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여파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연료 수급 불안이 커지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사재기가 확산되고, 주유 과정에서 살인 사건까지 발생하는 등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9일(현지시간) AFP·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정부는 연료 사재기를 막기 위해 구매 제한 조치를 도입했다. 국영 방글라데시석유공사(BPC)는 전날부터 대부분의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대상으로 연료 구매 상한제를 시행했다.
이에 따라 오토바이 운전자는 한 번에 최대 2L(리터)까지만 연료를 구매할 수 있다.
인구 1억7,000만명 규모의 방글라데시는 석유와 가스 수요의 약 9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규제에도 불구하고 사재기 움직임은 이어지고 있다. 수도 다카의 주유소에는 연료를 확보하려는 차량과 오토바이가 몰리면서 긴 줄이 이어졌다.
연료 부족으로 인한 갈등은 폭력 사건으로도 이어졌다. 지난 7일 저녁 방글라데시 남서부 쿨나주 제나이다 지역에서는 20대 남성이 주유소 직원과 언쟁을 벌이다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연료 공급난 여파로 산업 현장도 영향을 받고 있다. 방글라데시에 있는 6개 비료 공장 가운데 5곳은 이달 18일까지 가동을 중단한 상태라고 업계 관계자가 AFP에 전했다.
최근 사태의 배경에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있다.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이란은 전 세계 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했다.
이에 중동 원유 의존도가 높은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는 최근 연료 수급난을 우려해 사재기 현상이 벌어졌다.
베트남에서는 가장 많이 판매되는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1.03달러(약 1,537원)로 최근 21% 상승하자 긴급 안정 대책을 마련했다.
베트남 재무부는 성명을 통해 국내 시장 안정과 에너지 안보를 위해 일부 수입 석유 제품에 최대 20%까지 부과하던 관세를 0%로 낮추는 법령 초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해당 조치는 다음 달 말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캄보디아에서도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1.09달러(약 1,624원)까지 오르자 연료 사재기 현상이 나타났다. 정부는 과도한 연료 저장이 화재 위험을 높일 수 있다며 자제를 당부했다.
파키스탄 정부 역시 연료 공급 차질 가능성에 대비해 석유 비축량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불법으로 연료를 저장하거나 공급을 조작하는 행위는 엄중히 처벌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와 함께 블룸버그 통신은 석유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그중 상당량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여오는 인도 역시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미국 재무부는 인도 기업들이 30일 동안 한시적으로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노무라 홀딩스의 이코노미스트 소날 바르마는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구매 가격은 웃돈이 붙었기 때문에 (할인된 2월 가격보다) 저렴하지 않다"며 "공급 부족 상황을 고려하면 지금은 구매 가격보다 원유 확보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