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제재 속에서도 중국의 반도체·AI 기술 굴기는 계속되고 있다. 최근 중국 증시에서는 반도체, AI, 첨단 테크 기업의 주가가 일제히 폭등하며 전 세계 투자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상황이다. 제재를 버티는 수준을 넘어 미국이 주도해 온 기술 패러다임 자체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중국 반도체 기술력의 현황과 그들이 그리는 거대한 밑그림을 짚어본다.
● 기술주, 중국 전체 증시의 절반 넘어서
그동안 중국 증시를 이끈 주역은 은행이나 광공업, 대형 소비재 기업이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막대한 투자금이 테크 분야로 집중되면서 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판 나스닥으로 불리는 '과창판'과 기술주가 몰려있는 '심천'의 비중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과창판50 지수는 최근 1개월간 22% 가량 올랐고, 1년으로 범위를 넓히면 88% 상승했다.
4월말 기준 중국 증시에서 심천의 비중은 22.6%까지 높아졌고, ChiNext와 과창판은 각각 17.4%, 11.5%를 차지한다. 세 시장 비중이 사상 처음으로 전체의 절반(51.5%)을 넘어서게 됐다.
중국 경제의 중심축이 상해 중심의 '구경제'에서 첨단 기술 중심의 '신경제'로 확실히 넘어갔음을 보여준다.

● 중국 화웨이 '타우의 법칙'으로 패러다임 전환
현재 중국은 미국의 수출 통제로 인해 네덜란드 ASML의 최첨단 극자외선(EUV) 장비를 살 수 없다. EUV가 없으면 첨단 반도체를 만들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화웨이는 '타우의 법칙'을 제시하며 우회로를 찾았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반도체 업계를 지배하던 규칙은 '무어의 법칙'이었다. 반도체 칩을 아주 미세하게 줄여서 성능을 높이는 방식이다. 하지만 칩을 작게 만드는 데는 물리적인 한계가 명확하다. 높은 비용과 EUV 같은 첨단 장비도 필수적이다.
화웨이가 꺼낸 '타우의 법칙'은 관점을 완전히 뒤집었다. 칩 크기를 작게 깎는 대신, 평면에 늘어놓던 칩들을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로직 폴딩' 방식을 쓴다. 위아래로 칩을 붙여서(하이브리드 본딩) 신호가 이동하는 거리를 극단적으로 줄이고 처리 속도를 끌어올리는 원리다.
화웨이는 이 방식을 활용하면 EUV 장비 없이도 충분히 고성능 칩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발표 직후 중국 파운드리 기업인 SMIC 주가가 상한가를 쳤고, 자국 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은 상승세를 타고 있다.

● 중국 메모리 굴기, 월가도 경계 태세
중국의 메모리 기업인 창신메모리(CXMT)는 최근 IPO 허가를 받았다. 상장을 통해 한화 6조 5000억원을 끌어모을 계획이다.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 10% 정도인 양쯔메모리(YMTC)도 상장을 앞두고 있다.
미국 월가에서는 중국 메모리 기업들의 성장을 경계하고 있다. 최근 마이크론의 목표주가를 3배 높이며 주가를 폭등시켰던 UBS의 보고서에서도 YMTC를 '잠재적 위협 요인'으로 꼽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YMTC는 4만 5000wpm(월간 웨이퍼 생산량) 규모의 생산량 증가를 추진 중이다. 당초 낸드 생산 증가에 집중될 예정이었으나, 3만wpm 규모를 D램 생산으로 돌리고 있다. 증설이 완료된 2028년 이후 본격적으로 싼값의 D램을 쏟아내기 시작하면 전 세계 메모리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다고 UBS는 경고했다.
● 싼 전기료 무기로 '토큰 공장' 짓는 중국
AI 서비스 시장에서도 중국의 추격이 매섭다. 요즘 AI는 단순히 묻고 답하는 챗봇 수준을 넘어 복잡한 문제를 스스로 생각하고 풀어내는 '추론형 AI' 단계로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를 처리하는 기본 단위인 '토큰'의 소비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제 토큰은 산업적 가치와 과금의 기준이 되고 있다.
중국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풍부하고 싼 전기'다. AI 데이터센터를 돌리려면 엄청난 전기가 필요한데 중국의 연간 전력 생산량은 9000TWh로 미국(4400TWh)의 2배를 넘는다.
저렴한 전력을 바탕으로 중국은 100만 토큰을 처리하는 비용을 2달러 수준까지 낮췄다. 즈푸AI는 1.9달러, 딥시크는 2.1달러 수준이다. 같은 토큰을 처리하는데 구글 GEMINI가 4.5달러, 앤스로픽 10달러, 오픈AI 11.3달러가 드는 것을 감안하면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자랑한다.
다시 말해 중국은 저렴한 전력망과 데이터센터를 하나로 묶어 거대한 '토큰 팩토리(토큰 생산 공장)'를 짓고 전 세계 AI 인프라 시장을 장악하려 시도 중인 상황이다.

● 중국, 폐쇄된 AI 생태계 구축
현재 중국이 조용히 추진하는 것이 있다. '중국 AI 칩 + 중국 HBM + 중국 AI 소프트웨어'로 완결되는 폐쇄적 AI 생태계 구축이다.
화웨이의 어센드(Ascend) AI 칩은 이미 상당한 성능을 갖추고 있다. 만약 타우의 법칙을 기반으로 한 로직 폴딩이 적용되면 2030년 어센드990 출시 시점에 성능이 크게 향상된다. 여기에 필요한 HBM은 CXMT가 조용히 개발을 진행 중이다. 완성도는 아직 낮지만 방향은 분명하다는 평가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2030년 전후에 화웨이 AI칩과 CXMT HBM이 동시에 성숙한다면, 중국은 한국·미국 제품 없이도 자국 AI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며 "이는 한국 HBM에 가장 위협적인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전 소장이 말하는 중국 기업의 위협 요인과 위협 시점은 아래와 같다.
△CXMT: DDR4·DDR5 양산 중. HBM 개발 중(2028~2030년 양산 가능) △화웨이 히실리콘: 어센드910B 양산 중. 어센드990 출시 예정(2030년 타우의 법칙 적용 전망) △SMIC: 7나노 공정 양산 중. 자국 칩 생산 증대 예정(2027년 수주 본격화)
● 中 투자자라면…진짜 수익은 병목 구간
중국 투자에 관심이 있는 투자자라면 중국의 '인프라 기업'에 시선을 돌려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가성비 높은 토큰을 생산해내는 과정에서 수요가 몰려 병목현상이 발생하는 지점의 선두 기업들이 이번 AI 사이클의 수혜자가 될 것이란 분석이다.
가장 먼저 주목받는 곳은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다. 상장 초읽기에 돌입한 창신메모리(CXMT)와 연이어 상장을 준비 중인 양쯔메모리(YMTC)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단순한 부품 공급사를 넘어 자급자족을 노리는 중국 AI 생태계의 핵심 퍼즐이다.
연산 중추를 담당하는 GPU 생태계에서도 지각 변동이 거세다. 타우의 법칙이라는 독자적인 생존 공식을 제시한 화웨이가 선두에서 시장을 이끌고 있다. '중국의 엔비디아'라는 별칭을 얻으며 국산 AI 가속기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늘려가고 있는 캠브리콘도 핵심 주자로 꼽힌다.
타우의 법칙을 구현해 내기 위한 핵심 공정인 '하이브리드 본딩' 관련 기업들의 가치도 재평가받는 중이다. 칩을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적층 과정에는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해당 공급망에는 파이오텍, 쑤저우 맥스웰 테크놀로지 등이 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