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계엄, 탄핵, 정권 교체가 숨 가쁘게 이어지는 과정에서 출범한 이재명 정부를 한 마디로 평가한다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같은 반도체 종목이 주도했던 코스피 싱승률로 대변된다. 작년 6월 이후 코스피 지수 상승률은 글로벌 증시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 경제와 증시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코스피 지수가 급등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보다 현 정부의 친 증시 정책이 코스피 지수 상승의 기폭제가 된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작년 들어 내부적으로 극도의 정치적 혼란과 대외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과 맞물리면서 1분기 성장률이 -0.2%로 역성장하고 코스피 상승률은 최하위로 추락했다. 하지만 현 정부 출범 이후 코스피 지수 목표 5000을 제시하고 곧바로 실행에 들어간 지 불과 6개월 남짓 만에 2배나 급등했다.
모든 정책은 수명이 있다.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에 초점을 맞춘 1차 친증시 정책이 수명을 다할 무렵에 대외외상을 높혀 코스피 주가를 추가적으로 끌어올리는 2차 친증시 정책이 발표됐다. 현 정부의 계획대로 올해 6월에 모건스탠리인터내셔널((MSCI) 지수 선진국 예비 명단에, 내년 6월 선진국에 편입되면 외국인 자금은 60조원 정도 유입될 것으로 기대된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관세 충격이 예상만큼 크지 않았던 점도 코스피 지수가 상승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세계 경제 대공황을 몰고 오지 않겠느냐는 우려까지 나왔지만 트럼프 관세 부과 이후 지금까지 세계 무역 증가율은 5.8%, 세계 경제 성장률은 3% 내외로 부과 전에 비해 낮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수입 물가 상승 등으로 부메랑 효과가 미국에 집중되는 점을 고려하면 조만간 흐지부지, 즉 타코(TACO)가 될 확률도 높다.
미국 경제와 증시가 예상외로 좋았던 점도 한국 증시에 훈풍으로 작용했다. 미국 경제 성장률은 작년 1분기에는 ?0.6%까지 떨어지다가 3분기에는 4.3%까지 뛰어올랐다. 미국 증시도 국내 증시에 영향이 큰 AI와 관련 반도체 종목을 중심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해 나갔다. 올해 들어서도 재정과 통화정책 영면에서 경기와 증시 부양을 위해 완화 기조를 유지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에서는 코스피 지수가 급등하는 것이 친증시 정책일 뿐 펀더멘털이 받쳐주지 못해 3500선 밑으로 급락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우리 경제 펀더멘털은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까지 인정할 만큼 건전하다. 소비자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은 미국보다 낮고 성장률은 작년 3분기의 경우 통계방식을 같게 조정하면 우리는 5.2%로 미국의 4.3%보다 높다. 작년 경상수지흑자도 1300억 달러를 넘어섰다.
경제 외적으로는 자칫 위기에 빠질 상황을 극복한 브레이크 아웃도 코스피 지수가 상승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작년 상반기 계엄, 탄핵, 정권 교체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현 정부 들어 정리되고 있다. 콘트롤 타워 부재로 늦어졌던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도 일본과 비교해서는 우리의 입장이 고려돼 국익이 보다 많이 확보되는 차원에서 마무리됐다.
산업별로는 반도체 경기가 좋았던 점이 코스피 지수를 끌어올린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작년 초부터 공급 면에서 삼성전자가 추진한 감산 대책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때와 맞물려 인공지능(AI)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수요가 급증했다. 현재 반도체 경기는 공급자가 주도하는 시장(seller’s market)인 점을 고려하면 작년 이후 슈퍼 싸이클 국면이 2027년 이후까지 연장되는 빅 싸이클 국면으로 전환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최근에 거론되는 빅 싸이클론의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반도체 빙히기 우려까지 나왔던 2년 전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이윤 감소’라는 공동 현안에 대해 테슬라와 삼성전자가 대응하는 방법은 정반대였다. 테슬라는 여섯 차례에 걸쳐 가격 할인 대책을 추진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대규모 감산 계획을 발표하고 곧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이론적으로 기업이 이윤 감소를 극복하는 대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초기부터 매출과 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가격(Price) 할인’이다. 다른 하나는 초기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수급 여건이 개선되면서 매출과 점유율이 회복되고 어느 순간에 이윤이 대폭 증가하는 수량(quantity) 축소, 즉 ‘감산’이다.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의 대전제는 ‘시장경제와 균형이론이 얼마나 잘 작동되는가’ 여부다. 양대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못할 때 테슬라처럼 가격 할인 대책을 추진하면 시장의 실패(market’s failure)를 불러와 이윤이 더 감소하는 자충수가 될 확률이 높다. 이때는 삼성전자처럼 감산을 추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기업 간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시장경제가 잘 작동하지 않음에 따라 불균형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관련 반도체가 주도해 나갈 앞으로는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여건에서는 특정 사건을 계기로 균형점에서 이탈했을 때는 시장 조절 기능에 의해 다시 수렴한다는 균형이론이 들어맞지 않는다.
