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초고가 아파트 시장이 대출 규제와 세금 부담 등 영향으로 가격 하방 압력을 받고 있다. 특히 정부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10·15 대책'에서 초고가 주택 기준을 25억원으로 설정하면서, 이 가격선을 중심으로 시세가 재편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10·15대책에 따라 25억원 초과 주택은 주택담보대출이 2억원 밖에 나오지 않지만, 15억원 초과~25억원 이하 주택은 4억원, 15억원 이하 주택은 최대 6억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이 같은 구조로 인해 상대적으로 자금 조달이 유리한 15억원 이하 아파트에 매수 수요가 집중되는 양상이다.
가격 조정 움직임도 확산하고 있다. 22일 부동산 분석업체 집토스에 따르면 10·15 대책 이전 25억∼28억원에 팔린 서울 아파트 175개 단지 가운데 25곳(14.3%)은 대책 이후 가격이 하락했으며, 25억원 이하로 하락한 단지는 11곳(6.3%)으로 집계됐다.
집토스 이재윤 대표는 "매수자가 대출을 2억원 더 받기 위해 25억원 이하의 아파트를 찾다 보니, 시세가 대출 규제 커트라인에 맞게 형성되는 추세"라면서도 "초고가 아파트의 전면적 하향 키 맞추기는 아직 제한적으로, 현재는 급매물 발생에 따른 상승 둔화 단계"라고 진단했다.
정부는 지난달 12일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유예 조치를 예정대로 오는 5월 9일부로 종료하고, 이날까지 계약을 완료한 경우 잔금 지급 및 등기 유예 기간을 두는 등의 보완책을 발표했다.
여기에다 올해 서울의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5년 만에 최고 상승률(18.67%)을 기록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서울 상급지를 중심으로 매물이 쏟아지는 양상이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전날 기준 서울의 아파트 매물은 8만80건으로, 지난 1월 23일 이 대통령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언급 이후 약 두 달 동안 42.4% 늘며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이 기간 구별로 성동구(93.8%), 강동구(76.5%), 동작구(69.6%), 송파구(69.2%), 마포구(60.4%), 광진구(59.2%), 서초구(52.2%) 등의 순으로 매물이 많이 늘었다.
성동구의 아파트 매물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나는 등 '한강벨트'(한강을 낀 지역)라고 불리는 지역의 매물 출회가 두드러졌다. 반면 같은 기간 강북구(12.4%), 금천구(12.5%), 중랑구(13.7%), 도봉구(17.8%), 구로구(17.9%) 등의 아파트 매물은 증가율이 10%대에 그쳐 전체 평균치(42.4%)에 훨씬 못 미쳤다.
대출 규제로 자금 조달 여력이 제한된 상황에서 서울 외곽 중저가 아파트 매물은 빠르게 소화됐거나 상대적으로 덜 나온 셈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등록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전날 기준으로 이달 서울 아파트 매매 1천342건 가운데 1천156건(86.1%)이 15억원 이하로 집계됐다.
이달이 아직 열흘 가까이 남았고, 아파트 매매 계약의 등록 신고 기한(30일)도 끝나지 않았으나 현재까지 등록된 서울 아파트 매매 계약 10건 가운데 9건이 15억원 이하인 셈이다.
서울에서 15억원 이하의 아파트 매매 비중은 지난 1월 78.0%에서 2월 81.4%로 올랐고, 이달 들어 상승 폭이 더욱 확대하고 있다. 특히 이달 서울 아파트 15억원 이하의 매수 비중은 한강 이북 14개 구가 94.3%로, 한강 이남 11개 구(75.6%) 대비 20%포인트 가깝게 높았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아파트가 많은 한강 이북의 15억원 이하 아파트에 매수 수요가 쏠린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 외곽 아파트 매매 가격이 15억원으로 수렴하는 이른바 '키 맞추기'와 '격차(갭) 메우기'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서울 성북구 길음동 길음뉴타운5단지(래미안) 전용 114.93㎡는 지난 3일 14억5천만원(14층)에 팔렸다. 이 면적이 14억원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지난 1월 24일 계약된 매매액 13억5천만원(19층) 대비 1억원 오른 금액이다.
전문가들은 대출 한도와 보유세 부담을 고려할 때 15억원 이하 구간 중심의 수요 집중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다만 최근 가격 상승이 컸던 지역의 경우 매물 증가에도 호가가 쉽게 떨어지지 않으면서 거래가 관망세로 전환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