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사례는 처음"...지정 하루 앞두고 돌연 연기
서울 서초구 우면동 일대의 서리풀2지구는 지난 2024년 11월 국토교통부(국토부)의 공공주택 공급 계획에 따라 2,000 가구가 들어설 예정이었지만 그간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히며 차질을 빚고 있었다.

국토부가 9일 고시문까지 만들고 홈페이지에 게시하며 지구 지정 절차가 진행되는 듯했으나 연기되며 현재 공지는 내려간 상태다.
국토부는 “관계기관 협의를 충분히 마무리한 후 발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지만 발표 하루 전날 연기가 통보되는 이례적인 상황에 공공주택사업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관할 지자체 서초구청은 혼선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 LH 관계자는 "수십 년 일해오면서 이런 사례는 처음 봤다"고 말했다. 서초구청도 국토교통부가 8일 ‘지형도면 등재 보류’를 요청했다며 어떤 추가 검토 사항이 있어 연기하는 건지는 모르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LH 관계자는 “보통 고시가 연장될 경우 계획 수정을 LH와 함께 진행한다”며 이번에는 “전날 담당자에게 ‘상징성과 중요도를 고려해 조금 더 내실 있게 다듬자’고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구체적인 시기는 미정이지만, 재발표까지 오래 걸리진 않는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관계 부처와 추가 협의를 통해 면밀히 강구하자는 의견이 나온 것”이라며 “공급 대책을 발표하고 계속 이어지는 얘기들이 있어 잘 협의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 "보상 필요 없다. 살고 싶다"...빗발치는 주민 ‘반대'
실제로 서리풀 2지구는 문화유산 보존과 환경 보호 문제로 곳곳에서 마찰을 빚고 있다. 무엇보다 집성촌으로 지역에 오랜 기간 살아온 주민들의 반대가 거센 상황이다.

우면동 성당과 송동·식유촌 마을 주민 일동은 8일 국토부의 “강제 수용에 기반한 철거형 개발”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지난 8일 방문한 마을에는 곳곳에 공공주택지구 지정에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날 주민들은 그간 국토부에서 주민들과 사전 협의를 시도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6대째 송동마을에 살고 있는 이세희 송동마을 주민대책위원장은 “보상은 필요 없다. 여기서 살겠다는 것”이라며 “주민들의 의견을 들으러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다 서류상으로만 확인했다. 지구 지정을 먼저 계획해 놓고 주민과 상의한다는 건 요식행위”라고 지적했다.
부위원장을 맡은 성해영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 “국토교통부의 대응 방식에 따라서 행정감사부터 헌법소송까지, 마을을 지키기 위해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의회도 주민들의 뜻에 동조하며 두 차례 사업 지정 철회 요청에 관한 청원을 의결했다.
○ 단종 장인 묘 추정지…국가유산청 "공사 전 조사 필요"

서리풀2지구에는 단종의 장인 여산 송씨의 묘역 추정지가 포함돼 있다. 서리풀2지구 주민들은 지난 8일 입장문을 통해 “묘역이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되기를 간절히 호소한다”며 “개발 전 시굴 조사와 보존 대책 마련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2일 주민 민원에 회신해 2023년 4월 서리풀2지구 일부가 ‘매장 유산 유존지역’으로 지정됐다고 밝혔다. 국가유산청 ‘발굴조사의 방법 및 절차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건설공사의 유형과 유산의 분류에 따라 매장 유산을 훼손할 우려가 큰 경우에는 발굴이 허가될 수 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9일 “서리풀2지구에 건축 행위를 하기 위해선 협의 후 시굴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면서도 “현재로서는 시굴을 해라 말아라 의견을 줄 수 없다”고 밝혔다.
환경 보존에 대한 우려도 있다. 서리풀 2지구에는 현재 맹꽁이, 참매, 솔부엉이를 비롯한 법정보호종 총 7종이 살고 있는 것으로 국토부 조사 결과 확인됐다.
국토부가 지난 1월 주민들의 민원에 회신한 내용에 따르면 서리풀2지구 내 개발제한구역 환경평가등급상 보존이 필요한 1~2등급지는 전체 면적의 19%로 확인됐다.
이에 국토부는 해당 회신에서 “1~2등급지에 해당하는 지구 중앙부 산지는 향후 지구계획 수립 시 최대한 공원녹지로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업을 둘러싼 곳곳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으며 당초 계획대로 공공주택지구 지정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