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주 한잔과 삼겹살. 서민의 애환과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긴 이 소박한 조합이 옛말이 되고 있다.
식당에선 한 병에 기본 5,000원, 강남 등 일부 지역에서는 7,000~8,000원을 받는 곳도 많아지면서 큰맘 먹고 지갑을 열어야만 가능해진 것이다.
고물가에 경기 침체 장기화, 여기에 술을 마시지 않거나 덜 마시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국내 주류산업이 구조적 침체에 빠졌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990원 소주에겐 남의 일이 되는 모양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주말에도 공장을 돌리는 등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주말에도 공장 돌린다"…한 두달 내 출고 완료

앞서 충청권 주류기업 선양소주는 지난달 1일 '착한소주 990'을 990만병 한정으로 출시했다. 도수 16도, 360mL 제품으로 소비자가격은 990원이다. 일반 소주가 편의점에서 약 1,900원, 대형마트에서도 1,200~1,300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절반 가까이 낮은 가격이다.
'착한소주 990'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한국수퍼체인유통사업협동조합과 협업해 기획된 것으로, 대형마트와 편의점을 제외한 동네 슈퍼마켓에서만 판매된다.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한 정책형 상품 성격이 강하다.
'착한소주 990'은 가격을 낮추면서도 품질 경쟁력을 유지한 것이 특징이다. 기존 소주와 동일한 16도에 '산소숙성공법'을 적용해 26ppm 수준의 산소를 함유, 부드러운 목넘김을 구현했다.
"팔수록 손해에 가까운 가격"이라는 평가, 여기에 브랜드 존재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제한적 실험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성과는 기대 이상이다. 11일 선양소주에 따르면 지난달 16일 기준 출고량은 약 300만병에 이어 지난 7일엔 510만병이 출고됐다. 출고량 대비 생산량이 따라가지 못해 주말에도 생산을 풀 가동중이라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선양소주 관계자는 "현재 물량을 못 맞추고 있어 주말에도 작업을 하고 있다"며 "현재 480만병 정도가 남았는데, 한 두달 내에 출고가 완료될 것"이라고 말했다.
▲"술 안 찾는다던데"…가격 착하면 찾는다
한때 고속 성장하던 국내 주류산업은 소비 침체 고착화와 건강을 우선시하는 절주 문화 확산으로 위기에 직면했다. 일각에선 주류산업의 구조적 침체가 현실화됐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 주류업계에 따르면 롯데칠성음료 주류 부문은 올해 1분기 영업이익 15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6% 증가했다. 거점 통합 및 인력 조정 등 강력한 고정비 절감 노력에 소주보다는 과실탄산주 브랜드인 '순하리진'의 성장이 주류 부진을 상쇄했다. 하이트진로 역시 올해 1분기 부진한 실적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매출은 소폭 감소하고, 영업이익은 9% 넘게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내수 주류시장 침체 등으로 맥주 판매량이 감소한 영향이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도 990원 소주의 선전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소비 침체에도 불구하고, 대표적인 서민 주류인 소주의 가격 인하가 기존 애주가의 추가 구입은 물론 다른 제품을 구매하던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경기 침체로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저가 소주에 소비자들이 몰리고 있다"며 "기존 애주가가 가성비를 찾아 저가 소주로 넘어오고, 또 이미 드시는 분들은 더 많이 구입하면서 시너지를 내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저가 소주 출시에 난색을 표하던 주류 공룡들이 '고유가 피해지원금' 지급에 맞춰 편의점 주류 할인전에 나선 것 역시 이런 점을 반영했다는 평가다.
앞서 국내 소주 시장의 80% 이상을 독점하고 있는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 이 거대 주류 공룡들은 현재 초저가 소주 출시를 검토한 적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단기적인 가격 경쟁보다는 소비자 만족과 제품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두겠다는 밝힌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가격 인하에 나서며 고객 몰이에 나서고 있다. 실제 CU는 오는 31일까지 생필품 등 2,500여 종 상품을 할인하는 가운데 참이슬 소주 20입 번들을 20% 이상 값을 내리기로 했다. 세븐일레븐 역시 5월 한 달간 맥주 23종은 최대 50%, 막걸리 12종과 소주 4종은 최대 38% 가격 인하에 나섰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현재 편의점에서 참이슬을 1,300원에 내놓는 등 990원 소주 맞불에 나섰다"며 "처음엔 990원 저가 소주를 우습게 봤다가 현재 대항하는 모습을 보면 나름 피해가 컸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