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고강도 관세 정책이 진행되는 가운데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넉 달 만에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까지 우려하던 시장은 다소 숨고르기하는 모습이다.
현지시간 12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S&P500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27.23포인트, 0.49% 오른 5,599.30, 대형 기술주가 포진한 나스닥 지수는 212.36포인트, 1.22% 상승한 1만 7,648.45로 장을 마감했다. 반면 애플과 월마트 등 관세 영향을 받은 기업들의 부진으로 다우존스30 종합지수는 82.55포인트, 0.2% 내린 4만 1,350.93으로 추가 하락을 이어갔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이로 인한 침체 가능성에 하락하던 시장을 끌어올린 것은 고착화되어 있는 인플레이션 지표가 둔화했기 때문이다. 이날 미 노동부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지난 2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계절 조정 기준 전체 상품 가격이 한 달간 0.2% 상승했다. 이는 지난 1월 0.5%보다 둔화한 기록이다. 전체 소비자물가지수의 지난 1년간 상승폭도 1월 3.0%에서 지난달 2.8%로 낮아졌다.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도 같은 속도로 둔화했다. 한 달간 근원 소비자물가지수는 0.2% 올라 1월의 0.4%, 시장컨센서스인 0.3%를 모두 하회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 통화정책에 영향을 주는 핵심 요소들의 하락 추세도 확인됐다. 주요 항목인 주거비가 지난달 0.3% 상승해 한 달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고, 항공요금이 내리는 등 서비스 지표 강세는 완만해졌다. 식료품 업체마다 구매 제한을 두는 등 사재기 움직임을 보인 달걀 가격도 10%나 뛰었지만, 유제품, 채소류 가격이 하락해 식품 물가는 전월 상승폭보다 크게 줄었다. 다만 중고차 가격은 0.9% 급등하고, 의류 가격은 0.6% 오르는 등 잠재적으로 관세 영향을 받는 제품군의 물가 상승이 고르게 나타났다.
미 노동통계국은 전반적으로 소비자물가 상승 속도가 "다소 둔화된 모습"을 보였으나, 향후 무역 전쟁과 관세 조치가 지속되면 이러한 완화세가 장기적으로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 찰스 슈왑의 수석 채권 전략가인 캐시 존스는 이날 “소비자물가지수가 예상보다 덜 상승했지만, 모멘텀은 여전히 상승세"라며 "관세가 식품과 의류 가격을 올릴 가능성으로 인해 연준은 계속 동결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25% 관세 부과 이후 유럽연합(EU)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트럼프는 “EU에 불만이 많다”면서 “금유전쟁에서 승리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그는 아일랜드에 “세금 정책으로 인해 제약사와 기업을 빼앗겼다”며 상호 관세를 통한 압력 수위를 높일 것을 시사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12일 자정을 기해 전 세계 교역 상대국에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을 수출할 때 25% 관세를 이미 부과했다. 이번 관세는 2017년과 달리 볼트, 너트, 음료수 캔 등 예외 조항없이 전면 시행에 들어간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강경한 입장에 힘을 보탰다. 오는 13일 캐나다와 경제 관련 협상을 앞두고 “캐나다는 미국과 협력해 경제를 통합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월가는 침체 우려를 키우고 있다. JP모건의 글로벌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브루스 캐스먼은 싱가포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재 지점은 미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는 단계로, 경기침체 확률을 30%에서 40% 높였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상호관세가 내달 강행된다면 침체 가능성은 50% 이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캐스먼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정부예산 삭감과 국제 무대에서의 역할 변화 등으로 인해 미국이 그동안 누려왔던 특권이 흔들릴 수 있다”며 시장이 가져온 신뢰가 약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골드만삭스는 이번 관세 부과 확대를 반영해 S&P500 기업들의 주당순이익(EPS) 전망치를 종전보다 2.2% 내린 262달러로 조정했다. 또한 밸류에이션은 21.5배에서 20.6배로 낮추고 이를 반영해 올해 연말 지수 목표치를 6,500선이 아닌 6,200선으로 제시했다.
미국의 성장률 둔화를 감수하면서 관세 정책을 감행하는 것에 대한 시장의 우려 속에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오는 18일과 19일에 걸쳐 올해 두 번째 연방공개시장위원회를 개최한다. 연준의 금리 정책을 추적하고 있는 시카고상품거래소의 페드워치(FedWatch)에 따르면 시장의 현재 컨센서스는 오는 5월까지 금리를 동결할 확률을 64%, 6월 인하를 98% 확률로 예상하고 있다.
시장의 공포 심리가 완화하면서 대형 기술기업들이 동반 상승했다. 엔비디아가 6.4% 급등했고, 테슬라는 7.59%로 이틀째 반등을 이어갔다. 테슬라는 전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울트라 레드 색상의 모델S 승용차를 구매하는 등 지지 선언을 한 영향과 아크 인베스트의 추가 매수 소식 등에 반등을 보였다. 모건스탠리의 애덤 조나스 애널리스트는 “테슬라가 가격 책정 능력을 잃고 있다”면서도 “단기적으로 200달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1년 안에 800달러에도 도달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날 대형 7개 기술기업 가운데 애플만 사흘 연속 하락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애플의 아이폰 성장률은 내년까지 정체를 보일 가능성이 커졌다. 애플은 음성인식 기술을 이용한 시리(Siri)의 애플 인텔리전스 업데이트가 내년으로 연기됐고, 중국산에 대한 미국의 관세 추가 부과로 인해 애플이 비용을 상쇄할 여력이 줄고 있다는 것이 이유다.
한편 인텔은 장 마감 이후 립부 탄 전 케이던스 디자인시스템 최고경영자를 차기 CEO로 지명했다는 소식에 시간외에서 약 12% 상승 중이다. 어도비와 보안 기술업체 센티넬원은 부진한 실적 발표에 각각 시간외에서 4%, 16% 하락 중이다.
