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이 뉴 앱노멀 시대에 접어들었다. 특히 경제 분야가 심하다. 이 때문에 아담 스미스식 자유방임 고전주의 ‘경제학 1.0’ 시대, 존 메이너드 케인스언식 혼합주의 ‘경제학 2.0’ 시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식 신자유주의 ‘경제학 3.0’ 시대에 이어 ‘경제학 4.0’ 시대로 구분하는 시각도 있다.
뉴 앱노멀 시대에 경제 분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띠는 움직임은 국가를 전제로 했던 종전의 세계경제질서가 흔들리는 현상이다. 세계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한 세계무역기구(WTO), 뉴라운드, 파리 기후변화협정 등과 같은 다자주의 채널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주도의 다자 협상은 한 건도 열리지 않았다. 각국의 국제규범 이행력과 구속력은 2차 대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 대신 트럼프 라운드 시대에 접어들었다.
지리적으로 인접한 국가 간의 지역 블록 움직임도 붕괴 조짐이 일고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Brexit=Britain+exit)에 이어 그렉시트(Grexit=Greece+exit), 포렉시트(Porexit=Portugal+exit) 등 제2의 브렉시트 논의도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도 사실상 무력화됐다. 중남미공동시장(MERCOSUR)도 반트럼프 성향의 브라질 룰라 대통령의 주도로 좌초될 위험에 놓여 있다. 다른 지역 블록은 존재감조차 없다. 명목상 회의만 반복될 뿐이다.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양자 협력도 스파게티 볼 효과(spaghetti bowl effect)가 우려될 정도로 복잡해 교역 증진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스파게티 볼 효과란 삶은 국수를 그릇에 넣을 때 서로 얽히고설키는 현상을 말한다. A국이 B국, C국과 맺은 원산지 규정이 서로 달라 협정 체결국별로 달리 준비해야 할 해당국 수출업체에게는 오히려 불편을 초래하는 경우다. 한미 간 FTA 협상처럼 자주 수정되거나 궁극적으로 폐지 요구가 거세진다.
국제통화질서에서는 미국 이외 국가의 탈(脫)달러화 조짐이 주목된다. 세계 경제 중심권이 이동됨에 따라 현 국제통화제도가 안고 있었던 문제점, 즉 △중심통화의 유동성과 신뢰성 간 트리핀 딜레마(Triffin's dilemma) △기축 통화국의 과도한 특권 △국제 불균형 조정메커니즘 부재 △과다 외화보유 부담 등이 심해지면서 탈달러화 조짐이 빨라지는 추세다.
국제금융기구의 분화 움직임도 뚜렷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판 IMF인 긴급외환보유기금(CRA)이 조성됐고, 유럽판 IMF인 유럽통화기금(EMF) 창설이 검토되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온 세계은행(World Bank)과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 주도로 신개발은행(NDF)과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이 설립됐다. 미국과 중국 간 ‘3 x 2 메트릭스 분화 시스템’이 정착되고 있는 셈이다.

틀(frame)에 해당하는 국제규범과 이를 토대로 한 세계 경제와 국제 통화 질서가 흐트러지면 경제주체(시장 포함)는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그 대신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정치적인 포퓰리스트가 판치면서 이기주의와 국수주의가 기승을 부린다. 세계화 쇠퇴를 의미하는 탈글로벌라이제이션(de-globalization)이란 신조어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탈글로벌라이제이션은 2019년 다보스 포럼에서 제시됐던 세계화 4.0과 같은 의미다.
외부성(externality)도 급증해 국가 개입이 늘어난다. 외부성이란 사적 비용(PC?private cost)과 사회적 비용(SC?social cost) 간 괴리가 나타나는 현상으로 ‘인간은 합리적이다’라는 전제로 한 경합성과 배제성의 원리가 흐트러진다. 외부성은 PC보다 SC가 적은 경우 외부 경제, 그 반대의 경우 외부 불경제로 나뉜다.
외부성으로 ‘인간은 합리적이다’라는 경제학의 전제가 흔들리면 가치(value)가 가격(price)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해 현실진단 자료로 경제지표의 유용성이 떨어진다. 지표경기와 체감경기 간 괴리가 심해진다는 의미다. 이런 여건에서 추진되는 경제정책은 특정국의 국정목표에 부합한 몇몇 지표에 집착하는, 즉 프레임에 갇혀 있을 때는 반드시 실패한다. 오히려 경제지표가 괜찮다 하더라도 국민과 시장이 불안할 때에는 이것까지도 감안해 경제정책을 추진하는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를 중시해야 성공할 수 있다.
