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 전쟁 여파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운송이 차질을 빚으면서 플라스틱 원료인 납사(naphtha·나프타)의 품귀 사태가 벌어져 아시아 석유화학 업계의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5일 지난달 28일 전쟁 개시 전에도 한국과 일본의 석유화학업체들이 중국 경쟁업체들의 만성적 설비 과잉 탓에 시설 가동을 줄이고 있었으며, 이번에 납사 품귀까지 겹쳐 더욱 힘든 상황이 됐다고 보도했다.
FT가 인용한 유류 관련 정보업체 '스파르타 커모디티스'의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은 납사 사용량의 약 3분의 2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수입 납사 중 페르시아만에서 오는 물량의 비중이 한국은 60%, 일본은 70%에 달한다.
납사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얻어지는 탄화수소 혼합물로 플라스틱 등 석유화학 제품의 핵심 원료다. S&P 글로벌 에너지에 따르면 전쟁 이후 납사 가격은 약 한 달 사이 50% 가까이 상승해 톤당 875달러 수준까지 올랐다.
이란의 보복 공격 이후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사실상 막히면서 공급 자체도 불안정해졌다.
원료 수급이 흔들리자 아시아 석유화학 업체들은 생산량 조정에 들어갔다.
한국의 주요 에틸렌 생산업체인 여천NCC는 지난주 "불가항력"(force majeure) 상황을 선언하고 공장 가동을 최소 수준으로 낮췄다. 롯데케미칼과 LG화학도 계약 이행이 어려워질 가능성을 고객사에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기업들은 아직 불가항력 선언은 하지 않았지만 가동률을 기존 80~90% 수준에서 약 60%까지 낮추고 있다.
일본에서는 미쓰비시(三菱)케미칼과 미쓰이(三井)화학이 생산량을 줄였으며, 이데미츠코산(出光興産)은 공급 부족이 지속될 경우 시설 두 곳의 가동을 중단할 수 있다고 고객들에게 경고했다.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에틸렌과 프로필렌, 부탄 등 주요 석유화학 제품의 생산 차질이 확대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석유화학 산업이 국가 공급망과 안보 측면에서도 중요한 만큼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며, 규제 완화나 보조금 등 정책적 지원을 통해 국내 산업 기반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