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증시가 장중 8% 넘게 급락하며 ‘검은 월요일’ 공포가 확산됐지만 증권가에서는 이번 조정을 경기침체 신호가 아닌 단기 충격으로 해석하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코스피는 미국 증시 급락 여파로 장중 8% 이상 하락하며 서킷브레이커와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앞서 미국에서는 5월 고용지표가 시장 예상치를 크게 웃돌면서 금리 인하 기대가 후퇴했다. 여기에 브로드컴의 보수적인 AI 반도체 가이던스와 엔비디아 차세대 AI 플랫폼 '베라 루빈(Vera Rubin)'의 메모리 탑재량 축소 가능성까지 겹치며 반도체 업종을 중심으로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졌다.
실제로 미국 마이크론은 이틀 동안 약 20% 급락했고 삼성전자는 지난 금요일 하루 동안 6.4%, SK하이닉스는 9.9% 하락한데 이어 8일 장중 각각 ‘30만 전자’와 ‘200만 닉스’가 깨지기도 했다.
다만 증권가는 시장이 이번 사안을 과도하게 해석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베라 루빈 NVL72의 LPDDR5X 탑재량이 기존 54TB에서 27TB로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며 메모리 업체들의 주가가 급락했다”면서도 “이는 수요 감소가 아니라 심각한 LPDDR 공급 부족에 따른 대응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실제 엔비디아의 현재 주력 제품인 그레이스 블랙웰(GB) NVL72 랙에는 18TB의 LPDDR이 탑재된다. 베라 루빈의 메모리 용량이 절반으로 축소되더라도 랙당 탑재량은 27TB로 기존 제품 대비 50% 늘어난 수준이다.
김 연구원은 “엔비디아가 실제로 탑재량을 줄인다면 이는 LPDDR 부족 때문에 출하량 확보를 위한 선택일 것”이라며 “DRAM 평균판매가격(ASP) 상승 전망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설명했다.
SK증권도 비슷한 시각을 내놨다. 한동희 SK증권 연구원은 “SOCAMM2 채용량 하향 조정은 수요 감소가 아니라 공급 부족에 따른 사양 재분배”라며 “AI향 수요는 여전히 강력하고 엔비디아 CPU용 메모리 수요 자체가 감소한 것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특히 SK증권은 HBM 시장의 구조적 성장 가능성에도 주목했다. 한 연구원은 “현재 DDR5 가격이 HBM 가격을 추월하기 시작했고 HBM 생산 확대 유인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2027년 HBM 가격은 올해보다 최소 50% 이상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유안타증권은 과거 급락 사례를 근거로 투매를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재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2000년 이후 코스피가 하루 8% 이상 하락한 사례는 총 7차례에 불과하다”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제외하면 이후 대부분 의미 있는 반등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급락 이후 코스피 평균 수익률은 10거래일 기준 5.5%, 30거래일 기준 6.5%, 90거래일 기준 15.3%를 기록했다.
환율 역시 주요 변수로 꼽혔다. 김두언 하나증권 연구원은 “이번 불안의 출발점은 주식시장이 아니라 외환시장”이라며 “달러-원 환율이 1560원 안팎까지 급등하면서 외국인 수급 부담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다만 그는 “엔비디아의 메모리 탑재량 축소 가능성은 수요 둔화가 아니라 공급 부족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신호”라며 “주가는 먼저 흔들렸지만 메모리 기업들의 이익 방향은 여전히 위를 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증권가에서는 향후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환율 안정 여부가 단기 변동성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AI 투자 확대와 메모리 공급 부족이라는 산업의 핵심 구조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에서 이번 조정을 오히려 실적 개선 기업에 대한 매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한 연구원은 “AI 시대 메모리의 구조적 병목 현상과 위상 강화는 단기에 변하는 가치가 아니다”라며 “조정은 기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