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상자산 과세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이 국회 심사 요건인 5만 명 동의를 넘어섰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5월 13일 청원이 올라온 지 8일 만인 21일 요건을 충족하면서 소관 상임위원회 심사 절차에 오르게 됐다. 상임위는 청원 취지를 검토한 뒤 필요할 경우 청원심사소위원회 심사, 관계 부처 의견 청취, 전문가 검토 등을 거쳐 본회의 부의 여부를 판단한다. 청원이 타당하다고 판단되면 관련 법률안 심사와 병합되거나 위원회 대안 마련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청원은 단순한 투자자 민원을 넘어, 내년 시행을 앞둔 가상자산 과세 제도의 정당성과 실효성을 국회 차원에서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금투세는 폐지했는데 코인만 과세"…형평성 논란 재점화
폐지론의 핵심 논거는 조세 형평성이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가상자산 양도·대여로 발생한 소득은 연 250만원 기본공제를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 지방소득세를 포함해 22% 세율로 과세된다. 가상자산 소득은 양도소득이 아닌 기타소득으로 분류돼 이월결손금 공제도 되지 않는다. 손실을 다음 연도로 넘겨 이익에서 차감할 수 없다는 의미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는 폐지됐는데 가상자산에만 별도 과세를 강행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반발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거세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폐지 논의는 이미 본격화됐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3월 가상자산 소득세 폐지를 골자로 한 소득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청원이 5만 명을 넘어서면서 해당 법안 논의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전문가들도 현행 과세 체계의 문제점을 잇따라 지적하고 있다. 오문성 한국조세정책학회 회장은 지난 7일 국회 토론회에서 "금투세 폐지 당시 제시됐던 시장 위축, 과세 인프라 미비, 이중과세 우려 등의 논거가 가상자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강조했다. 금투세는 폐지하면서 가상자산만 과세하는 것은 조세 형평성 측면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취지다.
한국금융연구원도 최근 보고서에서 "금투세가 폐지된 상황에서 가상자산 과세를 별도로 도입하는 문제는 단순히 시행 시기를 정하는 수준을 넘어 과세 근거와 체계 전반을 다시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세수 대비 행정비용, 금융투자자산과의 과세 형평성, 산업 영향 등을 고려해야 하며, 과세를 하더라도 현행 대주주 과세체계와 유사하게 고액 투자자 중심의 제한적 접근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디파이·NFT 등 과세 기준 불명확…"인프라 미비" 우려도
과세 인프라 미비 문제도 핵심 쟁점이다. 포필러스 리서치는 최근 보고서에서 현행 제도가 단순 매매와 코인 간 교환 외 영역을 충분히 포괄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디파이, 스테이킹, 렌딩, 에어드랍, NFT 등 다양한 거래 유형에 대한 과세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과세가 시행되면 납세자에게 과도한 입증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거래소 이용자에게만 과세 부담이 집중되고 해외 거래소나 디파이 이용자는 사각지대로 남는다면 과세 형평성이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 이후 시장 감시와 불공정거래 규제는 강화됐지만, 세제는 여전히 투자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준비되지 않은 과세는 세수 확보보다 시장 위축과 납세 혼란을 키울 가능성이 큰 만큼, 국회 심사 과정에서 현행 과세 체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한층 커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