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연방대법원이 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등 세계 각국에 부과한 광범위한 관세의 적법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심리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외교 정책의 핵심 수단인 관세 부과가 대통령의 권한 내에 있는지 법적 판단을 받게 된 것으로, 대법원 결정은 국내외에 중대한 파장을 가져올 전망이다.
연방대법원은 이날 워싱턴DC의 대법원 청사에서 이번 관세 소송과 관련한 구두 변론을 개시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4월 미국의 무역적자를 이유로 대부분의 국가에 부과한 관세의 위법성을 가리기 위한 첫 공개변론이었다.
오전에 시작된 구두 변론 절차는 3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정부 측 대리인과 소송을 제기한 중소기업 및 민주당 성향 12개 주(州)를 대리하는 변호사들이 차례로 나와 법정 공방을 펼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애초 직접 구두변론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결정의 중대성을 흐리고 싶지 않다'며 불참 의사를 밝혔다.
이날 심리의 핵심 쟁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을 근거로 부과한 '상호 관세'가 적법한지 여부였다. 1977년 제정된 IEEPA는 외국의 행위로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대통령이 수출입 제한 등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이 법에 따라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가별로 상호 관세를 부과해 왔다. 당시 한국에는 25%의 IEEPA 관세를 적용했지만, 이후 한국은 3천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등을 조건으로 이 관세를 15%로 낮췄다.
정부 측을 대리한 D. 존 사우어 법무차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비상권 발동은 만성적인 무역적자가 미국 경제와 안보를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관세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관세부과과 트럼프 대통령의 여러 무역 협상을 타결하는 데 도움이 됐다며 그렇지 않았을 경우 미국은 강한 나라에서 실패한 나라로 추락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신에 따르면 보수 성향 대법관들마저 '비상사태'를 근거로 제한 없는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행정부 주장에 상당한 의구심을 표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관세는 미국 국민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며, 그런 권한은 항상 의회의 핵심 권한이었다"고 언급했다. 닐 고서치 대법관도 "그런 논리라면 의회가 외교, 관세뿐만 아니라 전쟁 선포권까지 대통령에게 넘겨줄 수 있지 않느냐"라며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이 지난 권한 확장 범위에 우려를 표했다.
반면 보수 성향의 브렛 캐버노 대법관은 대통령 권한 범위와 관련, 과거 하급심 법원이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유사한 법률에 따라 관세를 부과한 것을 허용한 선례가 있다면서 이는 의회가 대통령에게 "비상사태에 적절한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려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발언했다.
또 다른 쟁점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가 '중대 문제 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다. 이 원칙은 의회가 대통령에게 주요한 경제 조치를 취할 권한을 주고자 했다면 반드시 법에 명시적으로 썼을 것'이라는 내용으로, 의회가 명시하지 않은 주요 경제 정책을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단행할 수 없다는 것이 골자다.
이번 대법원 심리에서는 헌법상 의회에 부여된 관세 권한이 IEEPA를 통해 대통령에게 위임되는지, 무역적자가 IEEPA가 규정한 국가 비상사태에 해당하는지 등을 다루게 된다. 심리를 거쳐 나올 대법원 판결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대한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라는 점에서 미국은 물론 관세 영향을 받는 전 세계 국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앞서 1심을 맡은 국제무역법원(USCIT)과 2심을 관장한 워싱턴 DC 연방순회항소법원 등 하급심 법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비상 권한을 활용해 전 세계에 관세를 부과한 조치가 불법이라고 판단했다.
미국 대법원은 6대 3으로 보수성향 대법관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대법원은 그간 주요 사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결정을 한 전례가 있지만 이번에는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대법원에서 관심도가 높은 사건들은 판결 확정까지 통상 6개월 이상 걸리지만 이번 관세 소송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 대법원이 이른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소송에서 패하더라도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301조 등 관세를 부과할 '플랜B'을 가동할 것임을 밝혔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전날 CNBC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번 재판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그렇지 않더라도 다른 권한들이 많다. 더 복잡하지만 오히려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