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 전쟁과 유가 급등 여파가 커지면서 정부가 민생 안정 대책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치권과 시장에서는 추경 규모가 10조원에서 20조원 수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5일 관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첫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고유가 충격을 완화하고 서민과 취약계층 지원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신속한 대응을 주문하면서 기획예산처와 관계 부처는 주말까지 반납하며 예산 편성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대통령이 지난 12일 "최대한 신속하게 편성해달라"고 지시하자 기획예산처는 다음 날 관계 부처 회의를 열고 추경 편성에 공식 착수했다. 예산요구서를 취합한 뒤 부처 협의를 거쳐 추경안을 마련하고 국무회의 심의를 받을 계획이다.
이번 추경 추진의 직접적인 배경으로는 중동 전쟁에 따른 유가 급등이 꼽힌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서 국제 유가가 크게 오르고 원/달러 환율까지 급등하자 경기 대응 차원의 추경 필요성이 커졌다는 판단이다.
예산 당국은 이런 상황이 국가재정법상 추경 편성 사유인 '대내외 여건의 중대한 변화'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우선 유가 상승 충격을 줄이고 서민과 소상공인, 농어민 등 민생 안정에 초점을 맞춰 예산을 편성할 계획이다.
또 석유 최고가격제를 지원하기 위해 손실 보전 재원을 추경에 반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최고가격제는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할 수 있는 가격 상한을 정하고 정부 재정으로 손실을 보전하는 방식이다.
자영업자와 농민 등 에너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에너지 바우처를 지급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유가 상승의 영향을 크게 받는 유통·물류 업계 지원과 함께 국제 정세 변화에 취약한 수출기업 지원책도 검토 대상이다.
경기 위축 시 타격이 큰 소상공인과 비수도권 지역을 고려한 정책도 마련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앞서 "직접지원을 하는 것이 좋고, 또 그중에서도 현금보다는 지역화폐 형태로 지급하면 지역 상권 매출로 전환되며 이중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추경 재원은 추가 국채 발행 없이 초과 세수를 활용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지난해 반도체 업황 호조로 세수가 예상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소속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적정 추경 규모로 15조~20조원을 언급했다. 그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 합계가 약 9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점을 들며 법인세와 증권거래세 증가에 따른 세수 확대 가능성을 언급했다.
KB증권도 최근 보고서에서 추경 규모를 10조~20조원으로 전망했다. 보고서는 두 기업의 높은 영업이익으로 법인세가 약 5조3,000억원 더 걷힐 수 있고 법인세와 증권거래세 증가를 고려하면 최소 10조원 이상의 초과 세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정부는 아직 추경 규모가 정해진 것은 아니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은 KBS 1TV '사사건건'에 출연해 "추경의 재정적 규모가 10조원, 20조원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데 그건 앞서 나간 것"이라며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고, 추경 소요를 재정 당국이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각 부처 사업을 검토한 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추경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당국자들은 최근 주말에도 예산 편성 회의를 진행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
임기근 기획예산처 장관 직무대행 차관은 추경안 제출 시점에 관해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며 "지금은 휴일을 반납하고 주말에라도 사업을 발굴해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낸다는 말씀밖에 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