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이 뉴 앱노멀 시대에 들어섰다. 특히 경제 분야가 심하다. 이 때문에 아담 스미스식 자유방임 고전주의 ‘경제학 1.0’ 시대, 존 메이너드 케인스언식 혼합주의 ‘경제학 2.0’ 시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식 신자유주의 ‘경제학 3.0’ 시대에 이어 ‘경제학 4.0’ 시대로 구분하는 시각도 있다.
가장 눈에 띠는 움직임은 국가를 전제로 했던 종전의 세계 경제 질서가 흔들리는 현상이다. 세계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한 세계무역기구(WTO), 파리 기후변화협정 등과 같은 다자주의 채널이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주도의 다자 협상은 한 건도 열리지 않았다. 그 대신 트럼프 라운드가 출범했다.
국가 간의 지역 블록 움직임도 붕괴 조짐이 일고 있다. 브렉시트(Brexit=Britain+exit)에 이어 그렉시트(Grexit=Greece+exit), 포렉시트(Porexit=Portugal+exit) 등 제2의 브렉시트 논의가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도 무력화됐다. 중남미공동시장(MERCOSUR)도 반트럼프 성향의 브라질 룰라 대통령의 주도로 좌초될 위기에 놓여 있다.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양자 협력도 스파게티 볼 효과(spaghetti bowl effect)가 우려될 정도로 복잡해 교역 증진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스파게티 볼 효과란 삶은 국수를 그릇에 넣을 때 서로 얽히고설키는 현상을 말한다. A국이 B국, C국과 맺은 원산지 규정이 서로 달라 협정 체결국별로 달리 준비해야 할 해당국 수출업체에 불편을 초래하는 경우다.
국제통화질서는 미국 이외 국가의 탈(脫)달러화 조짐이 주목된다. 세계 경제 중심권이 이동됨에 따라 현 국제통화제도가 안고 있었던 문제, 즉 △중심 통화의 유동성과 신뢰성 간 트리핀 딜레마(Triffin's dilemma) △기축 통화국의 과도한 특권 △국제 불균형 조정 메커니즘 부재 △과다 외화 보유 부담 등이 심해지면서 탈달러화 조짐이 빨라지는 추세다.
2차 대전 이후 지속돼 왔던 다자주의 체제가 약화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강한 미국’과 ‘절대 군주 야망’도 MAGA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해야 진정한 의미가 있다. EU 방식을 수용한다면 MAGA의 확대 단계를 세계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하고 심화 단계를 세계화폐통합(WMU), 세계정치통합(WPU), 세계사회통합(WSU) 순으로 추진하면 ‘세계통합국(United States of World)’ 달성이 가능하다.
최근처럼 글로벌화와 디지털화가 진전될수록 지역통합보다 오히려 세계 통합이 쉬울 수 있다. 세계가 하나의 운동장이 된 초연결 시대에 유럽통합 과정상 확대 단계와 심화 단계 중 최대 장애가 됐던 정치통합은 의미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WMU와 WSU만 추진하면 세계를 대상으로 한 MAGA도 달성할 수 있다는 의미다.
WMU를 실현하기 위한 세계중앙은행 구상도 마련돼 있다. 1913년에 창설된 미국 중앙은행(Fed)이 세계중앙은행의 역할을 하기에는 어렵다는 것이 ‘프로젝트 2025’에 담긴 Fed의 개편안이다. 감세와 뉴딜 정책으로 대변되는 ‘트럼프노믹스 2.0’을 추진하는 데도 Fed가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오히려 집권 1기 일본은행을 대상으로 추진했던 것처럼 미국 국채를 강제로 매각시켜 각국 중앙은행을 연계(혹은 예속)시키는 것이 트럼프노믹스 2.0을 추진하고 WMU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신세계중앙은행 구상안이다. WSU도 X, xAI, 스페이스 X를 활용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J.D. 밴슨 부통령이 추천한 페이팔 마피아의 판단이다.
