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세계 파생상품 시장의 기준점이 되어온 시카고상품거래소(CME) 그룹의 거래소 플랫폼이 추수감사절 연휴 중 예기치 못한 블랙아웃 사태를 겪었다. 일리노이주 오로라에 위치한 CME그룹의 데이터센터가 냉각 시스템 고장으로 멈춰서면서 전 세계 주식, 채권, 원자재 가격 산출이 11시간 가까이 마비됐다.
CME 그룹(티커 CME)은 이번 사고에도 매출 대비 미미한 수수료 손실 발생 등으로 이날 정규 거래에서 소폭 상승한 채 거래를 마쳤다. 이번 사태는 전 세계 파생거래의 구조적 취약점을 드러낸 동시에, CME그룹의 독점적 지위를 부각시키고 있다.
◆ 금리, 파생 거래 독점…오로라 데이터센터에 의존한 취약성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현지시간 27일 밤 8시 40분(미 중부시간, 한국 28일 오전 11시 40분)발생한 이번 사고는 CME그룹의 사이러스원(CyrusOne) 데이터센터가 멈춰서면서 발생했다. 이로 인해 약 반나절 가까이 CME의 전자거래 플랫폼인 글로벡스(Globex)에서 산출하는 지수, 선물·옵션 계약 거래가 중단됐다. S&P500, 나스닥 100 선물은 물론 미 국채 선물, 원유, 금 등 주요 자산과 환율 표출도 멈췄다.
CME 그룹은 시카고상품거래소(CBOT), 시카고상업거래소(CME), 뉴욕상업거래소(NYMEX) 등 4개 주요 거래소를 산하에 둔 세계 최대 파생상품 거래소다. 이번 사고가 발생한 오로라 데이터센터는 CME 전체 거래량의 90% 이상을 처리하는 핵심 시설이다.
거래 기준이 사라지면서 월가는 일부 지표를 제외하거나 수작업으로 계산하는 등 11월 마지막 거래일 대혼란을 겪었다. 브라데스코BBI의 벤 레이들러 주식 전략책임은 “이번 사태는 CME에게 있어 오명이 될 것”이라며 “시장 구조의 중요성과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상호 연결되어 있는지를 뒤늦게 상기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이러스원측은 사고 직후 “CHI1 시설에서 냉각 플랜트 고장이 발생해 다수의 냉각 장치에 영향을 주었다”며 사고 경위를 공개했다. CME와 사이러스원측은 일부 냉각기를 제한적으로 추가 배치하는 등 임시조치로 28일 정규거래가 시작하는 오전 9시 30분 가까스로 데이터센터 가동에 성공했다.
미 거래소는 경쟁사인 인터콘티넨털 익스체인지(ICE) 등이 존재하지만, CME가 보유한 미 국채 선물과 금리, S&P 500 E-mini 등 핵심 벤치마크 상품의 유동성은 다른 거래소가 대체하기 어려운 규모다.

◆ 불확실성 먹고 자라는 수익 구조…‘금리·데이터’ 쌍끌이
CME 그룹의 펀더멘털은 이번 사고 이전까지 주식, 금리 헤지 수요 등으로 견고한 흐름을 이어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지정학 갈등과 미 연방준비제도(Fed)에 대한 압력, 이민 정책 등 여러 금융 시장 바깥의 변수들이 증가하면서 CME 그룹의 금리, 채권 파생 거래가 활황을 이뤘기 때문이다.
지난 3분기 실적을 살펴보면, 거래량(ADV)이 전 분기 대비 16% 감소하는 계절적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계약당 평균 수수료는 오히려 0.702달러로 상승하며 수익성을 방어했다.
이는 전체 매출의 약 35%를 차지하는 금리 상품군, 특히 SOFR(초단기금리) 선물과 옵션의 독점적 지위 덕분이다. 미 연준의 금리 정책이 불확실할수록 기관들의 헷지 수요는 CME로 몰리는 구조다.
또한 현재 매출 비중은 적지만 시장 데이터 판매 성장도 인상적이다. 지난 3분기 데이터 매출은 2억 300만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거래량의 등락과 무관하게 전 세계 금융기관들이 CME의 시세 정보를 구독해야만 하는 구조 덕분에, 데이터 사업은 연간 3~4%의 가격 인상력을 가진 안정적인 현금 창출원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최근 현물 국채 거래 서버를 선물 거래를 맡은 오로라 데이터센터 옆으로 옮겨, 현물과 선물의 거래 효율성을 극대화해 런칭한 브로커텍 시카고(BrokerTec Chicago)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 구글 손잡고 시스템 보완 중…예측시장까지 진출
CME 그룹은 이번 데이터센터 사태에 앞서 클라우드 전환에 속도를 내왔다. 현재 구글 클라우드와 협력하여 차세대 거래 시스템을 구축 중으로, 물리적 데이터센터의 리스크를 분산하고 24시간 무중단 거래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도 활발하다. 미국의 스포츠 베팅 업체 팬듀얼과 파트너십을 맺고 예측 시장에 진출한 것이 대표적이다. 약 1,300만 명에 달하는 팬듀얼의 일반 소비자들에게 S&P500 지수 상승 혹은 하락 여부를 예측하도록 하는 등 제도권 파생상품 시장을 확대하는 통로가 될 전망이다.
월가 주요 투자은행들은 이번 사고에도 CME의 장기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오히려 거시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국면에서 포트폴리오를 방어할 필수 소비재와 같은 성격을 지녔다는 평가다.

모건스탠리는 CME 그룹에 대해 비중 확대 의견과 목표주가 314달러를 제시했다. 모건스탠리 분석팀은 “금리 경로와 지정학적 이슈 등 불확실성이 지속될수록 헤지 수요는 늘어날 것”이라며 “강력한 경제적 해자와 가격 결정력 등으로 밸류에이션 프리미엄을 정당화한다”고 분석했다.
금융정보 분석기관 LSEG의 펀더멘털 스코어 역시 10점 만점에 7점으로, 수익성과 재무 건전성 면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안정적인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가능하게 하는 현금흐름은 안정적이지만 최근 S&P 지수 등에 비해 다소 높은 평가를 받는 점이 부담 요인이다.
이번 미 연휴 기간 중 발생한 블랙아웃 사태로 인한 시장의 신뢰 우려와 별개로 다가오는 12월 선물 만기 롤오버와 연준의 금리 인하 사이클로 인해 발생할 거래량이 CME그룹의 다음 분기 실적을 가를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