 넘어선 것도 3년 만에 처음이다.
전체 소비자물가지수의 전월 대비 상승률은 0.5%로 연간 상승률과 함께 다우존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시장 전망치와 동일했다.
BLS는 이번 소비자 물가지수 가운데 에너지 물가는 전월 대비 3.9% 상승해 전체 월간 상승분의 60% 이상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휘발유는 한 달 새 7% 뛰었고, 1년 전과 비교하면 40.5% 폭등했다. 연료유는 연간 58.9% 치솟는 등 운송 비용 등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다.
치솟은 고유가는 미국 기업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이날 전미자영업연맹(NFIB)에서 공개한 소기업낙관지수 설문에서 5월 소기업 사업주의 3분의 1이 가격 인상을 계획한다고 밝히는 등 추가적인 물가 상승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다만, 미국과 이란 사이의 호르무즈 해협을 두고 임시 휴전에 돌입하면서 최근 한 달간 에너지 가격은 완만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은 전날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통행량이 매우 의미있는 수준으로 증가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전역의 휘발유 가격은 이날 전미자동차협회(AAA) 집계 기준 갤런당 4.151달러로 한 달 전 갤런당 4.522달러 대비 37센트 가량 하락했다.

국제유가는 시장이 우려하던 수준으로 물가를 자극하고 있지만,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 한 달간 0.2% 상승에 그쳤다. 이는 월가 예상치 평균인 0.3%는 물론 4월 상승 폭(0.4%)을 모두 밑도는 기록이다. 1년 전과 비교한 근원 CPI 상승률은 2.9%로 예상에 부합했다.
세부 항목에서도 국제 유가를 제외한 물가 압력은 완만하게 나타났다. 제트유 가격 상승에 따라 항공료(+2.7%)와 의료(+0.3%), 통신(+1.3%) 등은 올랐지만, 자동차보험(-1.7%), 가구(-0.6%), 신차(-0.3%) 가격은 내렸다.
미 연방준비제도(Fed) 통화 정책 결정에서 핵심 변수로 꼽히는 주거비 상승률은 0.3%로 4월의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다.
애넥스 웰스 매니지먼트의 브라이언 제이컵슨은 "수치가 예상에 부합했다고 해서 좋은 수치였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호르무즈 해협을 무력으로든 휴전으로든 열어야 한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핌코의 티퍼니 와일딩 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관건은 인플레이션이 부정적 공급 충격 탓인지, 강한 수요 탓인지를 가려내는 것” “라며 미 연준이 일정 기간 목표를 다소 웃도는 인플레이션을 용인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5월 평균 시간당 임금 상승률은 2021년 이후 가장 낮은 연 3.4%를 기록했다. 물가 상승률(4.2%)이 임금 상승률을 웃돌면서 실질임금은 두 달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소비자들의 부담이 증가하는 추세다.

이번 소비자물가지수는 오는 17일 케빈 워시 신임 연준 의장이 주재하는 첫 FOMC의 방향을 가를 핵심 지표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그룹의 페드워치(FedWatch)에 따르면 미 선물시장은 관세, 에너지 비용, 인공지능(AI) 투자 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충격으로 인해 올해 연준이 한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시장 참가자들은 이번 CPI 발표 후에도 향후 12개월간 약 40bp의 인상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으며, 올해 12월 회의에서 25bp 인상 확률은 93%에 달한다.
BMO 캐피털마켓의 이언 린전은 "전쟁 탓에 헤드라인 물가가 강한 것은 기정 사실이 됐다”면서 "유가 충격의 근원물가 전이가 정책금리를 움직일 만큼 설득력 있게 확인되려면 최소 몇 달이 더 걸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이란이 평화 협상안을 거부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시장은 재차 출렁였다.
지표 발표 전 1.5%까지 밀렸던 나스닥100 선물 등 미 주가지수 선물은 소비자물가지수 발표 후 안도감에 낙폭을 줄이며 저점에서 반등했고, 미 국채 2년물 수익률은 4.11%로 소폭 내려온 채 거래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