틀(frame)에 해당하는 국제규범과 이를 토대로 한 세계 경제 질서가 흐트러지면 경제주체(시장 포함)는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그 대신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정치적인 포퓰리스트가 판치면서 이기주의와 국수주의가 기승을 부린다. 세계화 쇠퇴를 의미하는 탈글로벌라이제이션(de-globalization)이란 신조어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라운드 시대에 탈글로벌라이제이션으로 대변되는 경제학 4.0 시대에 있어서 한국처럼 대외환경에 의존하는 국가일수록 불리하다. 대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다. 갈라파고스 함정(Galapagos trap)에 빠져 경제학 4.0 시대에 나타나는 변화를 읽지 못한다면 선진국 문턱에서 추락해 선진국 함정(HIT?high income trap)에 빠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트럼프 정부의 경제정책인 ‘트럼프노믹스’의 최종 목표는 마가(MAGA)다. 금융위기 이후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민주당 집권 시절에 손상됐다고 본 국제 위상과 주도권 상실에 따른 반작용에서 나온 경제정책이다. 한 마디로 글로벌 이익과 미국 국익 간 충돌될 때는 후자를 중시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미국의 국익을 증대하려면 2차 대전 이후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과 세계무역기구(WTO)를 기반으로 하는 자유 무역 질서로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은 자유 무역 질서가 미국의 이익을 희생시켰다고 보고 있다. 희생당한 미국의 국익을 회복하고 증대시키려면 트럼프 라운드를 전개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취임 이후 주요 교역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태동하기 시작한 트럼프 라운드의 실체를 보면 다자주의와는 확실히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이 눈에 들어온다. 종전의 ‘상향식(down up)’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확실하게 반영할 수 있는 ‘하향식(top down)’을 취하고 있는 점이다. 협상 기간을 단축하면서 미국의 국익을 최대한 반영시킬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철저하게 ‘통합 거래(package deal)’로 임하고 있다. 국방, 상품 수입시장 및 투자 후보지로서 미국처럼 협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레버리지 카드가 있을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무역적자, 재정적자, 국가 채무, 경기 부양, 인플레이션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트럼프 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방식이기도 하다.
협상 파트너와 관련해 상대방이 먼저 최선의 대안을 내놓도록 하는 ‘A-게임’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도 눈에 들어온다. EU,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상대방이 제시하는 협상안에 대해 미국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고 있다. 선부과·후협상 원칙을 취하고 있는 트럼프 관세정책에서 후자에 기대를 거는 시각이 있으나 전자가 최선임을 암시하는 자세다.
미국 예일대 연구소에 따르면 트럼프 라운드가 본격 출범하기도 전에 지금까지 부과된 것만으로도 평균 실효 관세율이 18.4%에 달한다. 1930년대 대공황을 초래한 스무트-홀리법 적용 이후 최고 수준이다. 2025년에 기반을 마련한 트럼프 정부는 2026년에는 네 가지 점에 중점을 두면서 트럼프 라운드를 구체화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미국에 직접적인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으면서 부담만 지는 국제규범과 협상에 대한 우선순위가 뒷전으로 밀려날 것이라는 점이다. 파리 기후협정 재탈퇴, UN 탈퇴 시사, 30년 만에 세계무역기구(WTO) 종식 선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올해는 어디까지 확대될 것인가가 관심사다.
둘째, 국가별로는 무역적자 확대 여부에 따라 이원적 전략(two track)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더 뚜렷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무역적자를 대미국 흑자국에 성장과 고용을 빼앗기는 것으로 인식해 왔다. 이 때문에 무역적자 확대 국가에 통상압력을 가해 시정하고, 다른 국가와는 공존을 모색하는 ‘차별적 보호주의’ 정책을 추진해 왔다.
특히 중국, 한국,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가 문제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전부터 미국과 중국 간 마찰이 심상치 않다. 무역, 통상, 환율 등 경제 분야 뿐만 아니라 남중국해 등 경제외적인 분야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정도 차가 있지만 다른 동아시아 국가에게도 마찬가지다.
셋째, 목적 도달하기 이해서는 모든 통상수단을 동원하는 것도 종전과 다른 점이다. WTO 규범이나 자국법을 의식했던 집권 1기와 달리 트럼프 행정명령에 전적으로 의존해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무역적자 규모, 비관세 장벽, 관세 협상 협조 여부 등에 따라 국가별로 관세율을 차별적으로 가져가는 것도 구별된다.
넷째, 통상정책을 다른 목적과 결부시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통상을 안보와 연계시킨다든가, 대중국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에 집중적으로 통상압력을 가하고 있다. 한국 등 해당 국가가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에 쉽게 대처하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이 ‘뉴노멀’ 시대에 접어들었다. 규범과 이론이 통하는 ‘노멀’ 시대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트럼프 집권 2기 이후에는 미래 예측까지 어려운 ‘뉴앱노멀’ 시대가 닥치고 있다. 수시로 발동되는 행정명령 때문이다. 취임 2년 차에도 행정명령이 얼마나 발동되느냐에 따라 트럼프 라운드의 진전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