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감독원이 해외 부동산펀드의 설계·제조 단계에서 드러난 내부통제 허점을 정조준하며 업계에 대대적인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서재완 금감원 부원장보는 최근 간담회에서 "투자자의 눈높이가 높아지고 시장 환경이 급격히 바뀐 만큼, 업계 스스로 전 과정에 대한 철저한 재점검이 선행돼야 한다”고 4일 강조했다 . 그는 실태점검 과정에서 다수의 운영상 미비점이 확인됐다며, “수탁자책임(Fiduciary Duty)을 형식적으로만 이행하는 행태는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하게 경고했다. 금투협이 2020년 제정하고 올해 3월 개정한 ‘대체투자펀드 리스크관리 모범규준’이 최소한의 기준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시늉’에 그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대상 발굴, 실사, 투자심사 등 펀드 제조·설계 단계의 핵심 절차가 실제 운영에서는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지 부동산 자산에 문제가 발생할 때 대응역량을 갖춘 관리업체를 선정하기 위한 적격성 기준조차 불충분했고, 실사보고서는 투자자산의 개별 위험 요소 분석 없이 시장 개황 소개 수준에 머문 경우가 많았다. 심사 과정에서도 주요 계약 조건 비교 검토가 생략되거나, 임대율·이자율·환율 등 주요 변수의 변동 폭을 임의로 좁게 설정하는 등 낙관적 평가에 기댄 ‘형식적 시나리오 분석’이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모범규준 시행 이후 위험관리부서의 독립적 의견 제시 보장, 거래 관련자 평가기준 마련, CRO의 재의 요구권 부여 등 형식적 반영은 이뤄졌으나, 투자자 특성에 맞춘 상품 구조 설계나 위험 정보 제공 수준은 여전히 낮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 부원장보는 “대표이사가 핵심 정보를 직접 제공하는 방식으로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며 금감원이 마련한 개선방안을 업계에 설명했다. 업계 참석자들도 내부통제와 정보 제공 강화 필요성에 공감하고 제도 안착을 위한 논의를 이어갔다.
금감원은 첫째, 자산운용사가 실사·심사 내역과 내부통제 부서의 평가 의견을 포함한 ‘가칭 실사점검 보고서’를 펀드 신고서에 의무적으로 첨부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는 대표이사 또는 준법감시인·위험관리책임자가 직접 서명하는 방식으로 자체 검증 체계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둘째, 일반 투자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외 부동산펀드의 전형적 투자위험을 한데 모은 ‘핵심 투자위험 표준안’을 마련해 예비투자설명서에 명시하도록 한다. 차입 구조, 임대 공실, Cash Trap, EoD 강제 매각 등 위험 발생 경로도 구체적으로 설명하도록 규정할 예정이다.
셋째, 시나리오 분석 결과를 의무적으로 기재하게 해 투자결정 시 감수해야 할 최대 손실을 수치와 그래프로 제시하도록 한다. 부동산 가치 하락 구간별로 펀드 손익을 시각화하는 등 ELS 방식과 유사한 정량적 위험 제시가 요구된다. 금감원은 넷째로 해외 부동산펀드에 ‘집중심사제’를 가동해 복수 심사담당자 지정 및 신고서 수리 전결권 상향 등 심사 강도를 높일 방침이다.
금감원은 업계 의견을 추가적으로 수렴한 뒤 세부 개선방안을 확정하고 조속히 시행할 계획이다. 개선안은 신규 해외 부동산펀드 출시 과정에서 엄격히 적용되며, 앞으로 운용사와 판매사 간 역할 정의·책임 범위 설정을 위한 추가 기준도 마련해 관련 업계와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