오히려 1980년대 초에 태동된 배로 그로스만의 불균형 이론에서는 시장 조절 기능이 작동하는 데는 시간이 걸려 불균형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시장에만 맡겨 놓으면 재원 배분상 실패를 초래하고 참가자 모두 피해를 본다고 봤다. 이때는 국가가 개입하거나 선도기업이 나서서 수량을 조절해야 균형점을 되찾을 수 있다고 봤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한층 논의 중인 국가 자본주의도 이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기업의 위상도 중요하다. 테슬라 같은 선도기업이 가격 할인을 추진하면 경쟁 여건이 빠르게 ‘블루오션’에서 ‘레드오션’으로 변하면서 초기에 확보한 기득권마저 상실하게 된다. 하지만 감산은 삼성전자처럼 선도기업이 추진해야 수급 여건이 개선될 수 있고 가격이 오르면 해당 기업뿐만 아니라 모든 기업이 혜택을 보게 된다.
게임이론을 적용하면 더 명확해진다. 이 이론은 참가자별 이해득실에 따라 판가름 나는 ‘노이먼-내시식 이기적 게임’과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샤프리-로스식 공생적 게임’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소비자보다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업이 즐겨 써온 게임 방식이다. 후자는 시장 참여자들이 코로나 사태와 같은 전혀 예상치 못한 꼬리 위험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모두가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해결해 낼 수 있는 양식(architecture)을 제공해 준다.
테슬라의 가격 할인은 다른 기업의 점유율을 빼앗아 어렵게 하는 근린 궁핍적인 이기적 게임이다. 게임 결과도 시장 전체 규모를 늘리지 못하고 시장 질서만 흐트러뜨리는 제로섬 게임이다. 삼성전자의 감산은 어려운 때일수록 자신의 희생을 바탕으로 참가자 모두에 혜택이 돌아가는 공생적 게임이다.
기업 이윤은 매출에서 각종 비용을 빼서 산출한다. 초불확실한 시대에는 기업 이윤에 대한 확신이 떨어지면 시장에서의 신뢰는 기하급수적으로 추락한다. 소셜미디어 발달로 서로가 촘촘히 연결된 사회에서는 부정적 뉴스가 긍정적인 뉴스보다 전파 속도가 여섯 배 이상 빠른 네트워킹 효과와 심리적인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가격 할인을 통한 포지티브 경영은 매출이 증가할수록 불확실한 위험에 더 노출돼 기업 이윤에 대한 믿음이 떨어지게 하고 경영계획만을 수정하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반면 감산을 통해 비용을 감축하는 네거티브 경영은 매츨 증대애 따른 불확실성을 줄이면서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는 비용을 줄이면 기업 이윤에 대한 믿음이 늘어나게 된다.
네거티브 경영은 최근처럼 공급망 차질이 발생하는 여건에서 더 빛을 발한다. 산업 자체의 특성과 관계없이 매출과 점유율이 늘수록 비용이 증가해 생산성이 떨어지는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테슬라처럼 가격 할인을 추진하는 기업은 매출이 늘어나더라도 이윤이 감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두 기업의 운명도 엇갈려 왔다. 가격할인 대책 추진 이후 테슬라 실적과 주가는 정체돼 왔다. 하지만 감산 대책 이후 한때 위기론이 나왔던 삼성전자 실적은 작년 1분기 이후 크게 개선되면서 3배 이상 올랐다. 다 큰 혜택을 보고 있는 SK 하이익스 뿐만 아니라 반도체 관련 기업의 주가는 삼성전자보다 더 크게 상승하고 있다.

반도체 빅 씨이클론이 살아있는 한 한국 경제는 밝다. 증시도 코스피 지수 목표치 5000에 도달하자 다음 목표치를 1만 선으로 올리자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경기 회복과 주가 상승레를 남은 코스피 상장기업, 코스닥 상장기업 그리고 비상장 기업에까지 확장될 수 있도록 하는 산업과 증시 정책이 더 중요하다. 이 여부에 따라 한국 경제와 증시의 모습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