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발생한 지도 벌써 3개월이 지났다. 영구 종전이 어려운 중동전쟁 역사와 특성상 휴전 협상이 어떤 형태로 끝나든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은 전시 혹은 준전시 체제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쟁 발생 당시만 하더라도 세계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시각이 많았다. 작년 4월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상호관세 부과 이후 지칠 줄 모르고 올랐던 세계 증시도 이번 전쟁을 계기로 큰 폭의 조정을 거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와 증시 앞날에 대해서는 특히 비관적이었다.
하지만 세계 경제와 증시 모습은 다른 양상이다. 전쟁이 겹치는 올해 1분기 성장률이 미국 경제는 2%로 잠재 수준을 웃돌았고 중국 경제도 5%로 목표치를 달성했다. 가장 피해가 클 것으로 봤던 한국 경제는 1.7%로 미국식 통계방식으로 환산하면 7%에 근접하는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세계 주가와 코스피 지수도 전쟁 이전 수준을 넘어선 지도 오래됐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 이후 세계 경제와 증시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지난 3개월간 예상과 다른 움직임을 보인 원인부터 따져봐야 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번 전쟁 피해가 1970년대 발생했던 두 차례 중동전쟁, 지난 4년간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액을 합한 것보다 크다는 평가 속에 발생하고 있는 점이다.
가장 큰 요인은 세계 경제 주도국이 전쟁 전부터 추진해 온 ‘고압경제(HPE·High Pressure Economy)’를 빼놓을 수 없다. 1960년대 미국과 베트남 전쟁이 한창 진행 중에 아서 오쿤 예일대 교수가 제시한 HPE는 실물 경제 각 부문에 초과 수요를 발생시켜 전쟁에 따른 피해를 완충시키고 경기와 증시를 부양하는 정책 처방을 말한다.
HPE의 핵심인 노동시장을 통해 그 실체를 알아보면 재정과 금융 완화를 통해 노동 수급 여건에 초과 수요를 발생시키면 임금이 올라간다. 임금이 그냥 쉼(take a break) 만족도보다 높아지면 자발적, 비자발적 실업자 모두 고용시장에 들어온다. 취업자도 생산성과 임금이 높은 자리로 이동하는 ‘고용 사다리 효과’도 발생한다.
HPE는 베트남 전쟁으로 점철됐던 1960년대 존 F. 케네디와 린든 존슨 정부까지 이어지는 미국 경제의 장기호황을 이끌었다. 그 후 전쟁, 코로나 사태와 같은 디스토피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실험되다가 작년 1월 출범한 트럼프 정부와 올해 2월 총리직을 걸고 중의원 선거를 통해 더 강력해진 다카이치 사나에 정부가 상용화하고 있다.
문제는 고압경제 후유증은 전쟁이 끝나갈 무렵부터 본격화된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들이닥치는 후유증은 ‘재정적자와 포퓰리즘 간 악순환 고리(DPDL·Deficit-Populism Deep Loop)’에 빠질 우려다. 최근 들어 미국, 영국, 일본 등 통수권자가 권력욕이 많은 선진국일수록 국채 파동이 일어나면서 금리가 상승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하나의 후유증은 인플레이션이다. 최근 들어 각국 중앙은행 수장이 던지는 공통적인 화두는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는 점이다. 신현송 한국은행 신임 총재는 빠르면 7월부터 금리를 올릴 방침을 밝혔다. 이달 14일부터 양일 동안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처음 주재하는 케빈 워시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도 비슷한 견해를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전쟁 등과 같은 외부 충격에 따른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금리를 올릴 것인가 여부에 가장 중요한 것은 ‘로켓과 깃털 효과(RFE·Rocket & Feather Effect)’에 대한 판단이다. 영국 에너지 기후 연구소(ECIU)가 처음 제시한 이 용어는 외부 충격이 발생하면 초기에는 로켓처럼 물가가 급등하다가 없어지더라도 깃털처럼 천천히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ECIU가 지난 30년간 영국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장바구니 물가는 외부 충격 발생 이후 6개월이 지나도 상승분 대비 평균 1%, 1년 후에는 5%, 2년 후에는 7% 정도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수요 요인과 달리 총공급 요인에 따라 한번 올라간 물가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 하방 경직성을 보여주는 실증적인 결과다.
RFE에 대한 정확한 판단 여부는 Fed의 신뢰와 독립성, 금리 결정 성과, 의장 임기 등을 좌우하는 변수로 작용해 왔다. 1913년 설립 이후 양대 치욕이라 일컫는 ‘에클스의 실수(Eccles’s failure)’와 ‘볼커의 실수(Volker’s failure)‘도 이 문제에 의해 발생했다. 일본은행, 한국은행 등 다른 중앙은행도 마찬가지다.
최근의 예로 코로나 종료 직후 상황을 보면 2021년 4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급등하자 Fed는 ‘일시적(transitory)’ 현상이라 보고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 후 인플레이션이 고착화 조짐을 보이자 같은 해 9월에 열렸던 FOMC 회의에서 도입한 평균 물가 목표제(AIT)로 방치하다가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목표치 대비 2배 넘게 뛰었다.
뒤늦게 화들짝 놀란 Fed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베이비 스텝으로 올리는 관행을 깨고 빅 스텝, 자이언트 스텝으로 급격히 올리는 과정에서 엄청난 후폭풍을 겪었다. 단기에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실물 경제 균형을 가져다주는 r 스타 금리(r*)가 금융시장 안정을 가져다주는 r 더블 스타 금리(r**)보다 높아졌다, 그 결과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를 비롯한 크고 작은 금융위기 조짐이 지금까지도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발 인플레이션의 RFE를 잘못 파악해 통화정책의 생명인 선제성을 잃은 상황에서 단기에 금리를 급격히 올리는 대응 방식이 옳았느냐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이슨 포먼 하버드대 교수는 ‘희생률(sacrifice ratio)’ 개념을 제시하면서 당시의 대응 방식이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뒤늦게 인플레이션을 1% 포인트 낮추기 위해서는 실업률이 6% 포인트 올라가기 때문에 급격한 출구전략 추진은 신중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크리스토퍼 월러 Fed 이사는 빈 일자리가 많이 인플레이션 방지를 위한 희생률이 크지 않다고 비판했다. 선제성을 잃었더라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급격한 출구전략을 추진해 잡아야 한다고 2022년 3월 이후 금리 인상 대응을 옹호했다. 올해 8월에 열릴 잭슨홀 미팅에서 RFE와 금리 인상 시기 및 속도를 놓고 또다시 격렬한 논쟁이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증시에서는 희생률이 실물 변수보다 높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1987년 7월에 취임했던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은 같은 해 10월에 열렸던 FOMC 회의에서 금리는 0.5% 포인트 올려 하루에 S&P 지수가 20% 폭락한 블랙 먼데이가 발생했다. 인플레이션과 증시 거품을 선제적으로 잡지 못했다면 점진적으로 출구전략을 추진해 연착륙시켜야 희생률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친증시 정책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국가부도 위험도 그렇다. 통화정책의 생명이 ‘선제성(preemptive)’인 점을 고려해 금리를 올리면 DPDL의 골은 더 깊어진 확률이 높다. 어떻게 처방해야 하는가. 방법은 ‘틴버겐 정리’다. 재정정책 주무 부서는 스텔스 양적완화(QE) 등을 통해 국채금리를 안정시켜 국가부도 위험부터 낮춰야 한다. 과연 잘해 낼 수 있을까? 경기와 증시 앞날을 좌우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