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이란 간 종전 협상 타결 기대감으로 25일(현지시간) 국제유가가 급락했지만, 에너지 공급 및 유가 정상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호르무즈 해협 운항이 일부 재개되고는 있지만 실제 물동량 회복과 생산시설 복구까지는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7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전장 대비 7.15% 하락한 배럴당 96.14달러를 기록했다. 여전히 전쟁 이전보다 배럴당 20달러 이상 높은 수준이긴 하지만, 브렌트유 가격이 100달러 아래로 떨어진 것은 4월 하순 이후 처음이다.
최근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액화천연가스(LNG) 탱커 2척과 초대형 유조선이 잇따라 통과하면서 운항 재개 움직임도 나타났다.
시장에서는 해협이 완전히 정상화될 경우 에너지와 비료 가격 급등으로 커졌던 글로벌 물가 압력이 완화되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의 긴축 기조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협상 진전에도 공급 정상화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호르무즈 해협이 재개통되더라도 즉각적인 공급 회복은 사실상 어렵다고 분석했다. 현재 페르시아만에는 약 2천 척의 선박이 묶여 있고, 이란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유전과 LNG 플랜트 복구도 필요한 상황이다. S&P 글로벌은 일부 유전의 경우 재가동까지 최대 7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추산했다.
해운사들이 운항 재개를 위해 상당 기간의 안정적인 상황을 확인해야 한다는 점도 즉각적인 유가 정상화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 전쟁 전 하루 125∼140척에 달하던 호르무즈 통행 선박은 이달 들어서도 손에 꼽을 수준에 불과하다. 이란이 검문소 설치, 선박 심사 절차, 통항료 부과 등을 통해 해협을 사실상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아랍에미리트(UAE) 영자지인 걸프뉴스가 전했다.
아부다비국영석유공사(ADNOC) 술탄 알자베르 최고경영자(CEO)는 "분쟁이 내일 당장 끝나더라도 전쟁 전 물동량의 80%를 회복하는 데 최소 4개월이 걸리고, 완전 회복은 2027년 1∼2분기 이전에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의 아민 나세르 CEO도 혼란이 6월 중순까지 이어질 경우 석유 시장 회복이 2027년 이후로 밀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이번 사태를 현대 역사상 최대 에너지 공급 위기로 규정하고 있다.
산유국들의 증산도 제한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주요 8개 회원국은 5월 생산 쿼터를 하루 20만6천 배럴 확대하기로 했지만 이는 호르무즈 봉쇄로 막힌 공급량의 2%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6월에도 하루 18만8천 배럴 증산만 결정했다.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핵심 산유국들이 해협 봉쇄로 수출 자체가 막혀있어 증산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로이터는 전했다.
미국 셰일 생산도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수개월의 개발 기간이 필요해 단기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회의론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잦은 말바꾸기에서도 비롯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3일 협정 타결이 임박했다고 밝혔다가 하루 뒤에는 대이란 선박 봉쇄를 협정 서명 전까지 유지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라보뱅크의 글로벌 전략가 마이클 에브리는 "매번 '이번엔 돌파구'라고 하지만 지금까지는 번번이 빗나갔다"고 말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아태 시장 담당 토머스 매튜스도 "해협이 조만간 다시 열리더라도 에너지 가격과 통화정책에 미치는 영향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골드만삭스는 호르무즈 봉쇄가 한 달 더 지속될 경우 브렌트유 평균 가격이 하반기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 수 있으며, 장기 봉쇄 시나리오에서는 3분기 120달러, 4분기 115달러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