트럼프 라운드 시대에 탈글로벌라이제이션으로 대변되는 경제학 4.0 시대에 있어서 한국처럼 대외환경에 크게 의존하는 국가일수록 불리하다. 대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다. 갈라파고스 함정(Galapagos trap)에 빠져 경제학 4.0 시대에 나타나는 변화를 읽지 못한다면 선진국 문턱에서 추락해 중진국 함정(MIT?middle income trap)에 빠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종전의 관점에서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비정상적인데도 불구하고 제2 트럼프, 제3 트럼프를 지향하는 ‘스트롱 맨(strong man) 체제’가 확산되고 있는 점이다. 국가별로는 한반도 주변국에 속해 있는 중심국일수록 뚜렷하다. 세계 어느 국가보다 대외환경에 의존하고 남북 분단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는 한국 경제로서는 스토롱 맨의 부상은 언제든지 테일 리스크(fat trail risk)가 될 가능성이 높아 우려된다.
‘짐의 말이 곧 법이다’할 정도로 스토롱 맨의 행동은 법과 규범을 무시해 경제 분야에서는 절대 군주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 스토롱 맨은 정치가(statesman?다음 세대와 국민 우선)보다 정치꾼(politician?다음 선거와 자신의 자리만 생각)이기 때문이다. 경제 절대 군주 시대에 특정국 경제는 최고통수권자의 역할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최고통수권자가 제 역할을 못해 경제가 무너진 국가가 의외로 많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2015년 탄핵 시위에 몰렸던 올랑드 전 대통령은 테러, 난민, 브렉시트 등 나라 안팎에 수북이 쌓여 있는 현안을 처리되지 못해 경기가 수렁에 빠지면서 임마누엘 마크롱 대통령에게 정권을 넘겨줬다.
그 자체가 나쁜 부패를 저질러 놓고 전?현직 대통령 간에 ‘누가 많고 적으냐’ 싸움을 벌이다 경제가 망가진 국가도 있다. 브라질이다.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은 국영에너지회사인 페트로브라스의 뇌물 사건에 휘말리면서 결국은 탄핵 당해 대통령직에서 쫓겨났다. 지금도 부패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너무 많이 퍼주다가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고 탄핵에 몰리는 최고통수권자도 있다. 베네주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라 대통령이다. ‘장기 집권’이라는 오로지 개인 목적만을 위한 포퓰리즘적인 재정지출로 경제가 파탄된 지 오래됐다. 더 이상 생활고에 견디다 못해 조국을 등진 베네주엘라 국민만 하더라도 전체 국민의 20%가 넘는다.
갑질만 일삼다가 추락한 최고통수권자도 있다.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취임 초만 하더라도 강력한 마약사범 단속 등이 성공하면서 국민의 지지도가 한때 90%가 넘었다. 하지만 높은 지지도에 악용해 인사 등에 무리수를 두고 비정상적인 외교정책으로 미국 등 전통적인 동맹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다.
미중 간 경제패권 다툼에서 줄을 잘못 서 어려움에 처한 최고통수권자도 의외로 많다. 가장 극적으로 변한 최고통수권자는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지우기’ 일환으로 이란과 핵 협정을 포기하고 경제제재 조치를 재개했다. 다급해진 하산 대통령은 중국과 대체 관계를 모색하다가 금융시장이 난기류에 빠졌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도 비슷한 처지다. 미국인 목사 인질사건에다 테러 적성국에 무기를 팔아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됐다. 트럼프 대통령과 개인적인 감정싸움까지 벌인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가부도 위험에 직면하자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으나 최대 의결국인 미국의 반대에 부딪쳐 수포로 돌아갔다.
비선 조직에 의해 경제가 망가지는 국가도 있다. 2009년에 취임한 제이콥 주마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은 인도의 굽타 그룹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다. 외형상 성장률은 괜찮아 보였지만 비선 조직인 인도 굽타 그룹의 국부 유출로 경제는 속빈 강정이 됐다. 종속 이론을 태동시켰던 1970년대 중남미 경제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경제주권을 되찾기 위해 시작된 탄핵 시위가 범국민 운동으로 확대되면서 주마의 운명은 대통령직을 내려놓아야 했다.
최근 들어 네팔,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권력욕이 강한 포퓰리스트 최고통수권자와 기득권에 강력하게 저항하는 ‘우리 모두가 Z 세대(We all are Gen Z)“ 운동이 어디까지 확산될 것인가. 또 다른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의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촉발된 뉴 앱노멀 시대에 스트롱맨 체제는 더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